[주성하의 서울살이] 류경호텔 준공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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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먼저 번에 약속드린 대로 건물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건물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삼성물산이라는 한국 기업이 이달 5일에 아랍추장국 두바이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부르즈 칼리파’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162층에 높이가 828m나 됩니다. 북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332m의 류경호텔보다 딱 2.5배가 높습니다. 다시 말하면 류경호텔을 2개 반 겹쳐 쌓아올린 것과 같은 높이입니다. 아무나 이렇게 높이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한국 건설 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니 이렇게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는 현재로서는 류경호텔보다 높은 건물이 없습니다.

남북의 건설 역사를 따져보면 참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체제경쟁이 한창일 때 서로 높고 좋은 건물을 지어서 자기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죠. 105층 류경호텔이 어떻게 세워지게 됐는지 아십니까. 1985년에 서울에 63빌딩이라고 264m 높이의 건물을 지었는데 당시로선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니 북에서 자존심 상해서 가만있겠습니까. 곧바로 105층 건설에 들어가 1989년에 골조공사를 마쳤습니다. 서울 63빌딩보다 68m 더 높이 지은 겁니다. 북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 고려호텔 아닙니까. 이것도 1970년대에 서울에 신라호텔이라고 당시로선 세계적인 수준의 호텔을 지어놓고 자랑하니까 북에서 기분 상해서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들여다가 호화로운 고려호텔을 지은 겁니다.

남북 체제경쟁의 절정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89년 평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들 수 있겠습니다. 남쪽에서 올림픽을 위해 각종 체육시설을 건설하니 북에서는 무려 15만 명이나 들어가는 5월1일 경기장을 지었고 광복거리에 엄청난 체육촌을 건설했습니다. 그뿐입니까. 국제영화관, 동평양대극장 이런 숱한 건물과 광복거리, 통일거리 같은 엄청난 주택을 함께 지었죠.

이처럼 남북은 건축물을 하나의 체제 경쟁의 도구로 활용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13차 축전이 끝나고 그만 북에서 경제사정이 어려워 건설 경쟁에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류경호텔만 봐도 20년 넘도록 골조만 세워져 있습니다. 사실 대문을 꽉 닫고 사는 나라가 이렇게 큰 호텔을 건설한다는 자체가 애초에 전혀 수지가 맞진 않는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북에서 기권하니까 남쪽에서도 힘이 빠질 일이죠.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도 한 20년 동안 높은 건물 짓질 않았습니다. 높이 지어봤자 수지가 안 맞는 겁니다. 그러다가 서울 땅값이 점점 비싸지니깐 고층건물이 슬슬 생기기 시작합니다. 2003년과 4년에 63빌딩보다 조금 더 높은 아파트 두 개가 서울에 생겼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건물로서는 여전히 63빌딩이 제일 높은 거죠.

그렇다면 그 20년 동안 한국 건설업체들은 놀고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외국에 나가서 열심히 건설해주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부르즈 칼리파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 건물은 공사비가 12억 달러나 됩니다. 12억 달러를 받고 건설해주면 실제 공사비를 제하고 대략 1~2억 달러 정도는 순수 이득으로 남는 겁니다. 2010년에 한국 건설업체들이 외국에 나가서 건설해주기로 한 각종 공사비를 모두 합치면 700억 달러나 됩니다. 지금까지 한국 건설업체들이 외국에 나가 지어준 공사비를 다 합쳐도 4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북에서 지금 식민지 청산 대금으로 일본에서 100억 달러를 받겠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에서 1년에 해외에 나가 700억 달러씩 건설해주는 것에 비하면 100억 달러 별로 커보이지도 않네요. ‘삼성’기업 잘 아시죠. 삼성을 사들이려면 2000억 달러를 주어야 합니다. 삼성 같은 기업 하나만 유치해도 북조선은 순식간에 일어섭니다.

다시 건물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지금 한국에서도 슬슬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또 실제로 짓고 있습니다. 서울 땅값이 정말 비쌉니다. 웬만하면 1평에 10만 달러가 넘으니 적은 땅에 높이 짓는 게 수지가 맞습니다. 한국에 100층 넘는 건물 지으려는 게 지금 10개가 넘습니다. 2015년에 서울에서 133층에 640m, 그러니까 류경호텔보다 한 2배 정도 높은 건물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이 정도 높이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습니다.

요즘 보니 류경호텔도 막 유리를 넣기 시작하면서 공사가 재개됐더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류경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이라는 명성을 한 번도 얻을 것 같지 못합니다. 지금 부산에도 제2롯데월드라고 높이가 510m쯤 되는 호텔이 세워지는데 3년 뒤인 2013년에 완공된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 류경호텔이 완공될 수 있을까요.

돈만 있으면 1~2년 안이라도 될 순 있겠지만, 외화도 없고 또 설사 있다 해도 거기에 다 쏟아 부어 지어봤자 나라 망하는 지름길이죠. 아무래도 류경호텔은 저 같은 사람이 마음대로 평양에 갈 수 있을 때 완공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때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평양이 북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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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Anonymous
2010-01-27 16:39

남과 북의 고층건물에 대해 색다른 시각으로 쓴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남한에서 그동안 고층건물을 짓지 않은 이유는 북한과의 경쟁에서 김이 빠져서라기 보다는 안보적인 이유가 더 크지요. 민간에서는 계속 고층건물을 지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정부가 허가해 주질 않았지요. 북한과의 대치상황, 그에 따른 전투기 또는 민간 항공기의 운항안전문제 등을 고려해서 초고층건물에 대해 정부가 건축허가를 내 주질 않았던 때문으로 이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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