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한상렬 목사의 방북을 보며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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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남쪽에서 한상렬 목사라는 사람이 와있는 사실은 아시죠. 내일 8월 15일을 맞아 판문점을 통해서 남쪽에 오겠다고 합니다. 그걸 보면서 여러분들, 떠오르는 것이 있으시죠. 21년 전인 1989년에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가 비슷한 식으로 평양에 들어갔다가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남쪽에 다시 왔죠. 저도 한상렬 목사를 보면서 그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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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방문한 한상렬 목사가 개성민속려관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임수경이 평양에 왔을 때 북조선에선 ‘통일의 꽃’이라고 하면서 정말 떠들썩했죠. 통일을 위해 어린 여학생이 목숨 걸고 왔다고 하니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판문점을 통해 나갈 때 임수경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모두가 가슴 아파 했습니다. 그런데 어쨌습니까. 북에 와서 그렇게 남쪽을 비난했어도 고작 3년 정도 감옥생활을 하고 나왔습니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모두 술렁거렸죠.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총살시키고 사돈의 팔촌까지 몽땅 관리소로 끌고 가 멸족시킬 일인데 남조선은 정말 이상한 나라”라고 말입니다. 저도 그때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남조선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북조선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상한 정도가 아니고 정말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악독한 거죠. 아무튼 임수경은 나라에서 배워준 대로 남조선을 사람 못살 생지옥이고 악독한 독재국가라고 생각하던 북녘 사람들에게 남조선이 그렇게 무지막지한 나라도 아니고 구체적으론 잘 모르겠지만 우리보단 훨씬 관대한 나라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노동당 선전부에서도 뒤늦게 그걸 깨달았을 것입니다. 임수경 자꾸 내세워봐야 오히려 역효과 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 일이 어제 같은데 벌써 21년이 흘렀네요. 이제는 북쪽 사람들은 다 압니다. 한국의 경제가 얼마나 발전돼 있는지, 북조선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못사는지를 말입니다. 정부 선전은 그냥 선전일 뿐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북조선 언론들이 한상렬 목사처럼 좋은 선전 소재가 저절로 굴러왔는데도 그것을 그리 많이 활용하지 않는 것이 눈에 뜁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이 뭐라 하는지 계속 보여줄수록 북쪽 사람들은 “어휴 우리나라에서 저런 말을 했다가는 어떻게 될까”하는 식으로 계속 남북한 체제를 비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더도 말고 그 목사 겉모습만 봐도 북쪽과 비교되죠. 북에선 저렇게 두루마기를 입고 긴 수염을 길렀다가는 당장 정신병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수감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쪽에선 옷차림을 어떻게 하든 누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가 이제 판문점을 통해 내려오겠다고 하는데, 북쪽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북쪽의 누군가가 그 목사처럼 서울에 와서 북쪽 정부를 파쑈정부라고 마구 비난하고 판문점을 통해서 돌아가겠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그 사람의 행적이 보도되는 순간 그의 가족은 팔촌까지 사라지게 될 것이고 판문점을 통해 북쪽에 발을 딛는 순간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죠. 그런데 한상렬 목사는 돌아와서 이제 몇 년 정도 감옥에 가는 것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기 감옥은 북에 비하면 정말 궁전입니다. 자유만 좀 제한이 있다뿐이지 하루 세끼 북조선 체육단 밥보다 더 고급스러운 밥을 주지, 텔레비도 보고 도서관에서 책도 보지, 운동도 규칙적으로 시켜주지 아무튼 여러분은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한상렬 목사는 남녘땅에 돌아가면 수갑과 철창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자기가 무슨 대단한 희생을 하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북쪽에는 남쪽 감옥생활보다 훨씬 못한 상황에서 사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인 것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상렬이란 사람이 북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별의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있기 마련입니다. 남쪽에도 관심 좀 끌겠다고 한강철교에 올라가 죽겠다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고 오래 살겠다고 오줌 퍼마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도 좀 특이한 짓을 하고 싶었던 거겠죠. 목사라는 직함도 한국에 교회가 6만개 넘게 있고 목사도 수십만 명이 있으니 직함 얻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관심 가져주다 보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이상한 행동이 법을 위반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조용히 감옥에 보내 죄의 대가를 받게 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상렬 목사가 판문점으로 온다고 기자들이 몰려들지, 한쪽에선 타도하겠다고 시위하고 다른 쪽에선 잘했다고 시위하고 여기선 그럽니다.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차로 조용히 실어 와서 지은 죄대로 처벌받으면 되는데, 그렇게 달라붙어 떠들어주면 관심 좀 끌려는 사람에게야 매우 고마운 일이겠죠. 제가 보건대는 쓸데없는 짓인 것 같은데 그런 짓도 하고 싶으면 다하고 사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입니다.

이번에 한 목사가 평양에 가서 한가지만은 차마 말을 못했나 보더군요. 북조선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아무튼 그 비슷한 칭찬 말입니다. 평양에서 잘 보이려고 별의별 칭찬을 다 하는 사람도 그런 칭찬만큼은 차마 못 하겠나 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다 알면서 말을 할 수가 없는 것뿐이겠죠.

북쪽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바라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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