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김정은이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북한 땅을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나면 인민군대가 남조선을 단숨에 해방시킬 것이란 새빨간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 참 큰일입니다. 80년 가까이 세뇌가 되다 보니 북한 인민은 자주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이 똘똘 뭉친 한 줌도 못 되는 패거리가 나라를 어떻게 나락으로 끌고 가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한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훈장으로 내건 인간들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도 북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김일성이 소련 88여단에서 대대장을 지낼 때 그의 부대에 있던 한인들은 60여 명이었습니다. 김일성은 1945년 9월 소련 군함을 타고 원산에 상륙한 뒤 소련의 비호와 빨치산 출신들에 의지해 빠르게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80년 넘게 한 번도 물갈이가 되지 않고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중입니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특징은 첫째로 형편없이 무식했다는 것입니다.
빨치산에는 김일성보다 항일투쟁 경력이 더 쟁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김일성이 대장 노릇을 한 것은 그나마 글을 쓰고 읽을 줄 알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해방 후 귀국한 빨치산 중 중학교 경력자는 손꼽을 정도였고, 대다수가 글을 읽을 줄 몰랐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빨치산 출신 북한군 장령 다수는 지도를 볼 줄도 몰랐습니다.
1960년대 초 정적들을 다 쳐내고 빨치산 출신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지만 장관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 글을 읽을 줄 몰라 김일성고급당학교에 보내 ‘가나다라’부터 공부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 끝내 글을 터득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지요. 그들을 공부시켰던 교장은 나중에 일제 때 공부해 유식해졌다는 이유로 양강도 오지에 추방돼 묻혔습니다.
이렇게 무식한 인간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북한이 잘 살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어떤 짓을 해도 “수령님 하는 일은 무조건 좋다”고 환호를 저지르는 무식한 머슴과 노동자 출신들을 승진시켜 나라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무식한 패거리들이 온 나라를 무지한 땅으로 만든 것입니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특징은 둘째로, 강한 권력욕과 무자비한 정적 숙청이었습니다. 사지를 함께 넘었다는 인연으로 이들은 위기 때마다 똘똘 뭉쳐 반대파를 인정사정없이 제거했습니다. 때로는 암살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의장에 권총을 들고 들어가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공부를 한 사람들이던 남로당파, 연안파, 소련파, 국내파 등의 파벌들은 어떤 짓도 부끄럼 없이 단행하는 이들에게 밀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빨치산 패거리는 전국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들어놓고 정적은 물론 불평하는 사람과 유식한 사람들까지 모두 가둬버렸습니다.
빨치산 패거리들의 특징은 셋째로 여자들을 보상과 전리품 정도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김일성부터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해방 후 김일성 주변에서 일을 하다가 56년 8월 이후 숙청돼 소련으로 망명한 북한의 장관급, 장령급 고위급 간부들은 수십 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1980~90년대부터 해방 후 자신들이 북에서 겪었던 일들을 다양한 수기 형태로 남겼습니다.
대표적으로 북한군 작전국장을 지낸 유성철 전 중장의 수기 하나만 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여성 편력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만주와 소련을 떠돌며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하다 북한에 돌아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김일성은 그동안 억제해 온 욕구를 분출하듯 여자관계가 문란했다. 김일성은 한 인민군 고급 군관의 부인을 농락하고 그 군관을 소련으로 유학 보낸 일도 있으며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할 때는 오찬복이란 타자수에게 키스하려다 뺨을 맞은 적도 있었다. 김일성은 그의 엽색 행각이 부하들 사이에서도 불만을 사게 되자 1호ㆍ2호 등 일련번호가 붙은 비밀 저택을 곳곳에 마련하고 아리따운 처녀들을 불러들여 은밀히 즐기기도 했다.”
이런 내용이 유성철 중장의 증언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성애는 해방 후 안전부 부부장 김성국의 타자수였는데, 그 방을 찾았다가 김성애가 마음에 든 김일성은 다음날 자기 방에 타자수가 필요하다고 전화했습니다. 김성국 부부장은 그 말의 뜻을 눈치채고 아무 말도 없이 김성애를 김일성에게 섬겨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성과 많이 동행했던 다른 사람의 수기를 보면 김일성은 금강산으로 놀러가는 길에 차 뒷좌석에서 무릎에 비서를 앉히고 입에 올리기에 부끄러운 짓거리를 했다고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입니다. 다른 빨치산들이라고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 대표적으로 최현은 강계에서 목재상의 딸에게 눈독을 들였다가 거부당하자 “우리가 목숨 걸고 싸울 때 돈을 벌던 반동”이라며 목재상을 쏴 죽였습니다. 최현의 아들인 최룡해도 최현이 38여단장으로 근무하던 시기 간호사와 사이에 낳은 사생아 출신입니다. 그럼에도 최현이 처벌받은 일은 없습니다. 다 같은 무리이니 그런 것은 눈감아주는 것이죠. 이렇게 여자를 밝히던 빨치산 패거리들은 김정일이 별장들을 지어놓고 여자들을 바치자 그의 후계자 세습을 절대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빨치산 패거리의 특징은 넷째로 조국과 민족 따윈 안중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권력과 향락을 실컷 누리고 죽어도 자식들이 대물림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2021년 마지막 빨치산 1세가 사망했지만 지금도 북한은 빨치산 2세, 3세들이 모든 것을 향유합니다. 지금은 4대까지 물려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를 이어 ‘조국과 인민’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여러분들이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