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태양절이 사라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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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엔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을 맞아 각종 행사가 진행됐더군요. 김정은은 림흥거리 2단계 준공식에 참가해 치적을 뽐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 세계를 돌아봐도 아파트 준공식을 한밤중에 하는 곳은 북한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입주하면 되는 것을 밤에 꼭 행사를 열어 축포까지 쏘며 난리를 치네요. 거리에 동원된 사람들을 보니 수만 명은 넘겠던데, 그 숱한 사람들을 한밤중에 교통도 좋지 않은 곳에 불러와서 행사에 참가시키면 온밤 추위에 떨다가 아침에야 돌아가겠군요.

요즘 김정은은 자기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참 애를 많이 씁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요 며칠 김일성을 지우고, 김정은을 태양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 선전부에서 애를 많이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김정은은 과연 김일성에 대한 애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김일성은 김정은의 존재를 죽을 때까지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올해부터 북한은 태양절이란 이름을 슬슬 지웁니다.

올해 들어 태양절, 광명성절이란 단어가 거의 사라지고 대신에 최근 ‘4월 명절’, ‘4.15’란 용어를 부쩍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경대도 ‘태양의 성지’가 아닌 ‘애국의 성지’로 이름이 달라졌고, 태양절 경축 공연도 ‘4.15 경축 공연’이 되고, 요리경연에서도 ‘태양절 경축’이란 말을 뺐습니다.

김정은이 2019년 3월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 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며 선대에 대한 신비주의와 우상화를 경계하는 지시를 내린 사실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지시했다고 곧바로 그대로 따를 수 있는 간부들이 별로 없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목이 날아가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간부들이 무서워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올 1월, 김정은이 자기 나이가 마흔이 되더니 갑자기 왜 아직도 김일성을 태양이라고 하냐고 화를 내진 않았을까요.

태양절이란 표현은 김정일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김일성 3년 상을 마친 뒤 “수령님의 존함은 곧 태양”이라며 태양절이란 말도, 금수산태양궁전이란 말도 만들었습니다.

김일성이 태양이면 그 아들은 태양의 아들이 되니 김정일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우상화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가다간 김정은에게 붙일 명칭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세상 만물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 주는 태양보다 더 위대한 별은 없습니다. 동양의 한 구석에 붙은 자그마한 땅을 가로타고 앉아, 온 지구인에게 독재자라고 욕먹으면서도 5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한 김일성이 사실 태양이란 것도 어이가 없긴 합니다.

북한을 타고 앉아 깡패대장처럼 살다 죽은 김일성을 태양이라고 하니, 그 아들 김정일에겐 붙일 마땅한 이름이 없어, 있지도 않은 광명성이란 호칭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여기까지 한계였죠. 그럼 김정은은 뭐라고 합니까.

김정은 생일은 우주절이라고 해야 합니까. 그러면 김정은 스스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요. 하는 짓마다 유엔 제재를 초래하는 삐뚤어진 행위만 하고, 세계의 규탄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우주란 말을 감히 붙이겠습니까.

이런 사정이니 김정은은 새로 만들 말이 없어 이미 죽은 지 30년이 넘은 할아버지 김일성에게서 태양을 뺏어다가 자기가 차지하려는 것 같습니다.

17일 북한이 총련(조총련)이 보낸 편지에도 김정은을 조선의 태양이라고 추앙하더군요. 그것 외에도 자세히 보면 김일성에게 쓰던 태양은 물론, 수령, 어버이 등 칭호를 김정은에게 붙이는 빈도가 요즘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 우상화 용어를 빼앗아 오는 판이니 할아버지를 띄우면 안 되겠죠. 그래서 그런지 김정은은 김일성 생일에도 금수산에 가서 참배도 하지 않습니다. 올해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습니다. 거기 가는 대신 자기 치적을 띄우는 아파트 준공식이나 요란하게 하죠.

저는 이것을 보면서 김정은에겐 어쩌면 김일성이란 존재가 전혀 존경할 대상이 아닐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김일성은 김정은이 10살 때 죽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모친 고용희는 김정일이 숨겨 놓은 여자였습니다. 김정일이 성혜림과 살아 김정남을 낳고, 본처로 알려진 김영숙과 또 딸을 셋이나 낳은 뒤, 이후에 재일교포 출신 고용희 사이에 아들 둘과 딸을 또 낳았습니다.

김정일도 그 정도로 여자를 바꾸었으면, 그걸 아버지에게 얘기했겠습니까. 1980년대 초반부터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김정일이 다 먼저 보고 올려 보냈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 보고서에 자기가 여자를 숨겨두고 자식들을 낳았다고 적어 올리겠습니까.

김일성은 김정은의 존재를 알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그러니까 김정은이 김일성과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태양의 손자를 칭하려면 김일성과 찍은 사진 정도는 있어야하는데, 그 태양이 모르는 존재가 김정은일 가능성이 큽니다.

김정은에겐 이것이 숨기고 싶은 약점이겠죠. 하지만 자기를 숨길 수가 없으니 김일성을 지우려 하는 것 같습니다. 김일성의 유훈인 통일을 아무렇지 않게 없던 일로 삭제하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태양이든, 김정은이 태양이든 인민의 삶은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후퇴를 하죠. 한국에선 매일 먹는 고기를 김정은이 생색내야 먹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현실입니다.

김정은은 유경수 탱크사단 식당에서 군인들이 쌀밥을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쓰지도 않는 도자기 그릇을 내놓은 군인 식당이란 연극장에서 김정은은 “난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런 돼지물 같은 식사를 참 맛있게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군부대에 돼지고기를 선물로 들고 다니는 김정은을 태양으로 모셔야 하는 북한 인민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