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영화로 보는 북미 관계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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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bo_poster_305 영화 '람보3' 포스터.
Photo: RFA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미국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보통 미국 영화를 할리우드 영화라고 하는데, 이는 로스앤젤레스 외곽 할리우드 지역이 과거 미국 영화산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여기서 대다수 영화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저도 할리우드를 두 번이나 가봤는데 촬영소들이나 영화 세트장이 좀 있을 뿐 크게 특별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요즘은 미국 영화들이 할리우드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쪽에 와서 미국 영화들을 많이 봤는데 잘 만든 영화들이 정말 많습니다. 제가 북에서 ‘다이하드’ ‘타이타닉’과 같은 영화를 봤으니 여러분들도 많이 봤을 겁니다. 액션영화부터 사랑 관련 영화까지 참 다양합니다.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르 중에 ‘서부영화’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겁니다. 역사영화 전쟁영화 공상영화 이런 것은 다른 나라들도 다 있지만 아마 ‘서부영화’라는 것은 미국에만 있을 겁니다. 서부영화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법을 준수하고, 용기와 명예,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영웅과 이에 맞선 악당과의 대결이 주요 내용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100년 가까이 엄청 좋아해온 형식의 영화입니다. 서부영화의 특징을 보면 영웅과 악당이 둘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사용한다는 점과 배경으로 말과 포장마차, 증기기관차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서부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라 하면 먼지 나는 마을이나 황야에서 영웅과 악당이 마주서 있는 장면입니다. 보통 영화 마지막에 이런 장면이 나오죠. 둘 다 북에서는 ‘몰도바 권총’으로 알려진 리볼버 권총을 엉덩이에 축 늘어지게 차고 팽팽하게 노려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둘이 총을 벼락같이 뽑아드는데, 이때 항상 악당이 주인공보다 먼저 권총에 손을 가져가지만 주인공이 늘 0.1초라도 더 빨리 총을 꺼내 쏴서 악당을 죽입니다. 이것이 미국 서부영화의 공식처럼 돼버렸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지금도 허리에서 총 누가 더 빨리 뽑는지를 겨루는 경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은 계속 보고 자란 서부영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흔히 전쟁도 악당과 영웅의 대결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2년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부시 대통령이 서부영화를 많이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자란 텍사스는 서부영화의 배경이 되는 대표적 지역이고, 그쪽 사람들이 특히 서부영화를 너무 좋아합니다. 부시 대통령의 마음속에서도 자신이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알게 모르게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서부영화의 총 꺼내는 장면을 보면 영웅은 절대로 먼저 총을 꺼내지 않습니다. 먼저 총을 꺼내 쏘면 영웅이 아니라 비겁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또 미국을 설명하는 중요한 코드가 됩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전쟁을 했지만 자기들이 먼저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1차, 2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일본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고, 한국전쟁은 북한이 먼저 쳐들어왔고, 이라크전도 후세인이 먼저 미국과 친한 쿠웨이트를 쳤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명분 없이 전쟁을 먼저 일으키면 비겁한 것으로 간주하니까 그런 대통령은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되는 사건들은 있습니다. 1898년 미국 스페인 전쟁이나 1964년 웰남전의 시초가 됐던 통킹만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란 주장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외형적으론 자기 군함이 공격당했으니 반격한다는 것이 구실이 됐습니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음에도 피한 대표적 사건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소련이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자 미군 장성들은 너도나도 선제타격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끝내 이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소련이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대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서 이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어쩌면 미국이 많이 양보한 것이죠. 나중에 들으니 케네디 대통령은 자기가 역사에 첫 선제공격을 하는 대통령으로 남는 것이 두려웠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역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제공격 안한다고 해서 미국이 겁쟁이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미국은 선제공격을 당하면 상대를 무자비하게 짓밟아놓습니다. 서부 영화도 그렇고, 이후 만들어진 람보, 로보캅 등 미국식 영웅들이 다 그렇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악당이 먼저 건드리면 내가 영웅이 돼 너를 꼭 이긴다는 이런 심리를 은연중에 심어주어 온 국민이 똘똘 뭉쳐서 영웅적으로 싸웁니다. 생포되면 배를 갈라 자결하는 야마도 정신을 믿고 미국을 겁쟁이라 보고 진주만을 급습했던 일본 군국주의가 대표적으로 제대로 맛을 본 사례죠. 실제 전쟁을 해보면 미군은 일본군과 전혀 밀리지 않게 엄청 용감합니다.

이제 서부영화의 이야기를 북한에 옮겨가 봅시다. 북한은 항상 미국이 호시탐탐 침략할 기회만 노린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전쟁이 일어나진 않을 겁니다. 대신 북한이 도발한다면 그건 잠자는 사자 코털을 건드려 제삿날을 받아놓는 셈이 될 겁니다. 북한도 이런 점 잘 알고 있겠지만, 가만있으면 인민들 보기에 체면이 서지 않으니 겁이 날 때 제일 세차게 짖어대는 개처럼 말로만 위세를 떠는 것이죠.

겉으론 미국을 향해 공갈포 아무리 쳐도 군사훈련이 벌어지면 군부에 적들이 도발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지 말라고 내부 지시가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많은 북한 사람들은 미국이 먼저 좀 쳐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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