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내 손 안의 전세계 영상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3.11.03
[주성하의 서울살이] 내 손 안의 전세계 영상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보고 있는 이미지.
/REUTERS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제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단면을 설명하면서 인간이 100세까지 사는 시대가 코앞에 왔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변화와 함께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잘하지 않는데, 그래도 애를 낳고 키우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 대개애 키우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제 경우도 너무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오히려 밤잠까지 설칠 지경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특히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TV가 내 손 안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휴대전화로 TV를 보게 된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TV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손바닥 위에 전 세계에서 생산된 모든 영상이 있고, 이걸 취향대로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한국에 와서 산 20년 동안 벌어진 놀라운 변화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2002년에 한국에 왔을 때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지정된 시간에 봐야 했습니다. 드라마란 북한에선 티비연속극이라고 하는 건데, 방영 시간을 놓치면 다시 보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방송사들이 여러 개 있으니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종류가 다양했지만, 시간 지키기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영화, 드라마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너무나 재미있으니 북한 사람들은 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밤에 창문에 두꺼운 담요를 쳐놓고 몰래 보고 있죠. 북한에서도 처음에는 비디오로 보다가 다시 CD로 보다가, 지금은 메모리 카드로 봅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까진 저도 여러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는 언제든 마음대로 볼 수 있었지만,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CD를 빌려서 봐야 했죠. 재미있는 최신 영화를 보려면 영화관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것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그 외의 온갖 영상을 휴대전화로 언제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상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전 세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세계에서 지금 이런 분야에서 제일 큰 회사는 넷플릭스라는 미국 회사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다 뿐이지,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영상을 제공합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상은 무려 4,000만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10년 남짓한 기간에 4,000만 개를 제공하고 있는데 매년 볼 수 있는 영상이 수백만 개씩 더 늘어나겠죠.

 

저는 서울에서 밥 한 끼 값인 10달러 정도만 매달 내고 이 영상들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자막도 다 달아주니 말을 몰라서 못 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한류 열풍이 거셉니다. 한국에서 생산한 드라마나 음악 영상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겁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넷플릭스에 가입해서 한국 영화, 드라마, 음악을 실시간으로 즐깁니다. 반대로 한국에 사는 저는 미국에서 어느 드라마가 인기라고 하면 그걸 바로 찾아봅니다.

 

넷플릭스에 가입된 전 세계 가입자는 25,000만 명에 이르고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800억 달러나 됩니다. 즉 넷플릭스라는 회사를 사려면 1,800억 달러를 써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을 열 번 팔아도 사기 어렵습니다. 북한은 매년 무역을 해서 1억 달러도 못 벌고 적자만 기록하는데, 북한 무역 다 합쳐도 넷플릭스 사무실 한 개 층도 못 산다는 의미입니다.

 

넷플릭스 덕분에 좋은 드라마를 놓칠 걱정이 없습니다. 시간 날 때 들어가면 드라마를 한꺼번에 다 몰아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사용하는 나라는 무려 190개로, 세계에서 북한 등 한두 개 나라만 이 좋은 것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상을 제공하는 기업이 넷플릭스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쟁 기업들도 엄청 많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영상을 제공하고 벌어들이는 돈이 3,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런 회사들은 한국에만 6~7개 정도 있는데, 이런 것을 남쪽에선 OTT 서비스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쯤 이런 데 가입해서 보고 싶은 영상을 봅니다.

 

과거 영화부터 엊그제 나온 영화까지 다 있습니다. 전쟁 영화를 좋아하면 전 세계 전쟁영화 쭉 다 떠서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보고, 연애 드라마를 좋아하면 전 세계 연애 관련 영상이 다 뜹니다. 하나를 보고 나면 그 비슷한 영상들이 쭉 뜨는데, 그러다 보니 자꾸 보게 되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됩니다.

 

북한처럼 인민을 노예로 부리면서도 이걸 혁명을 한다고 선전하는 곳에선 이렇게 인민들이 재미있는 것에 시간을 파는 것을 못 견딜 겁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강연회니, 학습회니 자꾸 불러내 세뇌를 시키려 하겠죠.

 

휴대전화로 언제든 내가 보고 싶은 재미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보다 보니 이제 저는 TV를 잘 보게 되지 않습니다. 조만간 TV 회사들이 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어떻습니까. 북한도 물론 평양 사람들에게 도서 같은 것은 휴대전화로 골라보게 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오직 북한에서 출판된 재미없는 것들만 허락합니다.

 

또 북한은 전국에서 볼 수 있는 TV는 오직 하나만 있고, 그걸 틀면 주구장창 위대한 장군님이 어쩌니 그런 것만 계속 나옵니다. 제가 북에서 살던 수십 년 전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복판에서 사는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기뻐하는 시대에 북한은 외부 영상을 봤다고 반동으로 취급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혁명을 한다면서 70년 넘게 이런 지옥을 만들어 온 것이 북한입니다. 여러분들은 혁명이란 말에 속았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고, 세상이 발전하면 그 발전을 공유하면서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혁명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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