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의 대표적 거짓말 두 가지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12.27
bochunbo_battle_b 북한에서 발행된 보천보전투승리 70돌 기념우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2019년의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11년 전 30대 중반에 이 방송을 시작한 저도 벌써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올해엔 연말이 돼 한 살 더 먹게 되니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한 일과 내년에 할 일을 머리에 떠올리는 습관도 언제부터인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방송은 주업이 아니고, 본업은 11년째 쭉 신문기자로 있으면서 북한의 여러 이야기들을 기사로 전합니다. 연말이 되니 그중에서 올해 제가 단독으로 보도했던 내용 중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보천보전투 당시 김일성은 없었다는 단독보도였습니다. 82년 전인 1937년 6월 4일에 있었던 일이죠. 하지만 보천보의 신화, 김일성의 신화가 지금의 김 씨 세습 왕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김일성 회고록을 보면서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하셨나요. 이제부터 다시 보십시오. 김일성이 지휘했다는 부대의 참모장이 누구일까요? 참모장이 분명 있었을텐데, 그 이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중국도 그 이름을 숨겨주고 있습니다. 북한도 숨기고, 중국도 숨긴 그 이름이 82년 만에 공개됐습니다.

바로 왕작주라는 중국인이었습니다. 그는 동북항일연군 2군 6사 참모장, 즉 김일성부대 참모장인데, 사실 거의 모든 작전을 짠 사람입니다. 왕작주는 길림군관학교 졸업생인데 병법은 전혀 몰랐던 김일성을 대신해 주요 전투 대부분을 지휘했습니다. 왕작주의 존재가 알려지면 북한에서 선전하는 김일성의 항일투쟁 업적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은 그 존재를 철저히 숨겨왔습니다.

보천보전투 역시 김일성은 현장에 오지 않았고, 전투를 기획하고 현장 지휘한 사람은 왕작주였습니다. 당시 왕작주는 베개봉 지역에 진출한 최현 부대가 일본군에 포위되자 베개봉과 적의 거점인 혜산과의 중간지점인 보천보를 공격했습니다. 배후를 공격당한 일본군은 포위를 풀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보천보전투 당시 다른 부대를 이끌고 중국에서 교란 작전을 폈습니다. 이런 사실은 중국이 지금까지 숨겨온 비밀자료가 마침내 한 조선족 작가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공개되면서 밝혀졌습니다.

보천보전투에는 왕작주의 지휘 하에 오중흡이 중대장인 6사 소속 7퇀 4중대 70여 명, 무량본이 중대장인 8퇀 1중대 30여 명, 이동학이 지휘한 기관총소대 10여 명, 박녹금 중대장이 지휘한 여성중대 10여 명 등 총 13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보천보 경찰서 습격을 맡았던 중국인 항일열사 무량본과 6사 9퇀장 마덕전은 해방 후에 중국 정부의 조사 때 보천보전투를 왕작주가 지휘했다는 회고담을 남겼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감춰왔습니다. 1967년 보천보전투기념비를 크게 지을 때 보천보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강위룡이 “보천보에 김일성 장군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가 숙청될 뻔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김일성이 보천보에서 “조선은 죽지 않았고, 조선의 정신도 살아있다. 원수의 머리 위에 불을 지르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오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연설을 했겠습니까.

연설 비슷한 것이 있긴 했지만, 중국 공산당 장백현위 서기 권영벽이 노획한 물자를 운반할 사람들을 모아놓고 돈 얼마 줄 테니 따라갈 사람은 따라오라 한 정도였습니다.

왕작주는 1940년 전사했는데, 그를 쏜 사람이 바로 김일성이라고 합니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전투 중 중상을 입은 왕작주가 의식을 잃고 체포돼 이송될 때 김일성이 나타나 총을 쐈다고 합니다. 변절한 줄로 착각하고 다 죽인 것이죠.

보천보전투 외에도 왕작주가 지휘한 전투를 김일성은 모두 자기가 했다고 회고록에 적고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 정권은 애초부터 사기와 거짓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보천보전투, 사실 일본인 세 명인가 있는 동네를 쳐서 베개봉에 간 일본군의 시선을 분산시킨 이 작전은 전투라기에도 애매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 전투는 김일성이 아닌 왕작주가 지휘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제가 올해 밝혀낸 중요한 비밀은 북한의 인구가 외부에 450만 명이나 부풀려진 것입니다. 북한은 외부에 인구가 2500만이라 발표합니다. 북한 주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올해 북한 중앙통계국의 비밀자료를 입수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북한 인구는 올해 205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북한은 외부에 발표하는 자료와 내부 자료를 엄격히 구분해 관리하는데 제가 입수한 통계는 수십 년 동안의 북한 인구 변동 추이를 1000명 단위까지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구는 2005년 2100만 명을 넘어섰다가 2009년부터 2000만 명대로 후퇴했고, 이후부턴 계속 줄어드는 추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40년 치 기록을 보니 북한이 과거 외부에 공개한 인구는 당시의 한국 인구 절반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인구가 4000만일 때 북한은 2000만이라고 했고, 4600만 명일 때 자기들은 2300만 명이라 하는 식입니다. 한국 인구가 5000만 명 넘으니 지금은 2500만이라 하는 겁니다.

국력을 부풀리고 군 숫자를 숨기기 위해 인구 조작을 하는 것은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공통된 현상이었는데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김일성 신화부터 인구까지 아무튼 온갖 방면에서 거짓말이 일상화된 북한입니다. 문제는 그 2000만 명이란 인구도 먹이지 못해 저렇게 굶주리게 만드는 북한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내년이라고 뭐가 달라질까요. 오히려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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