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한국의 월드컵 열풍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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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cup_cheers-305.jpg 7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붉은 티셔츠를 입고 월드컵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전을 벌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순간이 드디어 오늘 저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즉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팀의 첫 경기가 우리 시간으로 오늘 저녁 8시 반 시작됩니다. 한국은 그리스, 그러니깐 희랍하고 첫 경기를 갖습니다.

그리스는 이탈리아, 독일, 잉글랜드 등 축구 강국들이 즐비한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 지금은 그리 수준이 높은 팀으론 꼽히진 않지만, 2004년에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습니다. 한국은 예선에서 그리스, 아르헨티나와 나이제리아와 한 조입니다.

북조선의 첫 경기는 16일에 브라질과 치르죠. 우리 시간으론 새벽 3시 반에 경기를 하니 응원을 하려면 밤을 꼬박 새워야 합니다.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저는 상당한 각오를 하지 않고선 보기 힘들군요. 물론 여기는 생중계를 못 봐도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자기가 보고 싶을 때 다시 볼 수는 있습니다.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니 기분이 어떻습니까. 정말 흥분되고 설레죠. 비록 북조선이 속한 조가 하필이면 강팀들만 몰린 ‘죽음의 조’이기 때문에 16강에 올라가려면 참 힘든 싸움이 예상되지만, 경기 시작 전 이 순간에는 우리 모두에게 실망보단 희망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맘속에 가득한 이런 희망들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분출합니까. 남쪽에선 집단 응원으로 분출합니다. 한국의 응원문화는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역동적이고 또 감동적입니다.

저는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 다행히 그 이전에 한국에 와서 월드컵의 열기를 직접 체험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한국의 응원은 열광적인 응원으로 유명한 유럽의 축구팬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럽과는 달리 난폭하지 않고 도덕적이고 질서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기가 열리면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서울 거리의 곳곳에 몰려나와 가로 세로가 5~6m씩 되는 커다란 TV 앞에 모여 응원을 시작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큰 광장은 서울시청 앞에 있는 서울광장인데, 크기는 김일성광장의 한 3분의 1 정도로 작지만 여기에 10만 명 가까이가 몰려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결같이 빨간 티셔츠를 사람들이 10만 명이 모이면 거대한 붉은 파도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한국 응원단을 ‘붉은악마’라고 합니다. 붉은악마라는 이름은 외국인들이 붙여준 이름인데 빨간 티셔츠를 입고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붉은 악마처럼 보였나 봅니다.

북에선 응원할 때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하는 것이 고작이죠. 한국에선 축구 응원할 때 “대한민국”하고는 “짝짝짝짝짝”하는 리듬에 맞춰서 박수를 칩니다. 10만 명이 모여서 “대한민국~짝짝짝짝짝” “대한민국~짝짝짝짝짝” 하고 죽어라하고 목청껏 소리치면 정말 굉장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고, 그러다 꼴이 터지면 서로 얼싸안고 “와~”하고 하늘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고...정말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그런 순간이 오늘밤 또다시 서울에서 펼쳐집니다.

북에 있을 때 10만 명 군중 시위 같은 것은 많이 참가해봤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구호라 해봤자 뻔하지요. 선창자가 “당의 방침을 관철하자”하면 사람들이 주먹을 흔들면서 “관철하자, 관철하자”하고 소리치죠. “미제를 타도하자”하면 또 “타도하자, 타도하자”하고 따라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런 시위는 자기가 나오고 싶어 나온 것도 아니고, 구호도 자기가 원해서 소리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마지못해 따라하다 보니 10만 명이 소리쳐봤자 온 몸의 기를 끌어내 외치는 붉은 악마 천 명의 목소리보다 못한 겁니다.

북에서 다른 월드컵 할 때는 그냥 TV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번에는 대표팀이 직접 참가했기 때문에 응원이 예전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거리에 막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응원도 해야 재미있는 거죠. 특히 혈기가 넘치는 젊은 청년들은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브라질과의 경기가 진행되는 것이 새벽 3시 반입니다. 나라에서 새벽에 숱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응원하게 과연 놔둘까요. 제 생각에는 이번 응원도 그냥 집에서, 고작해야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당에선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서 당의 통제를 벗어나 마음껏 소리를 지르는 것이 정말 무서울 겁니다. 가슴에 묻혀있던 사람들의 열망이 목청껏 외치는 함성과 함께 밖으로 분출되는 날에는 어떤 행동들이 뒤따를지 알 수가 없죠.

그렇긴 해도 경기장이나 체육관에는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곳에선 집단 응원정도는 허용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저도 이번에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가려 합니다. 그리고 한국팀뿐만 아니라 북조선 팀도 함께 응원할 겁니다. 정대세 선수가 자기 다짐대로 매 경기마다 한 골씩 넣어서 북조선팀이 한국팀과 나란히 16강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두개의 깃발을 들고 국제경기에 참가하지 않고, 적어도 아세아에는 적수가 하나도 없는 강력한 한 개의 팀으로 참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항상 저의 머리 속엔 ‘통일’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는군요. 오늘 밤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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