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병문안을 하고 돌아서는 심정

김춘애-탈북 방송인
2018-09-21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한 환자가 병상에서 쾌유 기원 글을 읽어보고 있다.
한 환자가 병상에서 쾌유 기원 글을 읽어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곳 남한에 와서 알게 된 동생 같은 친구가 다리 골절 재수술로 인해 부산 강동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무작정 KTX열차에 몸을 실었네요. 2시간 40분이 걸려 부산역에 도착한 저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약 1시간을 더 가서 강동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당직 간호사에게 문의를 하고 입원실로 찾아 들어 갔습니다.

제가 왔다는 소리에 휠체어를 타고 마중 나오는 친구의 모습에서 그만 나 자신도 모르게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났네요.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혀 벙벙하게 서 있었습니다. 오히려 친구가 괜찮다고 저를 위로해 주네요. 원래 친구는 저에게 씩씩한 동생 같은 친구였습니다. 개성이 고향인 그는 성인이 되어 군복무를 마친 남편과 결혼하여 남편 고향인 회령으로 갔었거든요.

고난의 행군 시기 경제난을 겪으면서 8, 6살 어린 두 딸을 남편에게 맡기고 돈을 벌려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었는데 인신매매꾼들에게 걸려 팔려 다니다가 홀몸도 아닌 임신이 된 몸으로 몽골을 통해 오던 중 자연 낙태와 함께 추위로 발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곳 남한에 도착해 열 발가락을 모두 자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장애 5급의 진단을 받았었는데, 지난봄에 친구의 집에 갔다가 그리 높지도 않은 의자에서 떨어 졌는데 발목 골절이 되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몇 개월이 안 되어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으로 다시 재수술을 받았다고 하네요. 장애를 가진 그는 항상 긍정적으로 밝은 모습으로 살아 온 동생과도 같은 친구였습니다.

친구는 분명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이 있을 만도 하건만 표현을 하지 않고 명랑하게 웃었습니다. 그 모습이 더욱 제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저는 친구와 함께 하룻밤을 병원 침대 위에서 뒹굴며 밤새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기도 하고 이곳 남한에서 처음 만나 힘찬 활동으로 더욱 깊어진 우정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친구가 먹는 병원 밥도 함께 먹기도 하고 점심에는 병원 앞에 있는 시장에서 떡볶이와 족발을 시켜 먹었습니다. 1 2일 동안 병원에서, 이곳 남한에 친척 하나 없는 그의 보호자 역할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떠날 때는 정작 친구를 병원에 남겨 놓고 돌아 서자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퇴원 할 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부산역으로 가려고 할 때, 친구가 불러주는 택시를 타고 잠깐 뒤를 돌아보는 순간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친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보였습니다. 마음이 짠하고 아팠습니다. 친동생인가고 묻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저는 서로 태어난 고향은 다르지만 이곳 남한에 와서 알게 됐고 10여년 넘게 지내온 친동생과 같은 친구라고 하는 답에 택시 기사님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또 그 우애가 더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KTX열차의 매표를 구매하고 시간을 기다리면서 친구에게 퇴원 할 때 꼭 오겠으니 치료를 잘 받으라고 다시 한 번 전화로 당부하고 열차에 올랐습니다. 서서히 출발하는 열차에 앉아서 차창 밖으로 먼 하늘을 내다 보느라니 뭔가 조금 쓸쓸한 기분과 함께 밤새 나누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열차를 타고 춘천시장에서 사람 구경하며 소주를 마시고 다시 서울로 왔던 추억, 친구들과 함께 사우나에서 고향생각으로 밤을 지새우던 얘기, 인권 활동으로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나름대로 바쁘게 살아온 날들, 때로는 노래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고 때로는 고향 소식에 서로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함께 눈물도 흘리고 또 뭔가 생기면 함께 나누었던 지나간 시간들이 영화의 화면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행복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친구네요. 그런 친구이기에 가족처럼 동생처럼 때로는 꾸지람도 해 가면서 함께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내 손녀 애도 할머니보다 조금 젊었다는 의미에서 색시 할머니라고 하거든요. 이런 좋은 친구가 오랜 시간 내 옆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된 것이 조금은 부끄럽지만도 너무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