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제법 매서운 꽃샘바람이 불지만 그래도 이제 봄이 온 듯합니다. 지난 주말 저는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으로 가서 등산을 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저의 입에서는 감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산골짜기의 계곡에는 벌써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냇가에 있는 버들가지는 흰색과 연청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금방 터질듯 말듯 한 버들 꽃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입과 코에 가져다 봄의 향기를 맡기도 했습니다.
술에 취하듯 아름다운 봄 향기에 취해 있는 등산객들과 양지 바른 곳에 벌써 파랗게 물이 오른 진달래 꽃 망울을 바라보며 저는 지난 북한에서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4월15일을 맞으며 진달래꽃을 구입하기 위해 산을 헤매던 그 추억과 군 시절에 한가지의 진달래꽃을 손에 쥐기 위해 높은 절벽에 올랐다가 떨어져 죽을 뻔한 저에게 당 생활 총화에서 충성심이 높다는 평가를 해줬던 일...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겨 있는데 쌩쌩 찬바람이 쳐서 소스라치듯 생각에서 깨어나 보니 등산을 함께 간 동료들이 떨어진 저를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가는 등산이지만, 그때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지나간 추억들을 자연과 함께 느끼곤 합니다.
대동강 얼음도 두만강 얼음도 열 번이나 얼고 풀리고 했건만... 우리는 언제면 고향에 가서 아름다운 모란봉 청류 벽에 올라 평양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친구들과 즐거운 등산을 마치고 차를 타고 분위기 좋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벌말 매운탕 집으로 갔습니다. 메기 매운탕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많은 땀을 흘리고 마시는 소주라 인차 취하는 듯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목회 회장님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모신다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따라 들어 간 곳은 카바레였습니다. 저는 당황하여 뛰어 나왔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카바레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저를 따라 나와 카바레 오는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다시 들어갔습니다. 중년의 여성들이 날아갈 듯한 얇은 옷을 입고, 쌍을 맞추어 브루스를 추고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곳 남한에 와서 저는 이런 곳이 처음이었습니다. 한참을 배웠지만 저의 꿋꿋한 몸매로서는 참 배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온몸에 땀범벅이 되도록 열심히 배우며 추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제 모습을 보며 즐겁게 만들어가며 사는 제 인생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는 춤을 추는 아름다운 주부들을 보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성들이 바로 대한민국 여성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춤추며 땀을 흘린 우리는 카바레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셨는데, 춤추던 여성들이 한명 두 명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여성분들은 왜 가는 가고 사장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분들은 가정주부라 가족의 저녁 준비 때문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학교로 또는 회사로 출근 시킨 후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잠깐 왔다가 간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그들 모습과 내 고향 주민들의 모습이 비교됐습니다.
해마다 진행되는 행사 준비로 저녁마다 동사무소 앞에 모여 군중 무용 연습을 했습니다. 무조건 받아야 하는 훈련인데도 저녁에 퇴근한 남편들은 비서를 찾아와 바람이 날까 두렵다고 군중무용 행사에서 빠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던 그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목회 회장님에게 오늘 카바레에 온 목적에 대해 물었더니 제가 이곳 남한에 와서 이렇게 좋은 곳은 구경하지 못한 것 같아 오늘은 이런 곳을 구경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목회 회장님이 다음번엔 또 어떤 곳을 구경시켜주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