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인민반장과 남한의 동 대표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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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주민들이 지게로 짐을 나르고 있다.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주민들이 지게로 짐을 나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저는 이번에 동대표가 되었습니다. 동 대표로 당선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고 당선증을 받으면서 동과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가슴 한가득 부풀어 올랐습니다. 얼마 전 저는 동 대표 후보 접수하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까지 만해도 아무 미련도, 아니 생각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번 동 대표로 당선된 데에는 남편의 도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동 대표 후보 등록할 때에도 내가 탈북자라는 이유로 조금 두려움도 있었습니다만 남편은 괜찮으니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잘해 낼 수 있다고 힘을 실어 주었거든요. 당선증을 손에 받아 드는 순간 또 하나 지나간 추억을 해보았습니다.

오래전 평양에서 인민반장으로 선거 받던 그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그 때에는 인민반장에게 조금이나마 지어지는 권력의 힘이 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쾌히 승낙을 했었거든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인민반장 일을 한다면 직장 출근하는 것보다 시간과 경제적으로 훨씬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북한의 인민반장이라면 남한에서는 아파트 통장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통장이건 동 대표든 선거위원회에 등록을 하고 아파트 단지 내 살고 있는 주민들의 직접적인 찬반투표 선거 절차에 의해서 당선이 됩니다. 하지만 내 고향 평양에서는 당 조직에서 추천하면 담당안전원과 보위지도원이 결재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결정이 되면 행정 동사무장이 인민반 주민들을 모아 놓고 당 조직의 결정으로 누가 인민반장으로 결정되었다고 선포 합니다. 주민들은 찬반 없이 싫건 좋건 간에 무조건 받아 들여야 합니다. 평양시 인민반장들은 무조건 당원이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인민반장들의 임무는 우선 주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고 24시간 사상 동향을 보위부와 보안원, 그리고 당 조직에 보고하는 것입니다.

사실 조금 우스운 얘기지만 북한의 후방은 인민반장들이 보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양시 인민반장들에게는 지방의 인민반장들보다 특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양시 인민반장들은 하루 식량 600g 공급과 동시에 지금은 경제개편으로 달라졌지만 그 때 당시에는 30원이라는 월급이 있었고 나이가 되면 연로 보장까지 해결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지방이나 국경연선이나 전연 어디에 친척이 있다는 것만 확인이 되면 1년에 한번쯤은 통행증을 발급해 주었으며 인민반장의 집에는 전화까지 놓아 주어 시도 때도 없이 담당 보안원의 지시를 받을 수 있고 또 보고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이고 친척 친구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사는 곳은 어디이고 자주 왕래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아침저녁 음식물 찌꺼기에서 누구 집에서 기름방울이 떠 있는가도 세밀히 감시해야 했습니다.

누가 옷을 잘 입고 돈을 잘 쓰는지 등 경제생활까지도 모두 감시했으며 또 어느 집에서 비디오를 보는지, 그리고 술 놀이와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직장 출근을 잘하는지 장마당에 자주 출입하는 등 문화생활까지도 일일이 감시해 보고해야 하는 것이 인민반장의 임무였습니다.

사람들을 감시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남다른 직업을 가지고 10년 동안 살아왔던 저였기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였기에 서로 다른 제도하에서 살아온 제가 감히 어떻게 동 대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저를 찾아온 홍보 이사님에게 분명하게 저는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면서도 때로는 이방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여러 번 늦은 시간에 찾아오시는 그분이 민망스러워 허락은 했었지만 기대와 희망은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나였기에 당선증을 받는 순간 많이 떨리고 ‘내가 과연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면서 든든한 분이 있어 나는 잘해 낼 거야 하는 굳은 신심이 생겼습니다.

시간과 세월이 말해 주듯 우리도 인제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또 진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의 인민반장은 주민들을 하루 24시간 감시하는 동시에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임무이지만 이곳 대한민국의 통장이나 동대표들이 하는 일은 관리사무실 직원들과 경비원들과 청소하는 서비스 직원들과 잘 협력하여 주민들이 아파트생활에서 불편함이 없는가를 살펴보고 그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주민들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동과 주민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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