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어제는 조상들의 묘를 찾는 추석 명절이었습니다. 음력으로 8월 15일인 추석은 한국에서 대표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로 한가위라고도 합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는데 제수는 햅쌀로 만든 메떡과 술, 오색 과일을 마련합니다. 추석은 햇곡식 수확기를 맞아 풍년을 축하하고,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우리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며 이웃끼리 인심을 나누는 놀이를 즐기는 명절이기도 합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추석을 1년 중 가장 큰 명절로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추석이 오기 벌써 며칠 전부터 서울시내 곳곳에서는 추석맞이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추석 선물을 배달하는 택배 아저씨들이 오토바이나, 트럭을 타고 분주히 달렸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추석 차례상이나 선물을 사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인터넷에서도 물건 주문이 밀려들었습니다.
기차나 고속버스표는 훨씬 전부터 예약이 끝났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도 추석 명절엔 햇곡식으로 밥을 지어 조상들에게 먼저 올려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야 한해 가족들의 운이 잘 풀린다고 했습니다. 남한에 온 뒤로도 어김없이 해마다 찾아오는 추석 명절이지만, 해가 가도 쓸쓸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며칠 전엔 동생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장마당에서는 쌀 가격이 하루가 무섭게 치솟고 있는데 국가에서는 배급도 주지 않고 당대표자회가 있다면서 주민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대표자회가 사람을 죽인다고 노골적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지금 북한 장마당에서는 쌀 1kg에 1,400원, 옥수수는 620원이고, 중국 돈과 북한 돈 환율은 중국 돈 100원에 북한 돈 23,500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이라 올 추석은 그야말로 조상은 둘째 치고, 산 사람들이 죽을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추석이 다가오지만, 부모님 제사상에 올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합니다.
동생의 말을 들으며 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리고 한 맺혔던 오래전 추석이 떠올랐습니다.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북송돼 고향이라고 찾아갔는데 그날이 바로 추석이었습니다. 생활이 궁했던 처지라 저는 부모님 제사상에 사과 한 개와 배 한 개, 그리고 밀가루로 만든 빵 다섯 개를 겨우 올려놓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그 땐 저 자신도 한스럽고 미웠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고, 남들보다 부족한 것 없이 저를 예쁘게 키워준 부모님 제사상이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때 초라한 제사상 앞에서 '부모님, 오늘은 이렇게 초라하지만 언젠가는 푸짐한 상을 차려드리겠습니다' 하고 혼잣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부모님 산소에도 찾아가지 못하는 불효자식이 됐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갖가지 차려 놓은 식탁 앞에서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고향을 그리며 베란다 창문 앞에서 먼 북녘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이곳 남한은 쌀이 남아돌아 짐승들의 사료로도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추석이면 쌀과 과일, 남새도 풍년인데 내가 나서 자란 북한의 주민들은 풍요로워야 할 추석에도 먹거리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오늘도 조상의 제사상에 올려놓을 것이 없어서 눈물만 흘리고 앉아있을 주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 주민들도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사소한 걱정 없이 추석 명절을 즐겁게 보낼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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