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겨울 내복

서울-김춘애 xallsl@rfa.org
2009.12.23
jts_thermo-305.jpg 2004년 12월 국제구호단체인 JTS가 북한 함경북도 고아원과 양로원에 전달할 내복 1만벌 등 겨울나기 용품을 부산항에서 선적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오른 저는 곧 바로 개봉 전철역에 있는 개봉 플라자에 들렸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부랴부랴 내복을 구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들, 딸들도 주고 사위들도 하나씩 주려고 저는 간 김에 내복을 5벌 구입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산 내복이었습니다. 북한 보다 겨울이 춥지 않아서 한국에 온 지 7년이 됐어도 여태까지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았지만, 올해는 내복을 입었습니다. 북한보다 춥지 않다고 하지만, 그동안 내복을 입지 않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사실 이곳 남한 사람들은 어린이들과 노약자를 제외하고는 내의를 잘 입지 않습니다. 가정마다 집집마다 뜨끈뜨끈한 온수가 나오지 버스나 전철을 타도 난방장치가 잘 돼 있어 심지어 덥기까지 하지, 자가용 차를 타도 비행기와 기차를 타도 백화점이나 상점에 가도 또 식당이나 음식점에 들어가도 난방시설이 워낙 잘 돼 있어서 내의를 입지 않아도 추울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내복이 유행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과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내복을 입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에너지 절약이 강조되면서 텔레비전에서도 내복을 입으라는 광고가 많이 나오고 있고 유명한 연예인들이 내복을 직접 가지고 학교들을 찾아가서 내복을 입으라고 홍보도 하고 내복을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길거리와 전철 안에서도 따스한 내복을 입으라는 광고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내복을 홍보하는 내용을 보니까 겨울철에 내복을 입으면 체감 온도가 3도 정도 올라가기 때문에 지나친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되고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고, 숙면도 취할 수 있어서 건강에도 매우 좋답니다.

내복은 또, 우리 몸이 발산하는 열을 쉽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체온의 변화를 막고 추위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지금 많이 돌고 있는 신종플루와 같은 질병을 미리 막는데 좋다고 하니 더 없이 요긴한 참살이 필수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모범을 보이며 내복 입기를 강조하고 있어서인지 올해는 남한에서도 내복을 입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산 내복을 입고 잠을 자니까 별로 춥지가 않아서 집안에 난방을 굳이 틀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남한의 아파트는 공사할 때부터 벽에 단열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그리 추운 것 같지 않습니다.

반면에 제 고향 평양의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던지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시려오는 듯 합니다. 빨리 날이 밝고 해가 떠야 밤에 얼었던 몸을 그나마 녹일 수가 있는데 하루 밤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이불 속에서도 아이들의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줘야 했고 너무 추워 꼬부리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이 쑤시고 허리가 아팠습니다.

동내의를 사고 싶어도 상점이나 백화점에서도 마음대로 구입을 할 수가 없었고 몇 년에 겨우 한 벌을 공급받아 해마다 기워 입어 동내의 한 벌을 가지고 10년은 입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사정은 과거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동내의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하는 가엾은 북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요즘 남한 텔레비전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해 내복을 입으라고 홍보하는 광고를 보면서 남북한의 차이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도 헐벗고 굶주리면서 동내의 한 벌 제대로 입지 못하고 강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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