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남한의 겨울


2007.01.01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저는 구멍탄을 가득 싣고 지나는 화물차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몇 년 전 까지 만해도 저런 구멍탄을 피웠고 이런 추운 날씨에 저 구멍탄 덩이 하나 없어 날을 밝히던 그 시절의 추억에 대해서 말입니다.

기나긴 겨울 월동준비에 김장도 중요하지만 땔 것이 없어 차디 찬 방에서 지내는 겨울은 얼마나 지루하고 긴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남한의 겨울은 너무도 짧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느 덧 남한 생활도 4년이 되어 갑니다만 그동안 살면서 보니 이곳 남한의 주부들은 겨울철에 가정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앉아 추운 겨울에도 덥다고 여름옷을 입고 앉아 수다를 떠는 것 밖에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겨울 월동준비를 하려면 매 가정에서 구멍탄이 적어도 1000덩이는 있어야 그나마 겨울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멍탄 1000덩이를 마련 못해 온 겨울 추운 방에서 덜덜 떨며 살았습니다.

때로는 아궁이에 당장 올려놓을 구멍탄 한 덩어리가 없어 남의 것을 조절도 하고 때로는 기차역에 나가 화물열차에서 떨어진 석탄가루를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다가 한 덩이 한 덩이 빚어 때던 일들. 때로는 평양 방직공장에 무장경비 모르게 담 넘어가 굴뚝에서 날아 나는 석탄 재 가루를 쓸어다가 빚어 때던 일들. 추운 겨울에 석탄을 절약하느라 찬물로 빨래도 하고 차디찬 물로 설거지도 하여 손이 트고 발이 텄던 일들.

겨울에는 먹을 식량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는 석탄도 그에 못지않게 없어서는 안 될 겨울 양식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길거리를 걷다가도 오늘처럼 구멍탄을 싣고 가는 모습만 보아도 감회가 깊어지곤 합니다. 제가 이제 남한에 온지 4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에 비하면 천국에 와 살고 있는 듯 하며 너무도 행복한 나머지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겨울에도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지 방 온돌도 스위치만 돌리면 24시간 온수가 들어와 밖에는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답니다.

정말이지 북한과 남한은 같은 민족이고 한 하늘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는 한 민족이고 그저 남과 북이 갈라져 있을 따름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심한지. 남한은 그야말로 천국이고 북한은 왜 세계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못사는 나라인지, 저는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네요.

오늘 지금 이 시각에도 석탄이 없어 차디찬 방에서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주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고 아픕니다.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이 더운 물이 없어 찬물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학교에 가고 있을 우리 어린이들. 틀대로 튼 고사리 같은 우리 어린이들의 손과 발의 모습이 언뜻언뜻 영화의 화면처럼 지나갑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우리 개구쟁이 녀석들도 어렸을 때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놀다 저녁이 되면 더운 물이 없어 찬물에 씻어 주었고 텄던 손과 발을 낡은 칫솔로 빡빡 씻어주면 아프다고 울었었습니다. 그 때엔 그저 능력 없는 부모를 만난 것을 탓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 남한에서는 능력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부지런하고 꾸준하고 열심히만 살면 얼마든지 남들처럼 세상에 부러운 것 없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부자가 따로 없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부자도 처음부터 부자가 아니었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 나이에 남한에 온 것이 조금은 늦은 감은 있으나 이것도 행복이고 행운이라고 봅니다. 남은 인생을 남들이 한 발자국 뛰면 저는 열 발자국, 남이 열 발 자국 뛰면 저는 백 발자국 달리고 달려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북한에서 처럼 설움을 안고 고통을 받으며 살게 하고 싶지가 않네요. 저는 항상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된답니다. 너희들은 앞으로 건강하고 부자가 되어 통일되면 고향에 가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에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남과 북이 통일되면 고향인 평양도 여기 서울 못지않게 무궁무진하게 발전시켜 우리 고향의 주민들도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도 내 고향의 주민들이 석탄이 없어 냉돌방에서 떨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이면 평양의 아파트에도 중앙난방이 돌아가게 될지. 언제이면 북한에 흔하디 흔한 석탄 공급이 제대로 되어 더운 물을 마음대로 실컷 쓰게 될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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