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 김부자의 가계 2

200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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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수경

매주 보내 드리는 주간 기획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실체’시간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오랜 우상화 정책을 통해 마치 중세시대 왕처럼 신격화 됐습니다. 그들의 출생은 물론 가족 관계, 이들의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권력 장악 과정도 북한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일성 김정일 가계에 대한 얘기를 해봅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한에서 '위대한 혁명 가계'라고 불리는 김일성의 증조 할아버지 김응우와 할아버지 김보현, 그리고 아버지 김형직에 대한 얘기를 해 드렸는데요, 북한 당국은 마치 김일성 가계가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을 주도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김일성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드리겠습니다.

김일성은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과의 사이에서 첫아들로 태어났는데 당시 김형직의 나이 18살이었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날 때 이름은 김성주였습니다. 그 후 김형직은 둘째 아들 철주를 낳았는데 그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 태어난 셋째 아들이 바로 북한 부주석을 지낸 김영주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김일성의 친가와 외가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는 점입니다. 김일성의 출신지인 평안도는 조선 후기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곳입니다. 실제로 김형직은 평양의 기독교 학교인 숭실중학교 학생이었고, 나중에 기독교 계통인 명신학교의 교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숭실중학교는 미국계 기독교 학교로 한국에서 기독교를 전파할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당시 김형직이 기독교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기에 숭실 중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은 그의 기독교 신앙의 독실성을 말해 줍니다.

김일성의 외가는 친가보다 더 독실한 기독교인들로 김일성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은 교회 장로서 만경대 일대에서 신임 받는 교육자이자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던 사람입니다. 특히 '반석'이란 이름도 성경에 나오는 사도 베드로의 별명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강반석의 다른 형제들과 친척들로 모두 기독교인으로 평양 등지에서 민족운동과 계몽운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강반석은 김형직과 결혼할 당시 평양 칠골 교회 출석교인이었는데요, 이후 강반석은 만주로 가족이 이주한 이후에도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가 이끄는 만주 한인교회에 김일성을 열심히 데리고 다녔습니다.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의 부모님인 김형직과 강반석이 일제시대 항일 운동을 주도했던 역사적 인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특히 김형직은 3.1 봉기 투쟁을 주도한 반일 민족해방투사이며, 강반석은 만주에서 독립운동단체인 '반일 부녀회'를 결성한 조선의 어머니라며 받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김형직과 강반석에 활동에 대한 북한측의 주장은 과장된 면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유호열: 김형직씨는 주도적 인물은 아니더라도, 3.1 운동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평양에서 일종의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반석씨의 경우는 항일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북한에서 얘기하는 것을 자료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강반석은 1932년 만주 무송에서 40세의 나이로 병으로 사망했으며, 김형직은 이보다 앞선 1926년 6월 역시 만주 무송에서 32살의 나이로 일찍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김일성의 나이는 14살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후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의 이름을 길이길이 남기기 위해, 일부 대학과 학교, 병원, 행정구역의 이름을 이들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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