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뽀롯이’ 살던 내가 남에서 박사 과정을 선택한 이유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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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뽀롯이’ 살던 내가 남에서 박사 과정을 선택한 이유 신년특집 장마당세대 출연진.
RFA Graphic

(진행자) ‘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 51화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신년 기획특집 ‘박사급 장마당세대 통일수다. 북한을 경험하고 북한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 과정의 장마당세대의 이야기로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회령, 종성, 청진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장마당세대 학자들과 서울 출신으로 일본에 정착한 박사 과정 동료가 방송을 위해 온라인에 모였습니다.

(정영희) 반갑습니다. 회령 출신으로 한국 생활은 11년입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경화)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경화라고 합니다. 한국 생활 13년 째입니다. 함경북도 종성 출신입니다.

(조현성)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삭과정 다니고 있는 조현성이라고 합니다. 기업은행에 입사해서13년차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세진)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일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듣고 있습니다. 조현성 씨와 제가 수업을 함께 듣는 동기인데요, 북한에서 아주 큰 상을 받았던 천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요?

(조현성) 북한에 있을 때 청진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 하나 잘 키워보자는 일념으로 학부모로서 굉장히 적극적이셨습니다. 흔히 말하는 치마 바람을 많이 날리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당시 공부를 못한 편이 아니어서 김일성 소년영예상이라는 상을 받았습니다.

(정영희) 한국와서 뽀롯이 사신다 했더니 북한에서부터 뽀롯이 사셨구나

(진행자) 그게 무슨 뜻이죠?

(정영희) 북한 말로 “열심히 살았다”라고 하는 말이예요.

(진행자) 북한에서도 뽀롯이 살았고 한국와서도 뽀롯히 살았다는 뜻이면 조현성 씨는 ‘미스터 뽀롯’이군요.

일동 웃음, “맞아요”

<북한 전공의 박사 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진행자) 네 분이 박사 과정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정영희 씨는 통일안보 이경화 씨는 국어 교육, 조현성 씨는 금융·경제·정보기술(IT) 유일한 남한 출신인 김세진 씨는 언론으로 전공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큽니다. 먼저 나는 왜 한국에 정착한 후 박사 공부를 선택했나를 얘기해 볼까요?

(조현성)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 잘 알거라는 사람들의 편견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살았어도 모르는 부분 상당하고 설명하는데 기본적인 틀이 있어야 해서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해왔습니다. 박사과정 같은 경우에는 기업은행의 연구소에 일하고 있으면서 저의 전문지식을 더 키워야 되겠다고 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정영희)한국에 와서 박사까지 할 것으로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2009년 한국와서 2010년 하나센터 소장님의 추천으로 교육청에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는 요청 받았습니다. 그때 중학생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증언을 들었던 학생들이 평가글을 제게 보내 왔는데 1천 통이라면990개 저보고 통일교육 전문강사가 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했는데, 선생님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안좋았던 생각보다도 남북한이 오랜 동안 분단으로 살다보니 이질감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남북한이 통일하려면 선생님 같은 사람이 많이 활동해야 한다는 격려와 응원에 감동이 되어서 통일교육 전문강사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제가 듣고 경험한 북한 실상을 단순히 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강의에) 전문 지식을 포함하고 싶어서, 제게 편지를 줬던 학생들과의 약속이기도 해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사 과정을 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는데, 남북한이 통일됐을 때 저 같은 사람이 (북한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통일 이후의 삶을) 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화) 한국에 와서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들어갔어요. 학부 때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현대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다보니 남북 문학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문학 자체도 다르고 가르치는 방법도 다르고, 그래서 통일 후 통합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좀 더 공부하고 싶게 됐고 결국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남북한 통합문화 교육에 대해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김세진) 박사를 하게 된 계기는 한국 언론사의 일본 법인장을 하면 경험한 내용을 학문적으로 풀어보고 싶어서 입니다. 일본에는 한국과 가까운 민단과 북한의 정서를 가진 조총련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한국인 사회가 존재합니다. 특히 민단과 조총련 그 두 입장이 북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그런 부분을 더 연구하고 싶었고 일본인들에게도 전문성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오해 ①  북한에서는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

(김세진) 궁금한 게 있는데요. 북한 출신 전문가들이 계시니 질문하고 싶습니다. “북한에서는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행자) 최근 한국에서 탈북민을 대상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는데요, “남한 생활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대답이 “영어” 였다고 기억하거든요, 그렇다면 북한에서 충분히 영어교육을 받지 못하고 한국에 왔다고 생각되는데요, 아무래도 교육 관련이니 국어교육 박사 과정을 마치신 이경화 씨가 대답해 주실까요?

(이경화) 제 경험을 말씀 드리면, 중학교 올라갈 때 영어공부를 시작해요. (다음 주 계속..) 

(진행자)세대와 지역의 인식 차이를 넘어서 한반도 미래의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되려는통일의 주축 장마당세대51화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진국입니다.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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