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새해에도 인민재판 놀음 여전

서울-문성휘 xallsl@rfa.org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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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신년 공동사설을 관철하기 위한 군중대회에 참가한 주민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신년 공동사설을 관철하기 위한 군중대회에 참가한 주민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 알아보는 ‘북한은 오늘’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문성휘입니다.

새해를 맞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신년사는 시종일관 ‘주체사상’으로 일관되어있었습니다. 신년사의 첫 문구에서부터 ‘주체혁명위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마지막 종료할 때에도 ‘주체조선의 도도한 혁명적 전진’이라는 구호를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그토록 즐겨 쓰고 북한이 종국적인 목표라고 정한 ‘주체사상’은 김정일 시대인 1997년에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내놓은 ‘인간중심의 철학’이라는 논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황장엽은 옛 소련의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모스크바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북한에서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거쳐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로, 사회과학 분야와 관련된 김일성의 자문역할을 해왔습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원칙입니다. 철학적 원리에 근거한 주체사상의 사회과학적 원리는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내용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인간중심의 철학, 주체사상이 구현됐다는 북한에서 인민들은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노예나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통째로 철장 없는 감옥입니다. 주체사상의 내용과 대조해 보면 너무도 판이하지 않은가요?

여러분들도 주체사상이 북한에서 아무런 변혁도 이루어내지 못했음을 실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체사상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속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유심론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아무리 주체사상을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이라고 우겨도 주체사상은 주관관념론에 기초한 형이상학적 종교이론에 불과합니다. 주체사상이 있었기에 오늘날 김정은은 하느님인양 북한을 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인민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오직 김정은의 독재를 위해 필요한 주체사상이라는 종교철학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겠습니까? 주체사상을 버리는 날이 북한에 참다운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가 찾아오는 날이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자, 그럼 북한은 오늘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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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시대는 북한의 인민들이 늘 반성문을 써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북한에서 50세를 넘긴 주민들은 김일성시대를 주생활총화, 분기동맹총화, 사상투쟁회, 대논쟁 등 빠짐없이 반성문을 써야했던 고달픈 나날들로 회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 시대는 늘 사상검토를 받던 시대였습니다. 김정일 시대를 경험한 북한의 인민들은 비사회주의 검열, 국가안전보위성 검열, 인민보안성 산하 109상무까지 줄줄이 늘어선 검열 앞에서 늘 사상검토를 받아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는 주민총회 시대라고 소식통들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인민재판은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됐습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끈이질 않던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들과의 투쟁이 대표적인 인민재판이었습니다.

‘반당반혁명 종파분자’ 숙청을 끝으로 김일성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실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들과의 투쟁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새로운 검열제도를 내놓고 인민들에게 사상검토를 강요했습니다.

김정일 시대 북한은 검열성원들이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은 빈 종이에 다른 사람의 잘못만 적어 바치도록 비열한 방법으로 밀수나 강도, 기타 비사회주의적인 범죄들을 색출해내는 수법에 매달렸습니다.

김정은 시대를 주민총회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대해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김정일 시대에도 ‘주민총회’라는 이름의 재판은 있었다”며 “하지만 김정일 시대에는 각종 검열이 많았어도 지금과 같이 주민총회가 일상화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 북한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김정일 시대 주민총회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좀 있었을 뿐”이라며 “당시 주민총회를 열려면 김정일의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사법기관들도 될수록 주민총회를 피하려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간부들과 인민들을 많이 학살했어도 주민여론에 상당히 민감했다며 자칫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는 사건들은 깊이 묻어두거나 인민들이 알 수 없도록 비공개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소식통들은 설명했습니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은 장성택 처형 후인 2014년부터 인민재판 놀음인 ‘주민총회’를 전국의 모든 지방들에서 일상적으로 벌려놓고 있다며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없던 ‘주민폭로회’라는 인민재판 형식도 새로 나왔다고 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주민총회를 열려면 중앙의 승인을 거쳐야 했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중앙의 승인 없이 해당 사법기관들과 도 당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주민총회를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소식통들은 노동당 창건 70돌을 맞던 2015년에 사람들이 각종 건설에 동원되면서 주민총회가 좀 수그러드는 듯 했으나 ‘200일 전투’ 총화를 앞둔 지난해 가을부터 주민총화와 주민폭로회는 2014년의 수준으로 강화됐다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주민총회와 주민폭로회는 15세 미만의 초급중학교 학생들도 무자비하게 내세운다며 주민총회의 비판무대에 올라선 사람들은 대부분 형기를 받고 노동교화(교도)형에 처해지거나 노동단련대 처벌을 받는다고 소식통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반면 주민폭로회는 어린 청소년들부터 나이가 많은 늙은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비판무대에 오른다며 주민폭로회는 형벌로 처벌하기에 애매한 대상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망신을 주는 인민재판이라고 소식통들은 밝혔습니다.

한편 양강도의 소식통은 “올해 첫 주민총회는 1월 22일 양강일보사 옆 공간에서 열렸다”며 “애초 혜산운동장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날씨가 춥고 사람들을 모으기 어려워 장마당과 가까운 양강일보사 주변에서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9명으로 그 중 4명은 마약복용 혐의이고 나머지 4명은 도박혐의, 1명은 여성인데 매음(성매매) 죄였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또 2월 16일이 지나면 거름생산 총화가 있는데 그때부터 매주 각 동사무소 마당에서 주민총회와 주민폭로회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지난해 가을부터 있은 주민총회에서 아직 사형을 판결 받은 사람은 없다며 하지만 어린 학생들부터 늙은이들까지 사소한 잘못을 구실로 인민재판 무대에 올려 세우고 있어 주민들의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의 민심대로라면 김정은의 주민총회 시대도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고 양강도의 소식통은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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