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들이 찾지 않아 썰렁한 김부자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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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알아보는 '북한은 오늘'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문성휘입니다.

49년간이나 쿠바를 통치해 온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위원장이 11월 25일 향년 90세로 사망했습니다. 카스트로의 사망을 애도하려 지난 11월 28일 김정은이 직접 쿠바 대사관을 찾았고 최룡해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도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카스트로의 장례식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영결식처럼 그렇게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생전에 남긴 유훈대로 시신을 화장해 자신의 고향이자 쿠바 혁명의 발원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에 있는 전우들의 옆에 조용히 묻혔습니다.

김일성이 해방 후 소련에 의해 권력을 잡았다면 카스트로는 스스로 동지들을 규합해 혁명에서 승리해 권력을 쟁취했습니다. 김일성은 우상화로 권력을 유지한 반면 카스트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소박함으로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우상화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김일성은 가는 곳마다 동상과 연구실들을 만들어 놓고, 계급과 토대라는 울타리 안에 인민들을 철저히 얽매어 놓았지만 카스트로는 생전이나 사후에 자신을 위한 그 어떤 우상화물도 세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김일성은 감옥처럼 인민들을 가두었지만 카스트로는 자신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갈 테면 가라"며 마리엘 항구를 개방했습니다. 카스트로의 승인아래 1980년부터 마리엘 항구를 통해 쿠바를 떠나간 주민들은 12만5천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김일성과 달리 카스트로는 2008년 2월 쿠바의 최고 권력자인 국가평의회 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자식들에게 권력을 대물림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해마다 금수산기념궁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80만 달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체혁명위업계승'이라는 명목으로 권력을 세습하고 금수산기념궁전에 누워 죽어서까지 인민들을 착취하는 게 김일성의 드러난 민낯입니다. 허나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자신을 기념할 동상하나 남기지 않고 인민들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운명의 마지막까지 사회주의라는 독재체제에 매달렸던 김일성과 카스트로, 먼 훗날 인민이 기억하는 역사에 과연 김일성의 자리가 있을까요? 하지만 소박한 지도자로서 카스트로의 자리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 장담하며 '북한은 오늘' 시작하겠습니다.

12월 17일 북한은 김정일 사망 5주년 추모행사를 요란하게 치렀습니다. 북한의 언론들은 이날 김정은이 오전 9시 당과 국가의 주요 간부들과 함께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나란히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일성 광장과 이어진 만수대 동상에는 김정일을 추모하는 주민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하고요. 금수산기념궁전 앞 광장에서는 김정은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김정일 사망 5주년을 기리는 중앙추모대회를 크게 조직했습니다.

북한 시간으로 이날 낮 12시에는 전국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며 기관차와 선박들이 고동을 울렸고 이런 가운데 주민들은 3분 동안 가던 길을 멈추고 머리를 숙여 일제히 묵념을 했습니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는 지난해 김정일 사망 4주기에 이어 올해에도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김정일 추모행사는 각 지방에서도 크게 조직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해왔는데요. 양강도의 경우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양강도 혁명사적관' 앞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꽃다발과 화환을 증정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행사에는 유치원생들부터 60세 이상 걸을 수 있는 모든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참가했다고 하고요.

이후 양강도는 도 소재지 혜산시에 주둔하고 있는 인민군 10군단과 국경경비대 25여단 군인들, 양강도 각 대학들과 지정된 기관기업소 종업원들로 정오인 12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김정일 사망 5주년 양강도 추모대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북한의 각 지방들에서 김정일 추모행사를 12시부터 시작한 것은 이날 정오에 있었던 추모 싸이렌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12시부터 울리는 싸이렌 소리에 맞춰 행사 참가자들이 3분간 묵념을 한 다음 지방추모대회가 시작됐다는 건데요.

간부들과 주민들이 꽃바구니와 화환을 증정하는 행사가 시작되던 7시부터 추모대회가 끝나는 1시 30분까지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은 비교적 인파가 붐비는 축이었는데 행사가 끝나자 동상 앞은 썰물이 빠진 것처럼 주민들이 빠져 나가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게 소식통들의 하나같은 목소리였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새로 계속 세우면서 각 지역 인민보안부 산하 경비과 인원도 계속 늘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김일성 동상만 있던 2012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북한 동상들은 경비인력 6명이 항시로 배치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일성 동상 옆에 김정일의 동상까지 들어서면서 경비인력은 8명으로 늘었다고 하고요. 북한은 12월 1일부터 20일까지를 김정일 사망 추모기간으로 지정했는데 추모기간이 시작된 이후 동상을 찾는 주민들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고 합니다.

그 원인을 소식통들은 지나치게 과도한 경비와 감시 때문이라고 지적했는데요. 추모행사가 진행되는 전 기간 북한은 낮에는 보안원(경찰)들로 경비인력을 배로 늘렸고 밤에는 대학생들과 각 지역 주둔 군인들로 겹겹이 동상을 둘러쌌다고 합니다.

소식통들은 이와 관련해 "최근 국경연선 지역들에서 공화국을 배신한 자들이 무인기까지 동원해 우리의 최고 존엄에 위해를 하려 발악하고 있다"며 주민들에게 "무인기와 같은 이상 물체들이 공중에 나타나면 즉각 신고하라"고 선전했다고 합니다.

또 북한은 중국으로 부터 개인들이 밀반입한 소형 헬리콥터와 같은 비행장치들을 모두 바칠 데 대해 지시하면서 원격 비행장치들을 제때에 바치지 않고 몰래 보유하고 있는 자들은 내부 파과암해분자로 규정해 엄벌에 처한다는 내용도 추모기간을 맞으며 각 동사무소, 인민반을 통해 주민들에게 선포했다고 합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가뜩이나 경비가 삼엄해졌는데 추모기간을 맞으며 협박에 가까운 규정들과 경계심을 부추기다 보니 오히려 주민들은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 가려고 해도 가지 못하는 현상이 많았다고 소식통들은 언급했습니다.

실제 북한은 추모기간이 시작되는 12월 1일부터 지정된 사진사가 아닌 개별적인 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단속했으며 동상에 접근하는 경우 개인의 손전화도 소지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고 소식통들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추모행사가 아닌 평일에도 북한 당국은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서는 존엄성이 훼손된다며 주민들이 레시바(이어폰)를 귀에 끼고 음악을 들을 경우 해당 기기와 레시바를 회수했다고 소식통들은 언급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이런 행위들로 하여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은 사람구경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었고요. 이번 김정일 사망 5주년 추모기간에는 주민들이 더욱 더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외면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북한은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많은 청취를 기대하며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