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제대군인들의 반발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0.12.30
2010.12.30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제대군인들의 반발’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17살에 입대해 10년간 복무하고 제대하는 북한군인은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뉘며 그 인생행로도 다릅니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호부대에서 복무한 군인들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얻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 김책공대 등 북한의 명문대학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북한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는 계층에 합류할 첫발을 디딥니다.
둘째 부류는 힘겨웠던 10년 군 복무를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군인들입니다. 제대하면 고향에서 가족 친지들과 농사를 짓든 사업소에서 일하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합니다.
셋째 부류는 군 복무 중 기술 능력을 보여 하사관으로 계속 군대에 남아 있는 군인들입니다. 군대생활 10년도 모자라 더 많은 세월을 군에서 보내야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부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제대 후 대학이나 고향이 아니라 당국이 멋대로 지정한 탄광 등 집단노동현장으로 가는 군인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3, 7, 8, 9, 10군단 등 지방 부대에서 복무한 군인들에서 차출됩니다. 1, 2, 5군단 등 휴전선에 배치된 부대보다 군 생활을 다소 편안하게 했다는 이유로 제대하자마자 다시 집단 노동현장에 배치됩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노동당 후보당원’이란 미끼를 던집니다. 노동현장에서 열심히 하면 정식 당원으로 올려주겠다는 꼬임입니다. 그러나 10년간 군대에서 척박하게 살아온 군인들에 제대 후 또 다른 집단노동을 요구하는 북한 당국의 처사에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번 가면 영영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입니다.
북한 당국은 제대군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김정은이 배려한 쌀을 준다고 하지만, 이들은 굴 속에서 평생 일해야 하는 처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배급과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해도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지는 못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사는 게 버거우니 당연합니다.
그래서 도망치는 제대군인들이 많습니다. 양강도 혜산청년광산에는 김정은의 지시로 얼마 전 제대군인 150명이 배치됐습니다. 그러나 하나 둘 몰래 탄광을 빠져나가 이제 작업장에는 50명 정도 남은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입니다.
당국은 고육책으로 젊은 여성들로 조직된 ‘봉사조’를 광산에 보내 제대군인들이 안착할 때까지 돌보도록 했습니다. ‘김정일의 기쁨조’에서 착안한 모양입니다. 당국은 여성 봉사조를 이용해 원치 않는 노동현장에서 이탈하려는 제대군인들을 위무하고 결혼시켜 눌러 앉히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탈자가 계속 이어질 뿐 아니라 제대군인과 결혼한 봉사조 여성도 생활고로 남편을 떠나는 경우도 속속 나왔다고 합니다.
또 같은 시기에 평안남도의 득장탄광에 제대군인 400여 명이 배치됐지만, 약 150명이 작업장을 이탈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당국이 제대군인들의 무단이탈에 출당조치하겠다고 협박을 해도 소용없답니다. 제대군인들은 할테면 해봐라 하는 식으로 당국에 대듭니다. 몇몇 이탈자들이 인민보안부 요원에 잡혀 노동단련대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돌아선 민심은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군 복무한 뒤 광산에 배치될 바에야 차라리 군에 복무할 때 잘못을 저질러 제대되는 ‘생활제대’하는 게 낫다는 말이 돌 정도입니다. 군대에 청춘을 바친 제대군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할 겁니다. 이들에게 또 다른 속박은 죽음과도 같을 것입니다. 당국의 강압적인 위협과 어설픈 회유로는 제대군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을 10년간 군대에 가둬놓는 것도 모자라 제대군인들을 제맘대로 뽑아 탄광에 보내 막장 생활을 강요하는 나라는 지구 상에 북한밖에 없을 겁니다. 북한 당국의 독단적인 정책 탓에 광부가 된 제대군인들의 얼굴은 석탄으로 시커매지고, 이들의 인권은 숯검정처럼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17살에 입대해 10년간 복무하고 제대하는 북한군인은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뉘며 그 인생행로도 다릅니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호부대에서 복무한 군인들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얻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 김책공대 등 북한의 명문대학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북한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는 계층에 합류할 첫발을 디딥니다.
둘째 부류는 힘겨웠던 10년 군 복무를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군인들입니다. 제대하면 고향에서 가족 친지들과 농사를 짓든 사업소에서 일하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합니다.
셋째 부류는 군 복무 중 기술 능력을 보여 하사관으로 계속 군대에 남아 있는 군인들입니다. 군대생활 10년도 모자라 더 많은 세월을 군에서 보내야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부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제대 후 대학이나 고향이 아니라 당국이 멋대로 지정한 탄광 등 집단노동현장으로 가는 군인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3, 7, 8, 9, 10군단 등 지방 부대에서 복무한 군인들에서 차출됩니다. 1, 2, 5군단 등 휴전선에 배치된 부대보다 군 생활을 다소 편안하게 했다는 이유로 제대하자마자 다시 집단 노동현장에 배치됩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노동당 후보당원’이란 미끼를 던집니다. 노동현장에서 열심히 하면 정식 당원으로 올려주겠다는 꼬임입니다. 그러나 10년간 군대에서 척박하게 살아온 군인들에 제대 후 또 다른 집단노동을 요구하는 북한 당국의 처사에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번 가면 영영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입니다.
북한 당국은 제대군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김정은이 배려한 쌀을 준다고 하지만, 이들은 굴 속에서 평생 일해야 하는 처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배급과 월급을 꼬박꼬박 지급해도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지는 못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사는 게 버거우니 당연합니다.
그래서 도망치는 제대군인들이 많습니다. 양강도 혜산청년광산에는 김정은의 지시로 얼마 전 제대군인 150명이 배치됐습니다. 그러나 하나 둘 몰래 탄광을 빠져나가 이제 작업장에는 50명 정도 남은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입니다.
당국은 고육책으로 젊은 여성들로 조직된 ‘봉사조’를 광산에 보내 제대군인들이 안착할 때까지 돌보도록 했습니다. ‘김정일의 기쁨조’에서 착안한 모양입니다. 당국은 여성 봉사조를 이용해 원치 않는 노동현장에서 이탈하려는 제대군인들을 위무하고 결혼시켜 눌러 앉히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탈자가 계속 이어질 뿐 아니라 제대군인과 결혼한 봉사조 여성도 생활고로 남편을 떠나는 경우도 속속 나왔다고 합니다.
또 같은 시기에 평안남도의 득장탄광에 제대군인 400여 명이 배치됐지만, 약 150명이 작업장을 이탈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당국이 제대군인들의 무단이탈에 출당조치하겠다고 협박을 해도 소용없답니다. 제대군인들은 할테면 해봐라 하는 식으로 당국에 대듭니다. 몇몇 이탈자들이 인민보안부 요원에 잡혀 노동단련대에 끌려가기도 했지만 돌아선 민심은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군 복무한 뒤 광산에 배치될 바에야 차라리 군에 복무할 때 잘못을 저질러 제대되는 ‘생활제대’하는 게 낫다는 말이 돌 정도입니다. 군대에 청춘을 바친 제대군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할 겁니다. 이들에게 또 다른 속박은 죽음과도 같을 것입니다. 당국의 강압적인 위협과 어설픈 회유로는 제대군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을 10년간 군대에 가둬놓는 것도 모자라 제대군인들을 제맘대로 뽑아 탄광에 보내 막장 생활을 강요하는 나라는 지구 상에 북한밖에 없을 겁니다. 북한 당국의 독단적인 정책 탓에 광부가 된 제대군인들의 얼굴은 석탄으로 시커매지고, 이들의 인권은 숯검정처럼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