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예술단 출신 전향진 씨 남한서 유튜브 가수로 활발한 활동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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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방송에서 노래하고 있는 전향진 씨.
유튜브 방송에서 노래하고 있는 전향진 씨.
사진 제공: 전향진 씨

북한에서 1호 가수 전향진 씨가 20년 동안 북한에서 가수로 활동하다가 엄마가 뇌 혈전으로 쓰러지는 등 가정의 어려움 속에 탈북을 결심, 2014년에 대한민국에 4살 된 아들을 업고 자유의 땅을 밟았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전 씨는 자신의 어머니는 김정은 위원장의 어머니 고영희 가족과 비슷한 계열로 일본에서 태어나서 북한으로 간 가족이라며, 평양 피바다 가극단에서 노래하면서 가수로 활동한 엄마의 연줄로 자신도 북한에서 가수가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 예술단 출신으로 남한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전향진 씨의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전향진 씨의 봄비, 이은하 씨 원곡 잠시 듣겠습니다.

북한에서 유명한 1호 가수라고 들었습니다. 전향진 씨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전: 북한에서 저는 가수 하시던 엄마한테 태어나서 엄마의 끼를 이어받아서 노래를 쭉 불렀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노래를 불러서 1호 가수라는 명칭을 받으면서 20년을 북한에서 가수 활동만 하다가 2014년에 대한민국에 아들을 엎고 왔고요. 한국에 와서도 노래 부르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가수 활동 그리고 한국에 와 가수 활동 하시는데, 북한에서 가수 활동 회고해 주시지요.

전:북한에서 가수의 시작은 공장이라는 기업소 안에 선전대라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선전대에서 경제 선동하면서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면서 가수 활동 했고, 그러다가 예술단(선전대보다 한 등급 높은 곳)에 가서 성악배우, 북한은 배우라고 해요. 여기선 가수라고 하지만, 북한은 통틀어서 배우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성악배우로 있었고, 한마디로 1호 행사에서 노래를 불렀고…

전향진 씨 어머니는 재일 동포 출신으로 평양 피바다 가극단 가수였다고요.

전: 사실 저희 어머님이 일본에서 태어나서 북한으로 가셨어요. 사실은 저희 엄마가 김정은의 엄마 고영희 가족과 비슷한 계열이에요. 그래서 평양 피바다 가극단에서 가수 활동을 하셔서 그 연줄로 저도 가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북한에서의 가수 활동 비교해 주시지요.

전: 아 엄청 비교되지요. 첫째 북한은 노래를 간절히 부르고, 몇십만 명 군중 앞에서 환호받으면서, 앵콜 받으면서 노래를 불러도 그냥 김부자를 위해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돈 일전 한 푼도 공연비를 못 받아요. 그렇지만 대한민국에 와서는 내가 어디 나가서 노래 한 곡을 불러도 한 곡에 대한 대가가 있고, 정말 잘하면 잘하는 만큼 여기저기 행사에 초대해 주면 그것에 따라서 공연비도 많이 들어오고 이러는 금전적인 문제가 첫째 있고요. 그리고 북한 예술인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김부자를 위한 선전용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므로, 이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요. 그리고 노래 가사에 꼭 김부자 찬양 같은 것이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우러나오는 게 없고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노래 부르면 정말 이제 사랑에 대한 노래, 연민에 대한 노래, 추억과 감정이 풍부한 노래들, 정말 마음에 와닿는 노래들을 부를 수 있는 다른 점이 있고요. 그리고 또 북한에서 예술활동 할 때는 팬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나를 아는, 전향진이란 가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팬이라고 하는 열렬 팬이 따라다니는 이런 게 없었는데 한국에서 가수 활동하니까 정말 팬으로부터 꽃다발 받을 때 너무 감동받았고, 이것이야말로 자유구나 하는 거를 새삼 느꼈습니다.

전향진 씨는 현재 ‘전향진의 사랑 노래’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 통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2만 명 특집으로 생방송도 진행했다고 합니다.

전: 한 150곡 정도 노래를 불러서 올렸고요. 그리고 제가 유튜브를 시작한 지 한 3개월 정도밖에 안 됐어요. 예전에 내가 공연 활동하던 영상들을 1-2개 올리곤 했는데, 많은 팬이 행사장에 정해진 노래 만 듣는데, 다른 노래도 많이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유튜브에 좋은 채널을 만들면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지 않겠나 해서 시작했는데 정말 생각지 않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노래할 때마다 노래 한 곡 한 곡 올릴 때마다, 이렇게 댓글도 보면은요. 오늘은 또 어떤 분이 나한테 응원의 메시지 보내 주셨구나! 또 하루하루 구독자가 이렇게 늘어나는 기쁨이 행복감을 올려 주더라고요. 그래서 노래 열심히 앞으로 더 많이 불러야 되겠다 하고 이렇게 어제도 생방송 할 때도 2만 명 넘어서서, 2만 명 특집으로 하고 또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하니까 으싸 으싸 용기 얻으라고 그리고 가깝게 다가가지 못해도 영상으로나마 사람들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 주고자 유튜브에서 노래 부르고 사람들하고 재미난 이야기 나누고… 요즘 유튜브 방송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탈북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서의 생활 회고는요.

전: 참 제가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요. 대한민국의 와서 사실 저랑, 저랑 같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지 않았지만 정말 대한민국 전 국민들이 친자식처럼, 친형제처럼 우리를 안아 주고 보살펴 주는 걸 보면서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 이 좋은 대한민국에서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사는 것이 우리를 안아준 국민들께 보답하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고요. 또 가는 곳마다 열심히 살아라! 행복해라! 그 말을 들으면 행복해지고요.

전향진 씨는 지금도 부모님 생각에 통일의 그 날까지 꼭 살아 계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전: 행복을 느낄 때 늘 떠오르는 게 부모님 생각이에요. 아직 고향에 아빠 엄마 언니 동생들 다 형제들이 다 있곤 하니까, 항상 내가 행복할 때 웃으면서 뒤돌아보면 부모님이 그립고 그때는 혼자 이런 생각을 해요. 아 오늘은 우리 부모님 반찬에 기름 한 숟갈 넣고 드셨을까 잡곡밥에 입쌀이라도, 쌀알을 조금 섞어서 드셨을 까? 그런 정말 소소한 생각을 하면서 통일이 될 때까지 아버님 어머님 꼭 살아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어떻게 우리 형제들도 저처럼 한국까지 와 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빨리 통일이 돼서 부모님들을 만나는 그날이 오리라 하는 마음 한구석에 항상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갑자기 엄마 생각하니까 너무 보고 싶은데 아빠 엄마 아프지 마시고 제가 보고 싶으니까 늘 건강하게 절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하고 싶고요.

북한에서 같은 무대서 활동하던 친구들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 참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어요. 같은 무대에서 같은 의상을 입고 같이 호흡을 맞춰서 노래하던 친구들은 지금은 다 시집가서 자식 낳고 정말 힘들게 사는 거를 제가 느끼고 있거든요. 정말 통일이 돼서 그 친구들도 저처럼 이렇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자유롭게 노래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저도 같이 그때 되면 제 얼굴은 좀 주름이 졌어도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같이 손잡고 다시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가수 전향진 씨 한국국민들 코로나19로 힘든 나날 보내지만 잘 이겨내길 응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열심히 모두 모두 이겨내고 응원해 주고 격려해 빨리 극복해서 평상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고요. 요즘 봄인데 꽃보러 나가야 하고, 나들이 나가야 할 때, 정말 봄을 느끼지 못하는 심장이 너무 안타까워서 아 꼭 다시 아름다운 봄은 찾아오리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북한 예술단 출신으로 남한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전향진 씨의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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