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정치범 관리소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난 신동혁 씨의 얘기가 3월 말부터 세계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 시작한 이래 그의 비극적인 수용소 경험담과 더불어 비인간적인 북조선 정치범관리소 체제의 실상도 국제사회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언론인이며 저술가인 블레인 하든 (Blaine Harden) 씨가 있습니다. 미국의 주요 신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이었고 현재 미국 공영 텔레비전방송 PBS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지난 3년 여 동안 개인적으로 신동혁 씨를 만나 듣고 확인한 수용소 참상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ESCAPE FROM CAMP 14' 즉 '14호 수용소 탈출'이란 제목의 이 책은 3월 29일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됐고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10여 개 언어로 잇따라 번역돼 나오고 있습니다. 워싱턴을 방문한 블레인 하든 씨를 만나 봤습니다.
RFA: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Blaine Harden (블레인 하든): I was in NE Asia trying to write about North Korea. But it's very difficult because American journalists aren't allowed into the country and if they are, they are taken around by the minders of the government. So you don't learn very much...
북조선에 대한 책을 집필하려고 2008년 동북아시아 지역에 갔었습니다. 하지만 자료 얻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미국인들은 북조선 입국이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허용이 된다고 해도 북조선 당국의 감시원들이 늘 붙어 다니기 때문에 별로 알아 낼 게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당시 신동혁씨가 서울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 저와 개인적으로 대담을 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해 12월 서울에 가서 신동혁 씨를 만나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그 기사가 워싱턴포스트에 실리자 마자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북조선의 정치범수용소 실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반응, 신동혁 씨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독자들, 신 씨를 돕고 싶다는 서신들이 많았습니다. 또 신동혁 씨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동혁 씨에게 연락해 책을 한 권 펴내자고 제의했습니다. 이 책으로 북조선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리는 건 물론 그래서 수용소 실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중국과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치적인 압박을 가중시켜 수용소 철폐를 도모하자고 말입니다. 그것이 신동혁 씨와 함께 책을 만들게 된 배경입니다.
RFA: 책을 통해 북조선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지만 미국이 북한과 핵문제 협상을 할 때 정치범수용소 같은 인권문제를 다루면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왜 협상의 의제로 삼지 않을까요?
Harden: I'm not sure that I am the one to answer the question. But I think that dealing with North Korea in diplomatic meetings are so tricky even without the human rights issue that diplomats have been reluctant to bring it up…
제가 대답하기에 적절한 사안은 아닙니다만 북조선과의 외교적 회담에서 인권문제 말고도 북조선과 협상하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외교관들이 인권문제를 추가로 거론하길 꺼려 왔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부시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던 한 고위 관리가 저한테 한 얘기가 있습니다. 만일 회담에서 미국 관리들이 북조선 수용소 자체를 언급한다면 북조선 대표단은 그 순간 화를 내고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북조선이 인권문제를 협상에서 제외시키려는 전략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RFA: 하든 씨가 신동혁 씨와 대담한 중에 가장 충격적인 얘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Harden: The most shocking story in Shin's life surrounds the execution of his mother and brother. When Shin first came to South Korea and he told the authorities and then he wrote in his book and he told press interviewers, including me, that his mother and brother were executed in the camp after they were discovered to have been planning to escape…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신동혁 씨의 어머니와 형이 처형된 사건이었습니다. 신동혁 씨가 탈북해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신원 조사당국에 자기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 탈출 모의를 하다 적발 돼 처형당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언론에도 그렇게 밝혔고 자신의 회고록에도 그렇게 썼습니다. 심지어 저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당시 밝히지 않았던 비밀을 저와 인터뷰를 시작 한 지 1년정도가 지나 털어놓았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와 형이 수용소 탈출을 모의했다는 사실을 밀고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느낀다는 얘기였습니다. 당시 열 세 살짜리 소년이 간수들에 교육에 의해 밀고자가 된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습니다. 간수들에 의해 키워졌고 수용소 규칙을 엄수하도록 교육받았던 신동혁 씨입니다. 그 규칙의 첫 조항은 수용소 내에서 누군가가 탈출하려는 것을 알면 이를 즉각 고발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처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 씨는 엄마와 형이 수용소를 탈출하자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고 자신이 교육받은 대로 간수에게 알려 그들을 넘긴 것이죠. 그래서 어머니와 형은 신동혁 씨가 보는 앞에서 처형 됐고 신 씨 자신도 그 뒤에 고문을 당했습니다. 아직도 등에 남아있는 끔찍한 상처는 그때 호된 고문을 받아 생긴 것입니다. 신 씨는 한국에 입국해서 이 비밀을 혼자 간직했습니다. 신 씨 생각에는 그걸 밝힌다고 해도 당시 자신이 취한 행동을 사람들이 이해할 리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신 씨는 미국을 방문해 캘리포니어 주 로스엔젤레스 지역에서 탈북자구출활동 단체 링크와 함께 일하면서 주위에서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끼고 이제는 진실을 밝힐 때가 왔다고 판단해 그들에게 비밀을 털어놓았고 저에게도 고백했습니다. 2010년 8월 대담 때였습니다. 신동혁 씨는 자신이 그 비밀을 밝히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드러낼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야말로 수용소의 못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신 씨는 당시 13살이었습니다. 그리고 밀고자가 되도록 간수들에게 교육받고 자랐던 아이였습니다. 신동혁 씨는 이걸 밝힘으로써 독자들이 북조선 정치범수용소의 간수들이 어린 아이들을 밀고자로 만드는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하고픈 의도도 있었습니다. 오직 간수들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친부모는 배반하는 그런 밀고자로 키워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밀고를 하는 수감자에게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음식이 나왔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이 책을 절반 정도 쓸 때까지는 수용소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RFA: 신동혁 씨의 얘기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었습니까?
Harden: A reporter who tries to write about the labor camps in North Korea is in a difficult position. Because, one, the North Korean government denies that the camps exist even though they can be seen in the satellite images, and two, the North Koreans do not allow anybody to go take a look or to talk to anybody at the camps. They never let any outsiders to these camps…
북조선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려는 기자들의 입장은 난처합니다. 우선 북조선 정부는 수용소 존재 자체를 부인합니다. 물론 위성사진에는 버젓이 드러나는 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북조선 당국은 그 누구도 북조선에 들어가 수용소를 둘러보거나 수용소 관계자와 접촉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외부인들에게 결코 수용소 출입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실제 수용소에 들어가 사실을 확인하는 언론의 사명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 씨가 내게 밝힌 얘기가 진실인지를 스스로 검증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그 첫째가 신 씨의 몸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체는 자신이 당한 체벌을 그대로 묘사한 흡사 지도와도 같았습니다. 그가 어머니와 형의 탈출 기도 모의를 밀고한 뒤 자신도 고문을 당하고 불로 지져졌다고 했는데, 그 말은 그의 등과 엉덩이에 난 화상 흉터와 고문 상흔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23살 때 봉제기계 생산작업실에서 미싱기계를 떨어뜨린 벌로 오른쪽 손가락 절반을 잘렸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의 손가락은 잘려 있습니다. 또 고문 받을 때 발목을 매어 거꾸로 달린 적이 있는데 그때 발목에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는 아직도 발목에 흉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 됐습니다. 또 수용소를 탈출할 때 고압선 가시철망에 걸려 정강이가 찢기고 감전돼 피부가 탔다고 했는데 아직도 무릎에서 발목까지 양 다리에 그 끔찍한 흉터가 그대로 있습니다. 이런 상흔이 바로 그가 수용소에서 당했던 고문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정치범수용소에 있다가 탈출해 한국에 들어간 다른 수감자들의 증언입니다. 신동혁 씨와 같은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지만 요덕 15호 수용소에서 2년에서 10년동안 수감됐던 탈북자들입니다. 이들은 신동혁씨의 얘기를 듣고는 신 씨가 실제 수용소 안에서 자라고 생활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을 확인해 줬습니다. 거기에다 북조선에 있을 때 정치범 수용소 4군데를 돌아가며 간수로 일했던 탈북자도 만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그 역시 신동혁씨의 얘기가 믿을 수 있고 실제 신 씨의 모습과 행동이 과거 자기가 관리했던 다른 수감자들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조선정치범수용소에 관한 실상을 전세계에 알린 미국의 데이비드 호크 씨입니다. 호크 씨는 최근 '숨겨진 수용소'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북조선수용소 보고서의 저자이며 인권실태 조사 전문가입니다. 그가 신동혁 씨와 정치범수감자 출신 탈북자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호크 씨는 신동혁씨의 얘기가 다른 수감자들의 얘기와 일관되고 그밖의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정보와도 일치하며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북조선당국이 제 책에 기록된 신동혁씨의 얘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우리를 북조선 14호 관리소에 직접 초청하겠다면 얼마든지 가서 재확인할 용의가 있습니다.
RFA: 독일의 나치 수용소나 구 소련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이 많이 알고 있습니다. 북조선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 같습니까?
Harden: I would say among the average Americans, they did not know that these camps exist. And they did not know what was going on inside of them...
미국 일반 시민들은 북조선에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란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과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만들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또 군사력 위주의 국가로 남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지난 50년 이상 북조선의 정치범수용소의 존재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거나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습니다.
Harden: It's very hard for Americans and people outside of the Koreas to understand the nature, the brutality, the cruelty of the regime in North Korea. And the reason I wanted to write this book and Shin Dong-hyuk wanted to cooperate is we both decided that the only way to really draw people in and really understand the human dimensions is to tell one-person story...
미국사람들은 물론 남북한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북조선 체제의 본질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자비한 지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신동혁 씨의 도움으로 이 책을 쓰려고 한 이유는 북조선 수용소 내의 참혹한 실태를 세계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알도록 하는 데에는 신 씨 한 개인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 이상의 좋은 방법이 없다는 걸 우리 둘 다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동혁 씨가 실제 겪은 이야기는 정말로 극적입니다. 신동혁 씨야 말로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자라고 수용소를 탈출해 수용소 생활의 참상을 전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 당국은 그의 부모를 표창결혼 대상자로 뽑아 관계를 맺도록 했고 그 결과 신동혁 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치 번식을 위한 가축동물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사육되는 동물처럼 키워져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하게 돼 있었습니다. 어떤 혐의나 재판도 받지 않고 그런 형벌을 치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수용소에서 태어났다는 이유였습니다. 신 씨 이야기의 핵심은 그가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바깥세상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23세가 되던 해에 14호 관리소에 새로 끌려 들어 온 수감자에게 들어서 북조선 바깥에는 남조선과 중국이 있다는 정도를 알게 됐고 또 수용소를 벗어나 중국으로 가면 거기서는 구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사람답게 먹을 수 있다는 그 생각 하나가 신동혁 씨가 목숨을 걸고 전기철조망을 넘어 수용소를 탈출하기로 결심한 동기였습니다.
자유나 민주주의 또는 정치적인 이념 등의 이유로 탈출한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당시 신 씨로서는 그런 게 동기가 될 수 없었었습니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태어나 굶어 죽지 않고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차에 바깥으로 나가면 굶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자 신 씨의 삶의 목적이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수용소를 벗어 나야만 한다는 목적입니다. 그 전에는 수용소만이 자신의 집이었고 자신이 살아갈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RFA: 수용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수용소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했고 또 그 안에서 당하는 모든 인권유린도 원래 그런 거려니 한 것으로 생각을 했다는 얘기군요.
Harden: It's interesting most of the stories of concentration camps in Western literature, the great books that were written after the Nazi holocaust by Elie Wiesel and others. There's an arc to those stories. It begins with someone…
그렇습니다. 서방 세계에서 나온 수용소 관련 회고록들 대부분은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어떤 이야기의 흐름이 있습니다. 나치 대학살을 겪은 엘리 위젤 같은 분이 쓴 책들이 그렇습니다. 시작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책도 읽고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도 있고 교회에도 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나치 당국에 잡혀 수용소로 끌려가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는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하면서 인간성도 잃고 친척들은 숨지고 하는 얘기의 구도입니다.
하지만 신동혁씨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그는 지옥으로 떨어진 게 아니라 지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지옥을 자기 집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스토리, 그의 이야기는 지옥인 수용소 안에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이야기 입니다. 외부에 살던 사람이 수감되면서 그 사람 덕택에 바깥 세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수용소를 벗어나 신동혁 씨의 진정한 자각은 계속됩니다. 수용소 바깥의 북조선 땅에서 그 다음은 중국으로 가서 그 다음에는 한국에 입국해서 또 그 다음에는 미국을 방문해서 삶에 대한 그의 눈뜨기는 계속되어 왔고 지금도 그 자각은 현재진행 중입니다.
RFA: 이 책 집필하시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Harden: The hard part with this book was getting Shin to tell me his story. Because many of the things he went through, he experienced when he was a child and an adolescent, they're extremely painful...
이 책을 쓰는데 어려웠던 점은 신동혁 씨를 설득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그는 수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신동혁 씨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고 심리적인 상처입니다. 그는 비통한 기억을 되새기는 일을 정말 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설득단계가 지난 다음에 이야기를 풀어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동혁 씨의 이야기는 탈출기였으니까요. 시작이 있고 그 다음 탈출이 이어지고 그리고 나서는 탈출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쓰기는 쉬웠지만 신 씨의 입을 열게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2008년 12월 워싱턴 포스트 신문 기사가 나간 뒤에 다시 신동혁 씨를 찾아가 책을 쓰자고 제의하고 그가 동의하도록 하는 데 8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신 씨가 주저한 것은 물론 처음에 저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용소에서 당한 참상을 되새기는 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에서도 비유했습니다만 자신의 지난 얘기를 다시 속속들이 털어놓는다는 건 마치 마취를 하지 않고 생이빨에 구멍을 뚫을 때 느끼는 아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정말 신동혁 씨에게는 제 인터뷰가 큰 고통이었습니다.
RFA: 이번에 신 씨에 대한 책과 관련 기사가 여러 언론에 소개되면서 신동혁 씨의 신변에 위험은 없겠냐는 미국인들의 질문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북조선 당국이 과거에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상대로 공작원을 보내 테러를 하곤 했던 사례를 들면서 말입니다.
Harden: North Korean agents have come after high-level defectors, and they've been intercepted in some cases. They have not come after low-level defectors in the past...
북조선 공작원들이 한국 내 고위 탈북자들을 상대로 테러 기도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일부는 사전에 적발돼 차단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일반 탈북자들을 뒤쫓은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북조선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책을 펴낸 탈북자들이 이전에도 몇 사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테러로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처해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동혁씨의 경우에도 신변위험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RFA: 신동혁씨가 수용소 탈출하기까지 신씨의 아버지도 수용소에 살아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아버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있습니까?
Harden: Shin's relationship with his father was very complicated in the camp. As he grew up his father did not pay much attention to him...
수용소 내에서 신동혁 씨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매우 꼬였던 것 같습니다. 신 씨가 자랄 때 그의 아버지는 별로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형이 탈출 모의가 드러나 처형된 뒤 신동혁 씨의 아버지도 고문을 당했고 그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회한을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우선 자신이 표창결혼으로 신 씨를 수용소에서 태어나게 한 것부터 아들 신씨가 언젠가는 수용소를 벗어나길 바란다는 속 마음까지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신동혁 씨는 아버지를 탓하면서 정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05년 1월, 탈출을 하루 이틀 앞두고 신동혁 씨가 아버지와 마주앉아 식사를 했는데 탈출 얘기도 하지 않았고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신 씨는 말했습니다. 아버지에게 탈출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것은 2가지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 한 가지는 탈북계획을 알림으로써 아버지를 불필요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아버지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간수들에게 밀고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단 수용소를 탈출한 뒤에는 자신의 탈출로 아버지가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 되지 않았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신동혁 씨는 자신의 탈출 후 아버지의 소식이나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RFA: 미국인 부부가 양부모 역할을 하겠다며 신동혁 씨를 미국에 초청해 후원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적응은 잘 했습니까?
Harden: A couple in Columbus, Ohio, Lowell and Linda Dye, they read the story I wrote back in 2008 about Shin. And they decided to help him and they sent money that originally brought him to the United States...
제가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쓴 신동혁 씨에 관한 기사를 보고 오하이오주 컬럼버스 시에 살고 있는 부부 로웰 다이, 린다 다이(Lowell and Linda Dye)씨가 신동혁 씨를 돕고 싶다면서 신 씨의 미국행 비용을 댔습니다. 그 후로 다이 부부는 신동혁씨를 최선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상담을 주선하고 사는데 필요한 조언과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신 씨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동혁씨는 여느 탈북자와는 다릅니다. 신 씨 말고 탈북자로서 수용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그는 간수들로부터 소위 인성교육이란 걸 받았지만 바로 그 교육 탓에 부모까지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신 씨에게는 미국은 물론 그 어떤 사회에서도 적응하고 정착하는 것이 너무도 힘겨운 일입니다.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그만한 환경이나 교육이나 가족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는데 신동혁 씨는 수용소에서 그런 것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자유세계에 와서 그 모든 걸 배우고 익혀야 하는 처지입니다. 신 씨는 부자지간 모자지간의 관계나 정과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를 배우는 건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걸 많이 배우고 알게 됐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신씨는 고백합니다. 탈북 후 한국에 들어가서는 우울하고 수심에 잠겨 있고 분심 어린 태도를 보였었지만 이제는 웃는 모습으로 가까운 주위 동료들을 껴안을 수 있을 정도의 밝은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미국에서 그와 함께 지낸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그래서 제가 신 씨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적응이 잘 되어 가냐고? 신 씨는 '이제 사람됨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면서 '비록 느리지만 천천히 익혀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 씨는 남들처럼 웃기도 하고 울 때도 있는데 그건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이고 자신이 실제 본연의 감정에서 우러나와 하는 적은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RFA: 아직도 다이 부부와 함께 있습니까?
Harden: No. He was in Southern California, and then he moved to Seattle for a while, then he moved to Columbus Ohio where he lived with Lowell and Linda Dye briefly…
아니요. 신동혁 씨는 미국에 와서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다가 시애틀로 가서 얼마간 머물렀고 그 다음에 다이 부부가 있는 오하이오주 컬럼버스로 옮겨 다이 부부와 잠시 같이 살았습니다. 그 뒤에 수도 워싱턴 지역으로 와서 지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곳에 발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몇 달 전부터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에 대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남한 사회 시청자들에게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일입니다. 신 씨의 삶의 목표는 북조선의 정치범수용소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이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는 것도 그 목표 실현을 위한 일환입니다.
RFA: 14호 수용소 탈출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신동혁 씨와 함께 미국 주요 도시를 방문하면서 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Harden: The initial responses have been surprisingly strong. Americans have said in interviews that I've had and comments that I've read in the internet is, one, they didn't know what was going on, two, they're shocked, and three, something must be done...
첫 반응은 놀랄 만큼 대단합니다. 제가 인터뷰를 직접 하거나 인터넷 상에 오른 미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북조선정치범수용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몰랐었다. 둘째는 그 실태를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셋째는 인권개선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런 독자들의 반응이야 말로 우리가 책을 쓴 목적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세계인들에게 북한정치범수용소의 인권유린실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 다음에 그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변화를 꾀하는 동기를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신동혁씨나 저나 이 책을 펴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용소 문제에 대해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모르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지금까지 책에 대한 반응으로 봐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아질 것 같습니다. 정말 기대가 많이 됩니다.
RFA: '14호 수용소 탈출' 책은 미국 외 다른 나라에서도 출간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Harden: 네. 현재 미국의 대형 출판사인 '바이킹'에서 책이 나왔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홍콩 대만 그리고 뽀루뚜갈(포르투갈) 단마르크 (덴마크) 스웨덴 네데를란드(네덜란드) 등에서도 출판됐거나 될 예정입니다. 영어 외에 10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출간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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