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손 잡고와 이젠 여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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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정착해 사는 탈북자들의 연령대는 아주 다양합니다. 환갑을 넘어 시작한 새로운 인생도 있고 그중에는 철없는 어린 아이때 가족의 손에 이끌려 압록강을 넘은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대학에서 심리치료학을 공부하는 여대생 김은경 (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김은경: 그냥 저는 어려서 엄마가 어디가든 엄마 옆에만 있으면 될 것같아서 엄마가 가자는데로 아무말 없이 물어보지도 않고 따라갔던 것 같아요.

2006년 12월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김 씨는 도강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은경: 며칠전부터 언니하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탈북도 얘기하고 헤어진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어디 떠나는구나 하는 것만 알고 있었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엄마의 손을 잡고 도강을 했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얼마나 위험한 길을 떠나는지 몰랐습니다. 다행히 강을 건너 중국 땅에 도착해서는 2년 정도 살다가 2009년 남한행에 성공합니다. 김 씨 모녀가 정착한 곳은 남한에서도 남동부에 있는 국제적 항구도시이며 남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부산입니다.

김은경: 그곳이 부산이었는데 기억나는 것이 말투가 너무 이상해서 이해를 못했고 언젠가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했던 것같아요. 차를 진짜 타고 싶었어요. 계속 차만 타고 싶었어요.

기자: 왜 그랬죠?

김은경: 너무 편하고 …북한에 있을 때 차타고 중국으로 갔던 것이 기억이 나서 너무 신기했고 그래서 지나가는 차를 볼때마다 타고 싶었어요.

어린이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인데요. 덜컹거리면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화물차가 아닌 작고 멋진 승용차가 부드러운 엔진 소리를 내면서 달리는 것이 마냥 신기했습니다. 그런 차들이 신호에 맞춰 줄지어 다니는 모습은 다른 세상이었고 바로 남한 땅에서 처음 느끼는 설레임이었습니다.

남한은 초등학교 6년과 중등교육 3년 해서 모두 9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김 씨도 학교를 가야 했는데요. 북한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탓에 정규교육기관 보다는 김 씨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로 진학하게 됩니다.

김은경: 처음에는 북한 학생들이 모여있는 대안학교에 갔어요.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 하면서 탈북학생들하고 지냈어요. 그러다가 부산에 있는 일반 초등학교 3학년으로 들어갔어요. 그때는 2년을 꿀었는데 나중에 초등학교 졸업하고 내 나이 찾아가고 싶어했는데 엄마가 검정고시 얘기를 해서 천안에 있는 대안학교 다니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봤어요.

간단히 보충설명을 하자면 대안학교는 학생 중심의 자율적인 별도 교육과정을 만들어 운영하도록 고안된 기존의 학교 교육과는 다른 학교를 말합니다. 대체로 개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학습과정도 학생의 실력에 맞춰 진행이 되기 때문에 공부는 물론 인성을 형성하는데 중점을 둔 형태입니다. 그리고 학습능력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검정고시 시험을 통해 졸업장을 받고 상급학교 진학이 이뤄집니다. 김 씨는 이런 과정을 통해 올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김은경: 초등학교때는 어려서 그런 고민이 없었고요. 대안학교 때는 저와 처지가 같은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생각을 안했는데 그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나니까 이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북한에서 어릴 때 왔지만 살던 곳이 북한이라 어릴 땐 친화력도 좋아 적응을 잘했는데 요즘은 조심스럽게 되더라고요.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신기하게 생각하고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싶어서요.

김은경: 좋은 노래 너무 많은데 … 토닥 노래도 좋고 같이 같이….심현희와 김루트의 오빠야….

( 같이같이 노래): 나는 걷는 좋아해 오래 걷는 싫지만 나는 뛰는 것도 좋아해 하지만 오래 뛰는 싫어 나는 하고 향기 맡는걸 좋아해 아주 좋아해 나는 하고 대답하는걸 좋아해

남한노래 ‘같이 같이’란 제목의 노래입니다. 잠깐 들어봐도 밝고 신나는 음악에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대학생이 된 김은경 씨는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제일 큰 것이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 산다는 겁니다. 친구들은 김 씨가 탈북자란 것을 대부분 모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알릴지 걱정이랍니다. 이런 고민 때문인지 자꾸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김은경: 딱히 입는 거나 꾸미는 것은 어릴때 와서 저만의 스타일이 있고 한데 생각이 많아졌어요. 인간관계가 힘들고 대학 들어와서 자존감이 낮아진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친구들 여려명 있는 것보다는 익숙한 한 명하고 노는 것을 선호하는데 대학 들어와서 새로운 아이들 만나고 다 친해지기는 어렵고 인간관계가 힘들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우울할 때면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머릴 식히는 김 씨는 어쩌면 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지금에서야 경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극복을 위한 노력도 해가고 있는데요.

김은경: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가 있는데 얼마전에 2주동안 저의 자칫방에 온적이 있었어요. 저는 천안에 있고 그 친구는 부산에 있어서 관계가 소흘해진 것 같아서 추억을 만들려고 최근에 가평에 우정여행을 다녀왔어요

기자: 가서 한 것은 뭔가요?

김은경: 둘이 간 것은 처음이었어요. 계획도 잘 세우지 못하고 갔는데 가평에 가서 에델바이스라고 스위스 마을 구경하고 사진찍고 수상레저 둘이서 하면서 좀 다치기도 하고 2박3일 정도 서울연극도 보고 서로 많은 것을 도전해 보려고 했어요. 대학교 생활 힘든 일들 얘기 하고 인간관계, 공부하는 방식도 얘기 하고요. 앞으로 친구는 전공을 살리겠다고 했는데 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대학을 계속 다닐지 아니면 새로운 것에 도전할 지 이런저런 얘기를 친구랑 얘기 했어요.

김 씨는 주말이면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고깃집에서 용돈벌이 시간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학교 다니면서 일하려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김은경: 너무 피곤해요. 마감을 하고 새벽 2시 끝나고 집에 들어와 씻으면 3시고 그 다음날 아침 수업이 있어서 자명종 울리면 바로 학교 가야해요. 엄청 피곤해요.

월요일이면 아무래도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도 학교 가기전 1시간 반은 외출준비를 합니다. 그중 화장하는데만 40분 정도 쓴다고 하는데요.

김은경: 세수하고 토너 바르고 스킨 에센스, 크림…화운데이션 바르고 눈썹하고 마스카라하고, 아이 라이너 하고…머리 고대기 하고

기자: 이것을 매일 다 한다고요?

김은경: 네, 매일 해요. 막상 하다보면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해요.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고 꾸미는 것이 상대에 대한 기본적 예의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모든 여성의 일상이기 절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김 씨는 현재 생활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진로에 대해서도 신중히 고려하는 심리치료학을 공부하는 여대생입니다.

김은경: 제가 알바를 하니까 돈도 있고 또 부모님도 있고 언니도 왔고 대학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사지멀정하니까 이정도면 괜찮지 살만하지 이런 생각 많이 하죠.

제2의 고향 오늘은 김은경(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