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뒤에 행복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10-2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감귤 농장에서 노랗게 익은 하우스감귤을 박스에 담아 출하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감귤 농장에서 노랗게 익은 하우스감귤을 박스에 담아 출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서 한 때 역사 드라마 궁예가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속의 궁예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신통력이 있다면서 사람의 표정 그리고 얼굴 근육의 움직임만 보면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관심법을 터특했던 사람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말안해도 다 안다면서 우수갯말로 난 관심법을  알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남한사람과 말이 통하게 되면서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는 문연아(가명)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문연아: 더 괜찮아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더 힘들어 진 상황이었어요. 9개월만에 나갔는데…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문 씨는 지난 2008년 중국에서 북송된 후 2013년 재탈북 합니다. 탈북했을 때보다는 북한 사정이 좀 나아졌겠지 했지만 노동단련대를 나와서 보니 오히려 다 한심해졌더라는 거죠. 물론 자신의 처지도 힘들어졌고요.

문연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중국에 갔다왔다는 이유만으로 취직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그러니까 동생들이 많이 도와준거죠.

생활을 위해 다시 탈북을 했고 중국에 갔지만 신분이 보장되지 않아 그 땅에서는 오래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한행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도착해보니 그의 앞에 차려진 현실도 꽃길은 아니었습니다.

문연아: 제가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온 것 아닙니까? 그때는 일단 우리가 모든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의 땅에 왔다는 확신만 있었죠. 포부는 크고 긍지가 높았죠. 그런데 남한에서 집을 받고 놀랐어요. 9평 집을 받았는데 북한에는 이렇게 작은 집이 없거든요. 두 번째는 취직을 해야 하잖아요. 제 생각에는 남한은 다 기계화 되고 자동화 돼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취직해서 상상하지 못한 어려운 일을 한거예요.

기자: 아니 어떤 회사에 취직을 했기에 상상하지 못한 일을 했다는 말씀을 하는 건가요?

문연아: 세척하는 회사예요. 남새 과일 박스를 세척하는 겁니다. 기계에서 세척한 것을 쌓는 일을 하는데 말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문 씨는 같은 업체에서 3년반을 근무 중입니다.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처음 일을 시작하고 그 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죠.

문연아: 이제 지금은 그 어디를 가도 당돌하게 다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것을 못견뎠던 거예요. 우리가 목숨을 걸고 왔지만 목숨보다 더한 생존이 우릴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북한주민이 몰래 국경연선의 강을 건널 때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컴컴한 밤에 경비대의 총알을 뒤로 하고 사선을 넘었다는 건데요. 문 씨는 국경을 넘을 때 경험한 상황보다 처음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컸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지는데요.

문연아: 참 희안했어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진짜 많이 울었어요. 솔직히 대화가 너무 힘들었어요. 남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의미에서 말했는데 나는 선입견을  가지고 나쁘게 들리는 거예요. 일보다 그것이 더 힘든 거예요. 옛날 속담처럼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소경 3년으로 살리라 그런 마음으로 참고 견디는 게 힘들었어요. 6개월이 지나니까 서로 이해하게 되고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정이들고 하더라고요.

궁예의 관심법을 알았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겠는데…때로는 위에서 지시하는 것을 멋모르고 하는 것이 자신이 알아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보다 쉽게 느껴집니다.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중국에 있을 때 남한 드라마를 통해 봤던 그런 큰 집에서 살줄 알았고 편하게 육체노동 하지 않고 살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언어문제로 힘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 한 4년 살아보니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눈에 안보이고 작게 느껴졌던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더라는 거죠.

문연아: 그 다음에 눈에 보이는 것이 단칸방이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이 적으니까 월세도 적게 나가잖아요. 큰집에 있으면 관리비도 많이 낼 것 아닙니까. 솔직히 저에게는 집이 작았던 것이 다행인 거예요. 또 여기 오니까 없는 것이 없잖아요. 내가 돈만 있으면 사고 싶은 것 다 사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릴 수 있으니까 내가 여기 온 것이 잘 한 것이고 행복이다란 생각이 든 겁니다. 북한에는 제한이 너무 많은 거예요. 머리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놀러가도 제한구역만 가야하고 한데 여기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잖아요. 그것이 너무너무 좋아요.

자기가 일해 번 돈으로 원하는 것을 장만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인데요. 보통 첫월급을 타면 뭘할 것인가 묻는데 문 씨는 어떨까요?

문연아: 제일 먼저 한 것이 돈을 모아서 에어컨을 샀어요. 남한땅이 북한과 달리 온도가 높잖아요. 너무 더워서 적응이 힘들더라고요. 내가 하나하나 벌어서 장만할 때마다 그 느낌이 솔직히 대단해 보였어요. 그 재미로 더 일하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소규모로 몇 명이 일하는 가게서 일하는 것보다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합니다.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또박또박 나오고 큰 변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3년 반을 같은 직장에서 일하다보니 사람들과도 소통이 되고 서로 말을 딱히 안해도 마음이 통하다 보니 예전처럼 괜한 오해로   마음 상하는 일도 없답니다.

문연아: 생존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때 내가 남한사회를 잘 모르던 때라 착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고요. 지금은 회사를 안나가면 막 죽을 것 같을 정도가 됐어요.

기자: 회사에 같이 일하는 동료가 몇 명정도나 됩니까

문연아: 한 50명정도밖에 안돼요. 크지 않아요.

기자: 그 정도면 얼굴도 다 알고 가족처럼 지내겠어요.

문연아: 내 지금은 너무너무 좋아요.

남한에서 외래어를 많이 쓰고 북한에서는 안쓰던 표현을 하니까 자심감이 떨어지고 말문이 막혔는데 이제는 말문이 트이고 크게 웃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솔직히 모르던 것을 다 알게돼서라기 보다는 몰라서 오해를 했던 부분이 처음 보다는 크게 해소됐다는 편이 맞을텐데요.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보니 같은 시간을 일해도 시간이 많이 남게 됐답니다.

문연아: 주말에는 언니들과 놀러가요. 또 친구도 생기고 했으니까 같이 바닷가도 가고 명승지를 많이 가봤어요. 영화도 보고 쇼핑도 가고 운동도 하고 그래요.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면서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나 회사일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재미나게 살것인가를 놓고 생각하게 됩니다.

문연아: 앞으로는 저도 뭔가 하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뭔가 딱 정해지진 않았는데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뭔가 하고 싶어요. 희망을 이룰 거예요.

제2의 고향 오늘은 과일이나 야채를 담는 상자를 세척하는 재활용 공장에 근무하는 문연아(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