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삶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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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삶 통영의 자활공동체 점포 '늘푸른사람들', '가온하우징장식', '가온 늘푸른매장' 3곳의 전경.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습니다. 그리고 제 3국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도착하는데요.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남한생활 중 교통사고를 당해 긴 재활 치료를 받고는 사회에 복귀한 분입니다. 주위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들 하는데요. 50대 후반의 염지혜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염지혜: 사람이 절망적으로 생각하면 절망스럽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희망, 꿈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절망스럽지 않죠.

염 씨는 7년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혹시 이름 때문에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닐까 싶어 개명을 했을 정도로 그날의 사고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보일러 생산업체에서 일하던 염 씨는 아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길을 가다가 사고를 당합니다.

염지혜: 그날도 일 끝나고 탈북자 장애인 분이 푸드마켓에서 한 달에 2만원씩 무료로 받는 식료품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간장 부침가루 등 본인이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실명한 탈북자 분이 나한테 부탁을 해서 일 끝마치고 물건을 받아 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어요. 그 다음부터 기억이 없어요.

어두운 저녁 횡단보도를 건너다 운전이 서툰 사람이 모는 차에 치었던 것인데요. 염 씨는 당시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기억 하지 못합니다.

염지혜: 제가 의식불명에서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크게 다쳐서 의사 선생님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살아도 하반신을 못 쓸 거라고 그랬대요. 제가 의식불명에서 깨어나보니 중환자실에 있는 거예요.

염 씨가 병원에서 눈을 뜨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 담당 주치의는 염 씨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반년을 병원에 있다가 나와서는 또 3년을 재활치료를 받습니다. 무사히 탈북해서 남한에 간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그처럼 큰 차 사고를 당하고도 정상생활을 한다는 것에 염 씨를 아는 지인들은 모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합니다.

염지혜: 제가 사고 당한 직후에는 온 몸에 흘러 내리는 고통으로 죽고 싶었어요. 차차 안정이 되고 해서 지금은 감사한 거예요. 코도 그대로 눈도 그대로 다 정상이에요. 제가 만약 북한에 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그 상태에서는요. 감사한 것이 북한에서는 하루 휴식을 하면 한끼가 걱정이고 그렇잖아요. 하루 종일 일해도 겨우 죽물인데 여기는 하루 휴식을 해도 돈이 나오고 일용할 양식이 쌓여있고 그래서 내가 북한에서 사는 것에 비하면 행복한 사람이구나.

염 씨는 북한에서는 소위 말하는 토대가 좋은 집안 사람이었습니다. 사는데 크게 어려움을 몰랐지만 고난의 행군 시절은 그도 피해가지 못했고 결국 탈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염지혜: 제가 탈북은 1995년부터 중국하고 북한을 오가며 살았어요. 봄이면 두만강을 도강해서 중국에서 봄 농사를 도와주고 쌀이면 쌀, 옷이면 옷을 닥치는 데로 받아와 북한에서 팔았어요. 그런데 북한 마을에서 보위부에 고자질을 해서 잡혀 들어가서 많이 취조를 받았어요. 그런데 우리 집안이 당원이에요. 저도 북한에서 초급단체 위원장이었고요. 집안 자체가 토대가 좋은 집안인데 장사를 하다가 잡혀서 보위부에 취조를 받고 그 다음부터 저한테 감시가 붙었어요.

단순히 보위부의 감시가 힘들어서 탈북한 것은 아닙니다. 염 씨가 하지 않는 일까지 죄로 덮어씌워서 목숨이 다급해져 고향을 떠났던 겁니다.

염지혜: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왔다갔다 했는데 그것을 큰 죄를 삼았고 게다가 인신매매 죄까지 뒤집어 씌워서 총살을 시키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인신매매를 안 했습니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했습니다” 그랬거든요. 매일 감시를 하니까 너무 힘들어서 1998년 탈북 했어요.

탈북해서는 중국에서 살다가 지난 2003년 남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사고 전까지 너무나 즐겁게 생활했는데요. 그때는 정착생활을 잘하는 자신이 자랑스럽고 얼마 안 있으면 집도 사고 편히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의 나날이었습니다.

기자: 보일러 조립회사에 일하셨다고 했는데 어땠나요?

염지혜: 회사 동료와 소통도 좋았고 제 자랑은 아니지만 일 잘하고 손이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거든요. 한국 분도 있고 베트남 분도 하나 있었는데 그분들이 북한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제가 대답해주고 나도 한국 사회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요. 질문과 직답, 소통으로 제가 한국 사회에 빠르게 적응했어요.

기자: 직장 생활이란 것이 일은 힘들어도 매달 월급이 나오니까 생활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좋으셨나봐요.

염지혜: 네, 한국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똑같이 대우 받는 것이 뿌듯하고 나도 드디어 한국 사람이 됐구나. 탈북자라는 편견을 갖지 않고 같은 한국 사람으로 대해주니까 그때는 힘들었지만 즐거웠어요.

기자: 그 회사에서는 얼마나 일하셨던 건데요?

염지혜: 4년 정도 일했어요. 원래는 전자제품 회사에서 일하다가 보일러 회사로 이동한 거예요.

기자: 그래 지금은 몸이 괜찮으신 거죠?

염지혜: 네, 지금은 정상생활을 하고 지역자활공동체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어요.

기자: 어떤 일인데요?

염지혜: 옷 가게에서 일하는데 옷 기부 받은 것을 싼 가격에 팔아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기자: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중고 상품을 매매하는 옷 가게이군요?

염지혜: 중고도 그렇고 새것도 그렇고 각 지역에서 기부하는 것을 받아서 가격을 메겨서 분류해서 팔고 그 판매액은 어려운 분들을 돕는 거예요.

북한에 살 때도 그랬지만 남한에서도 정말 정착을 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는데요. 요즘도 비가 오고 날이 흐리면 온 몸에 통증이 옵니다. 그런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굴 원망하거나 좌절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지나간 과거고 염 씨 앞에는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내일이 있기 때문이죠.

염지혜: 같은 탈북자인데 저분은 사업을 해서 집도 마련해 잘사는데 나는 언제면 저들처럼 살까?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아요. 저도 꿈이 성공해서 텔레비전에 나가서 한국에 와서 힘든 고비를 넘기고 정착도 성공해 살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현실이 안되니까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자. 일 못하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까 괜찮더라고요.

죽을 뻔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탓인지 염 씨는 500년 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다시 태어난다는 불사조가 된 듯 또는 모든 인생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염지혜: 사람이 욕심이나 욕망이 많으면 본인이 힘들어요. 그런데 내려 놓으니까 괜찮더라고요. 내가 버는 만큼 아껴 쓰면 되는 것이고 북한에 아들이 있는데 내가 버는 만큼 조금씩 부모로서 도움 주는 것이 행복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이 상태로 꾸준히 살면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기자: 여러 번 힘든 고비를 넘기셨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염지혜: 남은 인생은 좀 더 건강이 회복되면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요.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고 싶고 그래요.

기자: 남한에서 새로운 가정은 안 꾸리셨나 봐요? 아무래도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보다는 의지할 배우자가 있으면 낫지 않을까도 싶은데요?

염지혜: 그거야 그렇겠죠. 그런데 아직은 벌어서 아들이 이북에 있거든요.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어릴 때 못해준 사랑을 내가 벌 수 있을 때 벌어서 도와 주려고 현재 일하거든요. 내가 가정을 가지면 그렇게 아들을 못 도와주잖아요.

기자: 아들도 남한에서 같이 살면 좋을 텐데요.

염지혜: 아들이 그래요. “어머니 저는 장가 갔습니다” 하는 말은 가정을 지키겠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너는 가정을 지켜” 내가 버는 만큼 도와줄게 내가 힘닿는데 까지 도와줄게 하고 말했어요. 난 아들이 거기서 잘살기를 바랄 뿐이에요.

제2의 고향 오늘은 교통 사고를 극복하고 다시 사회에 복귀한 염지혜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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