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기행] 바가지- 사라지는 함지박, 뒤웅박, 표주박, 쪽박…

생활이 편해지면서 우리에겐 잃는 것들도 많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부엌에 이른바 나일론 제품들, 즉 플라스틱 용기들이 등장하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박으로 만든 바가지가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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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계통에 종사하면서 전통박물관 일을 두루 맡았었던 박대순 씨는 바가지에 대한 애착이 남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서민 생활에서 가장 친근하게 여러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바가지는 그 말이 주는 친근함 만큼이나 오래 정이 든 생활 도구였습니다. 시집갈 때 어머니가 장농이나 찬장을 보내는 짐 꾸러미에 주렁 주렁 바가지를 매달아 보낸 것도 그만큼 시집살이에 요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대순 : 이 바가지를 시집가는 색시들도 짐을 보낼 때 장이라든지 농이라든지를 시집으로 보내는데 옛날에는 등짐으로 지고 갔잖아요, 지금은 자동차에 싣고 가지만 옛날에 50년 대, 60년 대 만 하더라도 다 등짐으로 지고 갔어요, 그런데 거기 지고 가는 장이나 농에는 반드시 바가지가 여러 개가 매달려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까이 쓰이는 것이니까 깨지기도 잘하죠, 그래서 그것들을 신부가 시집살이 하면서 바가지를 깨거나 하면 쓰라고 많이 가져가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바가지는 옛날 시골 초가 지붕 위에서 여름밤을 하얗게 수놓았던 박으로 만듭니다.

박대순 : 박을 올리면 파랗게 잎이 뻗어 나가면서 꽃이 필 때는 딱 오후 다섯 시에서 여섯 시 경에 핍니다. 박꽃이 하얗게 피죠, 달밤에 초가집 지붕 위에 얹어져서 박꽃을 피우면 그게 그렇게 멋있습니다. 농촌에서는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는 거죠.

바가지를 만들려면 박이 단단이 여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늘로 이곳 저곳 찔러보다 쑥 들어가는 쪽은 햇볕이 잘 드는 쪽으로 돌려놓아 골고루 박이 단단하게 여물게 합니다. 잘 여문 박을 따서 톱으로 켠 다음 씨를 빼낸 후 끓는 물에 삶습니다.

그리고 안과 밖을 숟가락으로 잘 긁어 내서 말리면 바가지가 됩니다.

박대순 : 긁어 낼 때 주의해야 돼요, 바가지도 눈이 있는데 그것 까지도 긁어 버리면 바가지가 샐 염려가 있어요.

말린 바가지는 크기에 따라 함박 혹은 함지박, 그리고 중간치는 바가지, 더 작은 것은 쪽박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더 작은 것은 ‘종’자를 붙여 종그라기 라고 부릅니다. 밥을 짓는 과정에서도 바가지의 역할은 다양합니다. 쌀독에 들어가 있어서 식구들 밥을 하는데 어느 정도 쌀이 필요한지 가늠하는 일종의 계량컵 역할을 하는 쌀바가지가 있는가 하면 조리로 쌀을 일군 후에 나머지 쌀을 일구는 데 쓰이는 바가지도 있습니다.

박대순 : 쌀 일때 쓰는 게 있어요, 조리로 일고 나머지를 두 개의 바가지로 일워 내지 않습니까.. 큰 것은 왼 손에 들고 작은 것은 오른 손에 들고 .. 물만 받는 큰 것을 받침 박이라고 그러고 일어서 돌을 골라내는 것을 일박이라고 그러죠.

또 물을 길러갈 때 역시 바가지는 반드시 따라갑니다. 물을 뜨는 데도 필요하지만 물동이를 이고 올 때 물이 출렁거려 쏟아지지 않도록 바가지를 엎어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박대순 : 바가지를 엎어 놓지 않으면 자꾸 넘쳐서 옷을 다 버릴 수가 있어요.

제주도 해녀들에게도 박은 자맥질을 할 때 띄워두는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샌가 해녀들의 박도 플라스틱 제품으로 바뀌었습니다.

박대순 : 뜰 ‘부’ 자 하고 바가지 ‘표’ 자 부표인데 요즘은 그게 모두 플라스틱으로 대용이 돼 버립니다. 70년대까지도 반은 그걸로 썼어요 바가지로…

덜 익은 박은 꼭지 부분을 뗴내 손이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낸 후 말려서 끈으로 매달아 놓고 거기에 성냥이라든가, 잔 세간, 약 등을 넣어 두던 것이 바로 뒤웅박입니다.

Insert : 흥보전 / 박타는 장면

흥보전에서 제비 다리를 고쳐 준 흥보가 보은으로 받은 것이 박씨였고 박이 주렁 주렁 열려 그 박을 켜자 보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만큼 옛 선조들의 곁에 가까이 정들었던 박이기에 그 안에는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서민들의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INSERT : 흥보전 일부

박에는 행운을 기대하는 소망이 담겨 있기도 했지만 바가지를 깨뜨려 액운을 물리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박대순 : 신부 가마가 들어 올 때도 통박을 놓고 그 바가지를 깨고 들어오는 ‘탁’ 소리를 내면서 모든 질병, 악귀, 사악한 것들을 다 퇴치한다는 그런 뜻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사람이 죽어서 옛날에는 집안에서 관이 나가잖아요, 시체를 담은 관이.. 그럴 때 관이 방을 한 바퀴 돌면서 나오는데 그 때 문턱에다 바가지를 엎어 놓고 그걸 관으로 눌러서 팍싹 깨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건 모든 질병이라든가 사악한 것 그런 것들이 물러 가라는 뜻이 되죠.

INSERT : 각설이 타령 일부

이렇게 가정의 필수품이기도 하고 집안의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서도 쓰였던 바가지는 이집 저집 동냥을 다니던 거지들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었습니다.

박대순 : 쪽박을 차다.. 쪽박을 찬다는 것은 마지막 다 들어먹고 바가지 하나 차고 얻어 먹으러 나간다는 뜻이거든요, 거지들이 동냥을 하거나 밥을 얻으러 오면 바가지에다 받아다가 자루에 집어넣잖아요,

그러니 이렇게 소중한 바가지가 깨어진다는 건 생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박대순 : 그러니까 동냥은 안주고 쪽박 만 깬다.. 쪽박 깨진 셈이라고 하는 것은 볼장 다 봤다는 뜻 아닙니까…

물 한잔 청하는 목마른 나그네에게 버들 잎을 띄워 급히 마시다 체하지 않게 건네 주었던 현명한 처녀의 얘기에 등장하는 것도 바가지입니다만 옛날 선비들이 먼 길 떠날 때 차고 다녔던 표주박에는 꼿꼿한 선비 정신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박대순 : 뭐 과거를 본다, 서울로 온다 하면 짚새기 여남 개 등에 지고 필수적으로 차고 다니던 것이 표주박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은 뭘 하기 위한 것인가 하면 물을 마시기 위한 겁니다. 지금은 물이 오염돼 상당이 걱정입니다만 옛날에는 그냥 어디나 물이 흐르는 곳에 가서 마실 수 있어요, 그래서 금수강산이라고 안 그럽니까.. 그런데 선비들은 아무리 목이 말라도 소처럼 짐승처럼 엎드려서 흐르는 물을 마시면 안된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것이 선비 정신입니다. 그래서 이 표주박은 필수품이예요.

전통혼례식에서 신랑 신부가 잔을 돌리는 것도 자루가 달린 작은 조롱박입니다. 이를 합금배라고 부르는데 두 쪽으로 나뉜 박이 다시 하나로 되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박대순 : 합금배라는 것이 뭐냐하면 박을 두 개로 나눴잖아요, 그걸 근본을 합친다는 뜻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을 한다는 게…. 나눠졌어도 우리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술잔으로 그걸 사용한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집안으로 밀려 들어 오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도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상의 지혜가 담기고 손 때가 배인 정겨운 도구들은 이제 점점 주위에서 찾아 보기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남한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여성 리명옥 씨는 북한에서도 10여 년 쯤 전에는 지붕에 박을 올려 잘 익으면 바가지를 만들어 썼지만 지금은 거의 플라스틱, 북한에서는 비닐 바가지로 불리우는 인조 바가지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리명옥 : 그 전에는 땅에다 심어서 지붕에다 올려서 호박처럼 굳어지면 썼는데 지금은 그런 바가지를 전혀 쓰지 않구요, 공장에서 그 전에 그런 박처럼 비슷하게 만들지요, 손잡이도 있고 바가지 안에다.. 쌀이 돌이 많으니까 일어야지 돌이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주름을 박아 넣고…

INSERT : 둥당타령

초가 지붕 위에서 환한 달빛을 받으며 눈부신 흰 꽃을 피워 내 가난한 농가의 밤을 정겹게 해주던 박은 두 쪽으로 자신의 몸을 쪼개 서민들의 손과 발이 돼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아낙네들에게 흠뻑 두들겨 맞기까지 하는 것이 바가지 였습니다.

박대순 : 옛날에는 우리가 무슨 악기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부녀자들 손에 뭐 악기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너럭지 같은 데다 물을 떠 놓고 거기다 바가지를 엎어요, 그 바가지를 숟갈이나 다른 막가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 뭐 옛날에 우리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배고픔에서 오는 거.. 시집살이.. 뭐 해서 한으로 얼룩진 시대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우리가 한풀이로도 보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 물장구라는 것이 부녀자들이 놀면서 장단을 때리는 기구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박대순 씨는 바가지처럼 우리의 정겨운 옛 생활용품들이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데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박대순 : 우리 한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영 받아들이기 어렵다가 한번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우리 것은 그냥 팽개치고 새 것에 그냥…. 그러니까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우리 전통적인 것은 전부 날려 버리고 그냥 새로 사고 새로 사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이 다 생활권 밖으로 밀려나 버리니까 그게 그렇게 아쉽죠, 물론 플라스틱 바가지가 나와 가지고 튼튼하고 오래 쓰고 함부로 써도 깨지지 않고 기울 염려도 없고 오죽 좋습니까만은 그래도 우리 체질에는 그게 좀 맞지 않고 그게 또 위생에 그렇게 해롭다면서요…

남북문화기행 ‘바가지 편’ 제작 진행에 이장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