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어제와 오늘] 남북의 장례 문화
서울-오중석, 김현아 ohj@rfa.org
2010.05.27
2010.05.27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과 북이 갈라선지 60여년, 그동안 북한체제에서 퇴색하고 변질된 우리민족의 소중한 가치관에 대해 알아보는 ‘남과 북,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이 시간 대담에는 탈북 여성지식인 김현아 선생입니다. 김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김현아: 네 안녕하십니까.
오중석: 오늘은 북한의 장례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오래전부터 우리민족은 부모나 가족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잘 치르는 것 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큰 일중의 하나였지요. 북한의 장례문화는 남한과 같은가요?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김현아: 제가 남한에 와서 살아보니 남한은 장례 문화가 현대화 되었어요. 여기 와서 저도 장례식을 가봤는데, 장례식을 집에서 치루는 것이 없고 다 병원의 장례식장이 있어서 장례식장에서 치루더라고요. 그리고 관을 마련하는데 관이 멋있어요. 북한에서는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장식으로 된 멋있는 관으로 하더라고요.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여기는 장례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보면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다 보니 따로 묻지 않고 어떤 나무 밑에 묻는 것도 봤어요. (오중석 : 수목장이라고 하죠? ) 또 화장을 많이 하더라고요. 북한은 땅에 묻는 토장이 많고 화장이 늘어나긴 하지만 토장이 대부분이죠.
오중석: 남한에서는 묻는 것을 매장이라고 하는데요, 남한에서는 절반 이상이 화장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매장이 많군요.
얼마 전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의 희생장병 영결식에서 보셨겠지만 남한에서는 국가를 위해서 근무하거나 정의로운 일을 하다가 희생된 분들에게는 사회가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유가족에게도 온갖 예우를 해줍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장례절차나 사후 예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아: 네, 저번에 저도 텔레비전에서 봤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분향소도 마련해 놨고요. 꾸미는 것도 일반 사람들 장례식도 그렇지만 고인의 영정을 모셔놓고 꽃으로 장식하고 화환을 보내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은 꽃이 없으니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는 오직 그렇게 해주는 것이 최고위급 간부들입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차려지지 않고 최고위층에게만 이렇게 차려집니다. 그것도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고 텔레비전으로만 봤는데요. 김일성 사망 당시 그랬고요, 당중앙위원회 위원이라든가 비서들 같이 높은 사람들이 돌아가면 서장 구락부에 안치하고 꽃으로 장식하고 명예 위병대로 서있고 하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애국열사릉, 혁명열사릉에 묻히죠. 이번 천안함 장병들도 군에서 사고가 난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따로 시내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전 시민이 찾아가고 장례절차도 북한 기준으로 놓고 보면요,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 하는 수준에서 했습니다. 북한에는 그렇게는 못해주고요, 북한 말로 영웅적으로 싸우다 돌아간 장병을 예우해준다면, 부대에서 군인들이 조직해서 조총을 쏘는 정도를 하죠. 이렇게 꽃을 하거나 하는 것은 북한 사정상 할 수가 없어요.
오중석 : 서장 구락부라는 곳은 장례식 장인가요?
김현아 : 저도 가보지 못했고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보도로 미뤄볼 때 전문 고위급들을 위한 장례식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중석 : 고위급이라고 하는 것은 당중앙위원회 위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현아 : 당 중앙위원회 위원급도 안 되고요, 당 중앙위원회 비서급 정도 되야 할까요? 여기로 말하면 장관급은 돼야할 겁니다. 아마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장례식 해줄 때 그야말로 차에 싣고서 짧은 길을 돌았지만 어쨌든 시내를 돌게 해줬어요. 그리고 최강, 이분이 항일 투사거든요, 그 분도 그렇게 해줬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까지는 안 하고 서장 구락부에 안치하고 명예 위병대가 서 있었고 그 정도죠.
오중석: 북한에서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사고로 인해 한꺼번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었던 이들이 사후 장례나 제대로 치러졌는지 의심이 듭니다.
김현아: 북한은 큰 사고도 잘 나고, 특히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제일 어려울 때가 고난의 행군이었는데, 자기 부모나 자식이 있어도 외지에 나가서 사망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럴 때는 그걸 가서 실어 올 수도 없고 현지에 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도 아들이 외지에 가서 죽었는데 교통이 단절되어서 데리고 올 수가 없어서 당시 가까운데 가서 좀 해결해 달라고 하니까 도대체 해줄 수가 없다, 하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니까... 그래서 자기 자식을 묻는데 관 없이 묻었다고 돌아와서 땅을 치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예전에는 관을 짜서 묻고 웬만하면 집으로까지 보내주고 했는데 고난의 행군 때는 정말 인간답지 못하게 사망한 것 같습니다.
오중석: 말씀을 듣다보니 북한에서는 인간답게 죽는 것조차 허락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개처형을 감행하고 수용소에서 재소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되풀이 하는 북한체제는 인간의 생명을 철저히 경시하는 정권이 아닐까요.
김현아: 그렇죠. 사실 저는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요, 북한은 항상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삼는 나라고 인간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나라라고 했는데, 여기 와서 살아보니 북한만큼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데가 있나하는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북한에 살 때 공개처형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뭐가 잘 못 됐다고 생각했냐면 사실 공개처형 당할만큼 죄 짓지 않은 사람을 공개처형 했을 때, 이것이 잘 못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무리 잘못을 한 사람도 죽을 때 존엄 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악독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땅땅 쏴서 죽이는 것은 인권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 오중석 : 공개처형이라는 것은 옛날 왕조 시대에나 있던 나쁜 습관입니다. )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죄를 조금 졌는데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잘 못 됐지 사람 많은데서 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 인권 수준이 정말 한심한 것이죠. 그리고 북한에서는 사람에서 제일 많이 죽는 곳이 교화소입니다. 지어 정치범 수용소는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요. 교화소에서 많이 죽는데 정말 값없이 죽고 값없이 묻히죠.
오중석: 교도소 재소자가 죽어도 가족들에게 알리고 장례식 치르고 합니다. 남한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고요. 북한에서는 그것조차 허락이 안 된다는 말씀이군요. 국민(인민)의 생명은 하찮게 여기는 북한정권이 김일성이 사망한 뒤 보인 온갖 우상화 행태는 남한에서 볼 때 어처구니없는 것 이었습니다. 체제유지를 위한 일부 특권층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처럼 요란한 장례의식을 치르고 있습니까?
김현아: 예, 그러나 사실 요란하지도 않아요. 그냥 여기 일반 사람들 정도입니다. 다만 요란한 것은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그때가 가장 요란했죠. 온 나라가 조문 기간을 20일 정도 했고요. 지금도 김일성은 죽었지만 주석궁 하나를 통째로 내서 김일성 시신을 안치하고 이것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모르고요. 또 주석궁을 개조할 때 일억 오천만 달러가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 돈으로 사다 먹였으면 한 달은 살았을 겁니다. 그때가 고난의 행군이 시작했을 때거든요. 그리고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 개 외화벌이 사업소를 전문 경영하고 있거든요. 여기도 현충원이 있잖아요. 북한에는 애국열사릉, 혁명열사릉이 있는데요, 사실 인민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거기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근데 과연 헌신했나 하는 기준은 앞으로 다시 평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중석: 한국에는 아직도 유교식 장례의식이 많이 남아있어 3일장이나 5일장으로 장례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원이나 각 지방마다에 장례식장이 마련되어있어 죽은 사람에 대한 품위있고 엄숙한 장례식이 가능합니다. 북한에서 일반적인 장례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김현아: 북한의 장례절차는 복잡하지 않아요. 다 똑같이 하거든요. 다 3일장으로 하고요, 가까운 친척이나 자식이 못 오면 5일장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나마 여름 같은 때는 또 5일장을 못하죠. 냉장 장치가 없으니까요. 장례는 장례식장이 아니고 다 집에서 하는 것이 보통이고요. 3일장 마지막 날 묻고 다음날은 가까운 가족만 가서 인사해요. 여기는 49일재도 있고 하는데,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오게 되면 집에서 간단히 제사 지내고, 설날 같은 때는 조상께 재를 올리고... 남한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것은 아직은 남한보다 화장이 많지 않아요. 북한도 화장을 장려하지만 기름이 없다나니까 화장을 못하고요, 오히려 화장을 하는 데는 좀 사는 집이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화장에 대한 거부감도 아직 많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한번 더 태우나...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오중석: 네, 잘 알겠습니다. 사실 북한 동포들도 자기 부모나 친지가 사망했을 경우 경건하고 품위 있는 장례식을 바라고 준비할 것 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북한체제가 주는 모순과 압박으로 형편이 안 돼 육친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면 이러한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민족은 본래 일생에서 죽음에 관련된 의식을 제일 중하게 여겨왔는데요 북한도 같습니까?
김현아: 네, 같지요. 제가 여기 와서 남한과 북한이 똑같다고 생각한 것은 결혼식은 못 가 봐도 장례식장에는 가봐야 한다. 하는 겁니다. 북한에서도 그러거든요?
네, 오늘은 우리민족이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장례문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인간의 기본권 중에 인간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 이 인간답게 죽을 권리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북한체제에서 많은 분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사후에는 합당한 장례절차도 거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오늘 대담에 김현아 선생이 수고하셨습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현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자유 아시아 방송,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 시간 대담에는 탈북 여성지식인 김현아 선생입니다. 김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김현아: 네 안녕하십니까.
오중석: 오늘은 북한의 장례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오래전부터 우리민족은 부모나 가족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잘 치르는 것 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큰 일중의 하나였지요. 북한의 장례문화는 남한과 같은가요?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김현아: 제가 남한에 와서 살아보니 남한은 장례 문화가 현대화 되었어요. 여기 와서 저도 장례식을 가봤는데, 장례식을 집에서 치루는 것이 없고 다 병원의 장례식장이 있어서 장례식장에서 치루더라고요. 그리고 관을 마련하는데 관이 멋있어요. 북한에서는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장식으로 된 멋있는 관으로 하더라고요.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여기는 장례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보면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다 보니 따로 묻지 않고 어떤 나무 밑에 묻는 것도 봤어요. (오중석 : 수목장이라고 하죠? ) 또 화장을 많이 하더라고요. 북한은 땅에 묻는 토장이 많고 화장이 늘어나긴 하지만 토장이 대부분이죠.
오중석: 남한에서는 묻는 것을 매장이라고 하는데요, 남한에서는 절반 이상이 화장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매장이 많군요.
얼마 전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의 희생장병 영결식에서 보셨겠지만 남한에서는 국가를 위해서 근무하거나 정의로운 일을 하다가 희생된 분들에게는 사회가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유가족에게도 온갖 예우를 해줍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장례절차나 사후 예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현아: 네, 저번에 저도 텔레비전에서 봤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분향소도 마련해 놨고요. 꾸미는 것도 일반 사람들 장례식도 그렇지만 고인의 영정을 모셔놓고 꽃으로 장식하고 화환을 보내고 하지 않습니까? 북한은 꽃이 없으니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는 오직 그렇게 해주는 것이 최고위급 간부들입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차려지지 않고 최고위층에게만 이렇게 차려집니다. 그것도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고 텔레비전으로만 봤는데요. 김일성 사망 당시 그랬고요, 당중앙위원회 위원이라든가 비서들 같이 높은 사람들이 돌아가면 서장 구락부에 안치하고 꽃으로 장식하고 명예 위병대로 서있고 하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애국열사릉, 혁명열사릉에 묻히죠. 이번 천안함 장병들도 군에서 사고가 난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따로 시내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전 시민이 찾아가고 장례절차도 북한 기준으로 놓고 보면요,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 하는 수준에서 했습니다. 북한에는 그렇게는 못해주고요, 북한 말로 영웅적으로 싸우다 돌아간 장병을 예우해준다면, 부대에서 군인들이 조직해서 조총을 쏘는 정도를 하죠. 이렇게 꽃을 하거나 하는 것은 북한 사정상 할 수가 없어요.
오중석 : 서장 구락부라는 곳은 장례식 장인가요?
김현아 : 저도 가보지 못했고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보도로 미뤄볼 때 전문 고위급들을 위한 장례식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중석 : 고위급이라고 하는 것은 당중앙위원회 위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현아 : 당 중앙위원회 위원급도 안 되고요, 당 중앙위원회 비서급 정도 되야 할까요? 여기로 말하면 장관급은 돼야할 겁니다. 아마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장례식 해줄 때 그야말로 차에 싣고서 짧은 길을 돌았지만 어쨌든 시내를 돌게 해줬어요. 그리고 최강, 이분이 항일 투사거든요, 그 분도 그렇게 해줬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까지는 안 하고 서장 구락부에 안치하고 명예 위병대가 서 있었고 그 정도죠.
오중석: 북한에서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사고로 인해 한꺼번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었던 이들이 사후 장례나 제대로 치러졌는지 의심이 듭니다.
김현아: 북한은 큰 사고도 잘 나고, 특히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제일 어려울 때가 고난의 행군이었는데, 자기 부모나 자식이 있어도 외지에 나가서 사망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럴 때는 그걸 가서 실어 올 수도 없고 현지에 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도 아들이 외지에 가서 죽었는데 교통이 단절되어서 데리고 올 수가 없어서 당시 가까운데 가서 좀 해결해 달라고 하니까 도대체 해줄 수가 없다, 하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니까... 그래서 자기 자식을 묻는데 관 없이 묻었다고 돌아와서 땅을 치고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예전에는 관을 짜서 묻고 웬만하면 집으로까지 보내주고 했는데 고난의 행군 때는 정말 인간답지 못하게 사망한 것 같습니다.
오중석: 말씀을 듣다보니 북한에서는 인간답게 죽는 것조차 허락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개처형을 감행하고 수용소에서 재소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되풀이 하는 북한체제는 인간의 생명을 철저히 경시하는 정권이 아닐까요.
김현아: 그렇죠. 사실 저는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요, 북한은 항상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삼는 나라고 인간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나라라고 했는데, 여기 와서 살아보니 북한만큼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데가 있나하는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북한에 살 때 공개처형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뭐가 잘 못 됐다고 생각했냐면 사실 공개처형 당할만큼 죄 짓지 않은 사람을 공개처형 했을 때, 이것이 잘 못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무리 잘못을 한 사람도 죽을 때 존엄 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악독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땅땅 쏴서 죽이는 것은 인권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 오중석 : 공개처형이라는 것은 옛날 왕조 시대에나 있던 나쁜 습관입니다. )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죄를 조금 졌는데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잘 못 됐지 사람 많은데서 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 인권 수준이 정말 한심한 것이죠. 그리고 북한에서는 사람에서 제일 많이 죽는 곳이 교화소입니다. 지어 정치범 수용소는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요. 교화소에서 많이 죽는데 정말 값없이 죽고 값없이 묻히죠.
오중석: 교도소 재소자가 죽어도 가족들에게 알리고 장례식 치르고 합니다. 남한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고요. 북한에서는 그것조차 허락이 안 된다는 말씀이군요. 국민(인민)의 생명은 하찮게 여기는 북한정권이 김일성이 사망한 뒤 보인 온갖 우상화 행태는 남한에서 볼 때 어처구니없는 것 이었습니다. 체제유지를 위한 일부 특권층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처럼 요란한 장례의식을 치르고 있습니까?
김현아: 예, 그러나 사실 요란하지도 않아요. 그냥 여기 일반 사람들 정도입니다. 다만 요란한 것은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그때가 가장 요란했죠. 온 나라가 조문 기간을 20일 정도 했고요. 지금도 김일성은 죽었지만 주석궁 하나를 통째로 내서 김일성 시신을 안치하고 이것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모르고요. 또 주석궁을 개조할 때 일억 오천만 달러가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 돈으로 사다 먹였으면 한 달은 살았을 겁니다. 그때가 고난의 행군이 시작했을 때거든요. 그리고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 개 외화벌이 사업소를 전문 경영하고 있거든요. 여기도 현충원이 있잖아요. 북한에는 애국열사릉, 혁명열사릉이 있는데요, 사실 인민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거기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근데 과연 헌신했나 하는 기준은 앞으로 다시 평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중석: 한국에는 아직도 유교식 장례의식이 많이 남아있어 3일장이나 5일장으로 장례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원이나 각 지방마다에 장례식장이 마련되어있어 죽은 사람에 대한 품위있고 엄숙한 장례식이 가능합니다. 북한에서 일반적인 장례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김현아: 북한의 장례절차는 복잡하지 않아요. 다 똑같이 하거든요. 다 3일장으로 하고요, 가까운 친척이나 자식이 못 오면 5일장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나마 여름 같은 때는 또 5일장을 못하죠. 냉장 장치가 없으니까요. 장례는 장례식장이 아니고 다 집에서 하는 것이 보통이고요. 3일장 마지막 날 묻고 다음날은 가까운 가족만 가서 인사해요. 여기는 49일재도 있고 하는데,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오게 되면 집에서 간단히 제사 지내고, 설날 같은 때는 조상께 재를 올리고... 남한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것은 아직은 남한보다 화장이 많지 않아요. 북한도 화장을 장려하지만 기름이 없다나니까 화장을 못하고요, 오히려 화장을 하는 데는 좀 사는 집이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화장에 대한 거부감도 아직 많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한번 더 태우나...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오중석: 네, 잘 알겠습니다. 사실 북한 동포들도 자기 부모나 친지가 사망했을 경우 경건하고 품위 있는 장례식을 바라고 준비할 것 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북한체제가 주는 모순과 압박으로 형편이 안 돼 육친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면 이러한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민족은 본래 일생에서 죽음에 관련된 의식을 제일 중하게 여겨왔는데요 북한도 같습니까?
김현아: 네, 같지요. 제가 여기 와서 남한과 북한이 똑같다고 생각한 것은 결혼식은 못 가 봐도 장례식장에는 가봐야 한다. 하는 겁니다. 북한에서도 그러거든요?
네, 오늘은 우리민족이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장례문화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인간의 기본권 중에 인간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 이 인간답게 죽을 권리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품위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북한체제에서 많은 분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사후에는 합당한 장례절차도 거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오늘 대담에 김현아 선생이 수고하셨습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현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자유 아시아 방송,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