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어제와 오늘] 송년회 문화

서울-오중석, 김현아 ohj@rfa.org
2010.12.16
xmas_bus_305 성탄절을 앞둔 연말을 맞아 9일 오후 크리스마스 트리 등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한국BRT의 서울 시내버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세요? 분단 60여 년 동안 세월의 차이만큼 달라진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는 남과 북,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이제 올해의 달력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한국에서는 송년회모임으로 식당예약 하느라 한바탕 야단법석을 치르게 됩니다. 요즘에는 술 마시고 떠드는 송년회보다 예술성 높은 공연을 감상한다 던지 야외에서 조용히 식사하면서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하는 송년모임도 인기 있습니다. 남과 북의 달라진 송년회 문화 오늘도 탈북 여성지식인 김현아선생과의 대담으로 알아봅니다. 김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현아: 네 안녕하세요?

오중석: 남한 사람들은 요즘 송년회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지요. 북한주민들도 아무리 어려워도 송년회 모임은 꼭 한다고 들었는데요. 어떻습니까.

김현아: 네 북한 주민들도 송년회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남한은 갈수록 송년회 모임이 늘어나지만, 북한은 요즘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송년회라는건 주로 직장 단위로 진행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요즘 북한이 직장이 참 약화 됐거든요. 북한 주민들도 송년회는 작업반이나 사무실 성원들하고 함께 직장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요즘에 북한에서 형식만 직장이지 제대로 운영 안되는 직장이 참 많아요. 또 여자들은 대부분 직장을 그만 두었고요. 그런데 아직 동네에서 송년회 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요. 또 송년회라는 게 남한에서는 물질적인 준비에 부담이 없지만 북한에선 한상 차려먹는 것이 참 재정적으로 어렵거든요. 지금은 돈만 있으면 시장가서 사면 되는데 돈이 없어서 문제고, 이전에 사회주의 때는 송년회 하자면 술도 사고 고기도 사야 하는데 상점에 그게 없었어요. 송년회 하려면 한달 전부터 부서 단위로 어디가서 공작해올까 고민했거든요.

오중석: 엣날에 국영 상점만 있을때도 충분치 않았다라는 거군요

김현아: 물론이죠. 북한엔 ‘뒷문을 열어야 할수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어느 농장가서 무슨 쌀을 가져올까, 어느 식료품 상점과 교섭해서 술을 가져올까 궁리하죠. 지금은 돈을 많이 내야 하니까 사람들한테 말하기 좀 어렵고, 직장에서 몰래 몰래 내다 팔고 그걸로 공동으로 때려 먹어야 되겠는데 요즘은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가 없으니깐요. 아마 총체적으로 조사해보면 이전보다 송년회 하는 단위가 적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중석: 아무래도 경제 사정도 좋지 않고, 직장이 많이 무너졌으니까 송년회가 줄어들었을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김현아: 네 그러니까 북한에는 송년회 참가 안하고 한해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요.

오중석: 연말에 송년회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지난 한해 동안 쌓였던 묵은 감정, 좋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고 새로운 기분,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의미가 큰 것 아닌가요? 그래서 송년회를 망년회라고도 부르지 않습니까? 북한 주민들도 한해 동안 잊고 싶은 일이 많겠죠.

김현아: 네 너무 많죠. 북한에서는 송년회라고 하지 않고 주로 망년회라고 합니다. 처음에 직장 다닐때 망년회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저 연말에 하는거면 으레 망년회라고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후에 지나고 보니까 한해를 잊자는 뜻이네요. 남한은 너무 잘 살아서 힘들지만 북한주민들은 못사니까 그야말로 잊고 싶은 것이 많겠죠. 그런데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북한에선 송년회 하는 걸 당국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한때는 송년회를 하지 말라고 조직적으로 막았습니다. 왜냐하면 한해를 토로하다보면 자연히 살던 이야기 나오고, 살던 이야기 하다보면 불평이 나오는거고, 불평이라면 개인적인 것보다는 정치적으로 하게 됩니다. 결국 북한 국가에 대한 불평으로 귀착이 됩니다. 또 북한에서는 동창회도 싫어합니다. 원래 북한에 동창회라는 것이 없어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는걸 당국이 아주 싫어하니까 망년회도 공개적으로 통제합니다. 요즘에 사회주의 문화를 확립해야 하는데 쓸데없이 먹자판을 벌려놓고 식량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협동농장은 아무리 못 살아도 가을에 농사진 것들이 있잖아요. 전에 농사진 것의 일부를 바꿔서 고기도 바꾸고 쌀도 떼서 일년에 한번 한바탕 잘 먹어보자라는 명분이 주로 송년회, 망년회거든요. 그러니 될수록 북한 당국에서는 안했으면 하는 거죠.

오중석: 가까운 친지들이 모여 한 해를 마무리 하는 회식자리를 갖는 것은 우리민족의 오랜 전통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과거역사에 보면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섣달 그믐, 세밑, 눈썹 세는 날, 제석, 제야, 제일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요. 세밑에는 가족 친지가 모여 묵은 세배도 하고 만두를 먹어야 한 살을 더 먹게 된다고 해서 만두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또 섣달 그믐날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해서 새벽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안자고 새해를 맞이하는 풍속도 있었죠. 북한에도 이런 풍습이 있었겠지요?

김현아: 북한이 60, 70년대 와서는 봉건유교사상, 복고주의라고 전통을 장려 하지 않았어요. 저는 어렸을 때도 밤 새고 새해를 맞이했다거나 밤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이전 60년까지만 해도 옛날 크리스마스 소련 전통이 넘어와서 그런지 전체 인민이 듣는 김일성 신년사를 밤 영시에 했어요. 그때 좀 잠 안자는 기풍이 있었는데, 70년대 들어오면서 바뀌었어요. 밤새 자지 않고 고생할 것이 뭐 있냐 해서 시간을 아침 9시로 바꾸었어요. 여기는 크리스마스 이브나 마지막 제야의 종소리 등 시간을 맞추는 것이 있잖아요. 북한은 밤을 새는 풍토는 별로 없어요. 그래도 설 전날은 텔레비전에서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니까 그걸 좀 보기 위해 밤을 세긴 하지만 북한에는 전통풍습은 상당수 사라졌어요.

오중석: 남한에서도 물론 이런 전통적인 송년 풍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렇긴 해도 친지들, 혹은 직장동료와 함께 한 해를 보내는 송년행사는 아주 일반화 되어있지 않습니까? 또 요즘에는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흥청망청 먹고 즐길 것이 아니라 돌볼 가족이 없고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송년회를 즐기자는 봉사형 연말모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선생님도 보시기에 남한의 송년회 모습이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현아: 제가 여기 와서 본 송년회 풍습은 너무나도 송년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저만 해도 송년회 참가 초청장이 10개가 넘고, 다 갈 수 없어서 두루두루 골라서 참가하는데도 계산해보면 5곳은 참석하는 것 같습니다. 조그만 모임만 있어도 다 송년회 하자고 합니다. 또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처럼 딱 한 개 조직에 망라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모임에 참가하고 있습니까. 동창회, 시민단체, 직장 등등 다 가자고 보면 망년회가 너무 많습니다. 북한은 망년회가 한번이잖아요. 그래서 가서 한번 잘 먹어보자, 또 특히 남자들은 술을 한번 실컷 먹어보자 해서 망년회를 기다립니다. 남한은 실컷 먹어보자라는 생각은 없고,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일부는 정치적 목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나갑니다. 한해를 잊고 추억을 남기자 라는 뜻도 있지만 남한도 많이 변경된 것 같아요. 남한은 다들 바쁘게 일상을 보내니까 아는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어요.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친지도 한번 만나고 친구와 회포를 풀 수 있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주로 매일보는 같은 직장 성원들끼리의 우리 그동안 사이 안 좋았던 것 풀자라는 모임입니다.

오중석: 그래서 남한에서도 송년회라고 하지 않고 10여년 전에는 망년회라고 했습니다. 그동안에 묵은 감정이 있으면 풀고, 또 오랫동안 못 만나 섭섭했던 사람과 반갑게 이야기 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었는데요.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잘살게 되니까 먹는 것보다는 사람 만나는 것 위주로 또 묵은 감정은 풀고 새로운 포부를 서로 나누고 사람을 사귀자라는 의미로 송년회라고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아까 말씀 하신 대로 저도 송년회가 십여 개가 넘어서 상당히 걱정됩니다. 그렇긴 한데 남한에서 좋은 경향이 생긴 것이 송년회에 우리끼리 먹고 마실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 불우한 이웃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함께 하는 봉사형 송년회가 늘어나는 것이 남한 사회의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김현아: 탈북자가 많이 모여사는 구에서는 연말이 되면 탈북자를 위한 송년회를 꼭 조직해줍니다. 거기에는 방금 나와서 남한 사회를 잘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갑니다. 여기 남한에 와서 오래된 사람들은 거기 말고도 갈데가 많으니 별로 안오지만, 방금 나오신 분들은 남한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참 좋아합니다. 복지관에서 송년회를 조직하는데 프로그램도 재밌고, 한번 할때 탈북자들이 한 3, 4백명씩 모이는 것 같습니다.

오중석: 저는 그런 의미있는 송년회 전통이 계속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연말을 맞아 우리민족 오랜 관습인 세밑 풍속, 즉 송년모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남쪽에는 한 해가 저무는 세밑에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먼저 생각하던 우리민족 특유의 미덕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맘때쯤이면 거액의 성금이 모아지고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해가 저무는 이 때 정작 북녘 땅에서 참으로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동포들을 우리가 위로할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이 우리를 서글프게 합니다. 언젠가 남북의 동포들이 함께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옛 것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기쁨을 함께 즐길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순서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대담에 김현아 선생이 수고하셨습니다.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현아: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진행에 오중석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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