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북한인권학생연대, 열린북한 방송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음악 소리가 들리더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일사분란하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그러다가 음악이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듯 헤어져 걸어갑니다...
무슨 음악 영화의 한 장면 같죠? 요즘 유행하는 플래쉬몹이라는 겁니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펼쳐지는 색다른 공연... 약간 당황스럽지만 재밌습니다.
플래쉬몹이란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이나 이메일, 휴대전화를 통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집결한 뒤 특정한 행동을 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행위를 지칭하는 신조어, 새로운 문화입니다.
춤을 추기도 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는데요. 즐기기 위한 놀이 문화에서 시작됐지만 선전이나 시위 수단으로도 이용되기도 합니다.
광복절 날 광복의 기쁨을 재현하는 만세 플레쉬몹이 열렸고 미국의 유명가수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을 때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전 세계 애호가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여 그의 춤을 추는 플래쉬몹을 했습니다. 한류 가수들의 공연을 촉구하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플래쉬몹도 크게 화제가 됐는데요. 즉흥적인 것 같지만 즉흥처럼 보이기 위해 각자 열심히 연습을 해온다고 하네요.
지난 일요일, 서울 광화문에서도 플래쉬몹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독재 세습, 아니 아니 아니되오~ 오늘 <젊은 그대>에서 이 현장 전해드립니다.
INS - 현장음 : 자, 여기서는 이렇게 씩씩하게...
광화문 광장 옆 작은 공원에서 연습이 한창입니다. 북한 인권 대학생 모임과 시민단체, 광고를 보고 자원해서 참석한 학생들이 100여명... 10분 뒤에 광화문 광장에서 선보일 율동을 음악에 맞춰봅니다.
INS - 현장음 : 자 흩어져 계세요. 여러분은 이제 서울 시민이에요. 그냥 어슬렁어슬렁 거리다가 음악 나오면 모이는 겁니다! (기자: 이렇게 있다가 음악 나오면 모이는 건가요? ) 네, 음악 나오면 조금씩 들어올 거예요. 이렇게 되기까지 연습 많이 해야 해요. (웃음)
밝은 음악으로 시작되지만 중간엔 이번 플래쉬몹이 뭘 상징하는지 알리기 위한 간단한 역할극도 포함됐습니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나면 춤을 추던 참가자들이 양쪽으로 갈라집니다. 가운데로 김정은과 인민군 2명이 걸어 들어옵니다. 무거운 음악과 함께 참가자들은 몸을 낮춥니다.
인민군들은 총과 구호판을 들고 있습니다. 구호판의 내용은 '세습독재 완성 방법? 주민들을 통제하라, 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라'! 김정은 역할을 맡은 배우는 호탕하게 웃지만 그때 주민들은 외칩니다.
'세습독재 아니아니 아니되오~!'
김정은과 인민군이 사람들에게 밀려 퇴장한 뒤, 흥겨운 음악과 함께 다시 춤이 시작됩니다.
INS - 음악 소리
인터넷에 올려진 동영상을 보고 각자 집에서 연습했다는데 그래서인지 2번 맞춰본 것 치고는 손발이 잘 맞습니다. 이날 서울이 꽤 더웠는데요. 학생들의 얼굴이 햇볕에 달아 벌겋습니다. 아마 이날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인민복 입고 가면을 쓰고 김정은 역할을 했던 외국어대학교 3학년 김성준 학생이었을 겁니다.
왜 본인이 김정은으로 뽑혔을까요?
단체에서 저번에도 퍼포먼스 했는데 체격이 비슷해요. 살쪄서 그런 건 아니에요. (웃음)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제가 지금 활동하는 단체가 시장 경제와 북한 인권을 연구하는 단체인데요. 내일 시험이지만 참여하려고 왔습니다.
연기에 임하는 본인의 자세는 어때요?
최대한 김정은 같이, 악당같이 보이려고요.
근데 김정은이 악당으로 느껴지세요?
음... 사실 저하고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겠지만요. 미사일 쏜 것도 그렇지만 미국의 영양 지원도 중단될 것이라는데 정치적인 이런 행동보다 주민들을 챙겼으면 어땠겠나 싶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앞으로는 점점 더 나쁜 사람이 돼가겠죠?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는 벚꽃 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유혹을 다 물리치고 이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3년 신선미 학생은 이날이 생일이랍니다.
연습 많이 하셨어요?
집에서 동영상을 보고 몇 번 하긴 했는데 연습은 여기 와서 많이 했어요.
오늘 어떤 역할 하세요?
저희는 그냥 가운데서 춤춥니다. (웃음) 다른 조 분들은 피켓도 들고 나오셨던데 저희는 그냥 와서 춤만 추네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바이트라는 인터넷 잡지에 이런 행사가 있다는 공지가 떠서 그걸 보고 신청을 했어요. 여기 단체 회원들이 많으신데 저희는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평소에 북한 인권에 관심이 좀 있으셨어요?
관심이 많다고 말하긴 민망하지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행사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탈북자 북송 문제나 여러 가지 사안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친구들 몇 명 같이 왔어요?
2명이요. (웃음) 여기 계신 분들이 잘 해주셔서 어색하지 않게 잘 하고 있습니다. 근데 오늘 날씨가 정말 좋은데요. 벚꽃 구경도 아직 못했지만 오기로 약속했고 오고 싶어서 온 건데요. 게다가 제가 오늘이 생일이거든요. 제 생일마다 북한에서는 태양절이잖아요? (웃음) 제 생일인데 뭔가 보람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 행사 끝나고 이제 놀러가야죠. (웃음)
특별한 생일이네요.
네, 저희 플래시몹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인권 상황이나 독재 정치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날 참가자 중 가장 쑥스러워한 사람은 지난해 북한에서 왔다는 김진영 씨. 지금은 대학에 가려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큰 용기를 내서 나왔답니다.
김진영(가명) 친구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나왔는데 쉽지 않네요. 남한에서도 나이 많으신 분들은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관심 없는 것 같아요. 이런 걸로 좀 북한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2시 30분, 광화문 광장에 섰습니다.
일단 학생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시민들 속에 묻혀 있어야 하는데 맞춰 입은 주황색 상의가 너무 튀어서 주변 시민들이 무슨 행사인가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게다가 이 광화문 광장은 4차선 도로 한복판에 자리잡은 곳이라 보는 눈도 많고 꽤 쑥스럽습니다. 함북 온성 출신으로 지금 건국대학교에서 다니는 이지연 씨의 말입니다.
이지연(가명) 젊은이들이 통일에 관심 없다고 얘기하는데 소수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 존재 하는구나 보고 저희 활동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 저희와 같은 또래 친구들이 있다면 함께 해볼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근데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까 떨리는데요. 떨리는 마음보다 신나게 해보려고요...
INS - 본 공연
시민 인터뷰 초등학교 3학년이요. 재밌었어요! / (플래쉬몹이) 무슨 얘기 하려는지 충분히 알겠고 새로운 시도라서 보기 좋았습니다. / 평소에 관심 없는데요. 미사일도 쏘고 그래서...
어쩌면 이날 화창한 날씨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북한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남쪽 사람들에게는 북한 문제는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로 인식돼 왔는데요. 그 문제를 이렇게 가볍게 접근해 보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의 생각도 같습니다. 한국 외국어 대학교 2학년 우재혁 군의 말입니다.
우재혁 : 이런 문제에 대해 너무 무겁게 접근하니까 오히려 관심을 안 갖는 걸 수도 있어요. 길거리를 지나가다 볼 건데 오히려 이렇게 재밌게 꾸며서 사람들이 관심을 끌지 않을까요?
이날 여자친구,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도 시험공부도 일단 접고 낯선 사람 앞에서 용기 내 어설픈 춤을 열심히 췄던 학생들의 플래쉬몹은 어떤 가수의 무대보다 신나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문동휘 :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북한인권학생연대의 문동휘 대표의 말이었습니다.
18일 북쪽 언론은 이 플래시몹을 '깡패 대학생 무리들의 망나니짓'이라고 비난했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젊은 그대> 이날 플레쉬몹에 등장했던 주제가 Jump into NK 들으면서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