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신포 경수로사업 중단의 교훈
2006.06.02
함경도 신포에 원자력 발전소 두 기를 건설하던 경수로사업이 6월 1일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경수로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남한,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의 대표들이 모여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토대로 시작된 경수로사업은 출범 10여년 만에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업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경수로 사업이 시작될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에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짓는다는 것이 워낙 대규모의 사업이고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북한의 경제가 발전되는 것은 물론, 남북사이의 교류와 협력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특히 연인원 천만 명이 동원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경수로 건설과정에서 남과 북의 주민들이 서로 어울리고 친숙해지면서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출범 초기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이 남한의 경수로는 받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협상이 지연되었습니다. 남한이 총 사업비용의 70%를 부담하면서 경수로사업에 참여했던 것은 남한의 기술로 만든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전제조건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남한의 경수로를 북한에 지어야만 통일된 후에도 남북한의 전력통합과 경제통합이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비용을 대는 남한의 경수로를 받지 않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애당초 어불성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수로사업이 오늘날과 같은 파국을 맞이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북한에 있습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면서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면서 파키스탄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지금까지도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만, 파키스탄의 무사라프 대통령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입니다.
북한에게 제네바합의 위반사실을 시인하고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졌었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이런 기회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영변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아내고 핵무기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 후 공개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경수로사업은 그 존립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경수로사업이 실패함으로써 남한은 엄청난 재정적인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화 11억 4천만 달러, 남한 돈으로 환산하면 1조 4천억 원이 사라진 셈입니다. 물론 이것은 재정적인 손해일 뿐입니다. 그동안 남한의 관리들과 국민들이 경수로사업에 대해 걸었던 기대와 꿈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은 심리적인 충격과 허탈감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런 충격은 향후 북한과의 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거래에서도 1조원을 넘게 손해를 보도록 만든 상대와 또 다시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는 거래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포했고, 지금도 핵무기를 만들 재료를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남한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투자와 지원에 상당한 경계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번 경수로사업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북한이 도움의 손길을 스스로 뿌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야만 경제도 나아지고 북한 주민들의 살림살이도 좋아질 수 있을 텐데, 북한당국이 경제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핵무기 개발에만 집착하는 것은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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