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호 칼럼: 독일 할머니, 북한 남편 만나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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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학생이던 남편을 지난 46년간 기다려 온 독일의 레나테 홍(70세)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져 남편 홍옥근(73세)씨가 북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이 독일판 이산가족 사연이 독일 사회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남한의 중앙일보 보도다.

홍옥근씨의 생존 사실은 최근 평양주재 독일 대사관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전달 받았다는 것이다. 남편의 생존을 전해들은 레나테 홍 할머니는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가슴이 떨리고 너무나 기쁘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얼마나 기쁘고 가슴 떨리는 일일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미 본란을 통해 이들의 기구한 사연을 전한대로 레나테 홍 할머니는 독일이 동 ·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던 1955년 당시 동독의 예나대학으로 유학 온 홍옥근씨를 만나 사랑하게 됐으며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그 후 홍옥근씨는 북한당국이 3백여 명 되는 동독 유학생들을 모두 본국으로 소환하는 바람에 평양으로 돌아갔다.

레나테 홍은 1963년 까지만 해도 북한에 있는 남편과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큰 아들 페터 현철과 둘째 아들 우베도 어릴 때 헤어 진 아버지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남편을 찾게 해달라고 독일 정부와 주독일 북한대사관에 낸 청원서에서 “남편이 나와 두 아들이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소원이다. 우리 두 사람은 이미 늙었다. 더 늦기 전에 남편을 만나보고 싶다”고 간청하고 있다.

북한 홍옥근씨의 생존이 확인된 이상 이들 가족들이 만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당국이 독일 이산가족의 상봉에 소극적인 태도인 듯하다. 그러나 독일에서 레나테 홍 할머니의 딱한 사연이 대서특필되고 독일 사회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어 북한으로서도 이를 전적으로 외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마도 북한은 인도주의적 상봉을 허용하라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면 그때 쯤 서신 교환이나 화상 상봉을 허용할지 모른다.

북한이 독일과 국제사회의 여론에 못 이겨 마지못해 화상 상봉이나 제한된 만남을 허용한다면 이는 국제사회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만일 북한이 레나테 홍 할머니 그리고 두 아들과 홍옥근씨의 상봉을 끝내 허용하지 않는다면 독일과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큰 원망과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레나테 홍 할머니와 비슷한 사연이 또 있다. 지난 1950년대 동독 유학생이었던 북한의 김경봉씨와 독일 여성 사이에 태어 난 독일 베를린의 여의사 우타 안드레아 라이히(48세)씨는 46년 전 헤어 진 북한의 아버지가 과학원장을 지낸 북한 과학계의 거물로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썼다. 우타 안드레아 라이히도 북한의 아버지 김경봉씨와의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북한도 인권과 인도주의를 존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남북한의 이산가족뿐 아니라, 독일과 루마니아 등 옛 동구권 국가와 북한 옛 유학생 등 북한 주민들 간에 있을, 또 다른 이산가족들의 가족 상봉도 허용되어야 하며 이는 빠를수록 좋다. 수십 년 간 헤어져 살아야 했던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딸들의 상봉이야 말로 어떤 이념이나 체제도 막을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한은 레나테 홍 할머니와 그의 남편, 우타 안드레아 라이히와 그의 아버지가 하루 빨리 만나도록 허용해야 한다. (2007.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