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차이나는 수화, ‘통일’은 같다


2007.07.23

서울-장명화 jangm@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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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아인협회 이미혜 사무처장 - RFA PHOTO/장명화

북한에서도 10명 중 2명은 청각장애인입니다. 남한에도 청각장애인이 있습니다. 이들이 대화하기 위해 쓰는 수화마저 남과 북의 분단으로 서로 나뉘어서 수화통역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과 북의 수화소통은 통역 없이도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남한의 전문 수화 통역자 이미혜씨에게서 알아봤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말이 쏟아짐과 동시에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짓, 입 모양, 표정, 어깨의 움직임도 빠릅니다. 텔레비전 화면 오른쪽 아래에 비쳐진 수화통역사의 모습입니다.

이미혜: 실제적으로 농아인들의 특성상 시각적으로 모든 정보를 얻는 문화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눈에 보이는 명사라던가, 움직이는 동사에 대한 이해는 뛰어난 반면, 아무래도 이념적인 것, 추상적인 것, 심리적인 것, 내면적인 것,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는 데는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의 폭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서,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유능한 수화통역사라고 하면, 그러한 표현들을 상대방 농아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적절한 용어로 잘 설명해서 통역해주는 것, 잘 대체해서 통역해주는 것, 이런 것들이 유능한 수화통역사의 기준으로 판가를 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이미혜씨. 수화통역을 한지 올해로 22년째의 전문갑니다. 물질이 아닌 개념을 수화로 옮기기에 어렵지만, 남북‘통일’에 대한 수화는 어렵지 않습니다. 오른손을 모로 누여서 왼손 손바닥 가운데 세차게 놓습니다. 그 오른손을 번쩍 올립니다.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 장벽이 없어져야 통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북한말로는 손말, 혹은 손가락말에서 ‘통일’을 가리키는 손짓은 다행히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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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아인협회 사무실 - RFA PHOTO/장명화

이미혜: 숫자나 군대 등의 용어들은 수화의 모양이 저희와 아주 동일합니다. 아주 똑같은 수화모양도 있구요, 하지만 아무래도 북한과 한국이 이념적으로 노선을 달리 하고 있다보니까, 우리한테 없는 용어들이 그쪽에서는 일상화되어있기 때문에, 저희에게 없는 수화가 있기도 하고. 또 남한에는 있지만 북한에는 없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예전에 38선이 있기 전엔 같은 수화를 썼을 것 아닙니까?

남한 보건 복지부에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모두 17만 명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대략 30만 명 선입니다. 북한은 평양시, 평안남도, 강원도, 황해남도 주민 43만 명 중 10명당 2명꼴로 청각장애인입니다. 이는 북한의 조선불구자지원협회의 1999년도 조사자료입니다.

이미혜: 북한에도 농아인들에게도 수화가 있구요, 또 제가 다른 경로를 통해서 우연하게 북한의 ‘수화사전’을 저희가 접한 적도 있습니다. 농아학교에서 사용하는 ‘손말사전’같은 것들도 사전형태로 발간되어있고, 또 ‘조선장애자 지원협회’라고 저희 같은 장애인단체들도 활동을 하면서 참고자료로 ‘손말학습’이라는 수화도서도 발간이 되어있는 것을 볼 때 역시...

남북한간에 언어의 이질화를 막기 위해 우리말 공동연구사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습니다. 수화도 예외는 아닙니다. 북한과 남한의 수화를 비교 연구하는 작업이 현재 계획 중에 있습니다.

( 기자 ) 남북간에 수화를 단일화하려는 노력은 있었나요? 이미혜: 아직까지 저희가 공식적으로 북한과 한국의 농아인들이 공식적인 교류를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구요, 앞으로는 그런 경로를 통해서 우리 북한의 농아인들과 한국의 농아인들이, 예를 들어 요즘 체육활동 등으로 교류하고 있지 않나? 우리도 그런 만남의 기회를 갖고, 우리가 가지고 잇는 많은 정보라던가, 이런 농아인 관련된 권익문제라던기 복지증진의 문제들, 또 그쪽에서 안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잘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서로 검토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로 나가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계획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혜씨에게 수화는 제 2의 언어입니다. 이 언어가 남북간에 통역 없이도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기를 오늘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미혜씨는 그래서 날마다 하루에 한번은 오른손 주먹의 검지를 펴서, 오른쪽 관자머리에 댄 뒤, 왼손 손바닥이 보이게 놓습니다. 이어서 오른손 손바닥과 맞춰져서 왼쪽 방향부터 오른쪽 손끝까지 천천히 스쳐냅니다. ‘평화’. 머리 아픈 문제들이 깨끗이 사라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평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의 언어라는 수화. 세상의 소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사는 남북의 청각 장애인들에게 평화는 여전히 잡힐 듯 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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