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일: 대학생과 자원봉사


2006.07.19

요즘 장마철이라 비가 너무 많이 왔어요. 여기 남한에서는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등 여러 지역에서 하천이 범람하고 강둑이 터져 많은 집들과 논밭이 물에 잠기고 인명피해까지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 수재민들에게 더욱 힘을 주는 것은 전국각지에서 모여드는 자원 봉사자들의 손길과 힘을 내라는 그들의 격려 한마디입니다. 자원봉사라고 하면 국가나 정부의 방조가 아닌 남한 일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간을 내여 멀리 산간지역이나 일손이 부족한 피해 지역들에 나가 복구에 나선 수재민들의 일손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남한에 와서 놀라왔던 일들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에는 없는 자원봉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도 바쁜 농사철이나 급한 사고 등 난리가 났을 때는 많은 지원사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국가나 해당 단체의 조직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일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 남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한다거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저도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왜 자원봉사를 하는지 잘 이해가되지 않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기만 알고 남은 모르는 개인주의 사회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불우이웃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시간과 노력, 돈을 아끼지 않는 것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자원봉사의 영역도 한계가 없습니다. 도시나 산골의 오물 청소부터 시작해서 동물보호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고 그 영역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남한에서는 부모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웃, 신체나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이웃 등 불우한 이웃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인식이 일반화 되여 있었고 학교나 공공기관 등에서도 이러한 교육과 윤리를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나 학교,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에서 계속 이러한 영향을 받고 살아오며 실제적으로 학교생활기간에 자원봉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자원봉사를 많이 한 학생에게 점수를 더 많이 주고 있습니다. 대학기간에도 여러 동아리에서도 자원봉사를 경험할 수 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나가서도 자원봉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저 역시 이곳 한국민들의 많은 도움을 받게 되였고 이들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나도 언젠가 남을 위해 돕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드디어 한국에 온지 1년이 되였을 때 저는 자원봉사를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어린이 센터에서 그들을 돕기로 한 것입니다.

제가 속한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아침에 사회복지관에 갔는데 20여명 정도의 정신지체장애 어린이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일반 어린이들과 달리 지능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마음대로 외출해서 세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실태입니다.

그래서 저희 학생들이 한명이 한 어린이씩 맡아서 책임지고 복지관에서 조직한 예술공연을 관람하고 오는 일을 하게 되였습니다. 각자 어린이들의 이름표를 기억하고 분담된 어린이의 손을 잡고버스에 올라 함께 앉아 서울시내를 구경하고 공연장에 도착했습니다. 공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고 우리도 그들과 역시 공연을 보았습니다.

정신지체 장애 어린이 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어린이도 역시 계속 다른 곳으로 가려고만 하고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해도 온통 바닥에 흘리고 숫가락을 던지고 통제불능이었습니다.

제 옷에도 온통 음식투성이 자국이었구요. 그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항상 시선을 떼지 못했고 화장실에까지 따라가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도 기진맥진 해질 정도였습니다. 저녁에 복지관에 돌아왔고 해당 어린이들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데리러 왔습니다. 그들은 저희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좀 더 그 어린이를 잘 해주었을 걸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저러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 부모들을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위해 묵묵히 수고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습니다. 그날 하루는 몹시 힘들었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뿌듯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휴가를 고생하는 수재민들을 위해 바치려고 계획하고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이들의 노력에 힘을 보태려 합니다. 그럼 오늘을 이만하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장마철 큰 비에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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