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편지: 북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2006.08.23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탈북자의 편지’ 순서입니다. 오늘은 2005년에 한국에 온 탈북자 김미향(가명-여,30세)씨가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보고 싶은 동생에게! 우리가 헤어진지도 2년이 넘어온다. 모두 잘 있는지... 내가 남한에 가면 영원히 소식을 모르고 살아야 한다고 하던 너의 말처럼 소식 전하기가 어려웠어.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1년이 됐는데 아직도 배워야 할것이 너무 많아.

시간이 갈수록 우린 북한에서 너무 미개하게 살아 왔다는 걸 느낀단다. 남한의 거리마다 영어와 한자가 많아서 우리처럼 제대로 된 교육 못 받은 사람들은 많이 공부해야 돼. 나도 처음엔 집에서 시장까지 버스타고 10분 거리인데 버스를 탈줄 몰라 걸어서 헤매다가 3시간이 걸려서야 집을 찾았어.

그렇다고 길을 묻게 되면 나의 말투가 연변말투라고 < 중국조선족>으로 착각하기도 하지. 처음에 몇 달은 외출하기도 두려웠어. 사방엔 굉장히 큰 아파트들과 건물들이 화려한 장식을 하고 늘어서 있고 쉴새 없이 달리는 자동차며 자유분망한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물에 뜬 기름처럼 생각되어 두렵기도 했어.

하나하나 공부하며 1년이 지나고 여러 친구들과도 사귀다 보니 이젠 안정이 되고 있어. 우리고향 사람들도 생존에 이런 도시 구경 한번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자기의 몸에 휴대한 휴대용 전화기로 세상 어디에 있든 원하는 대상과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것이 우선 제일 신기해 보였어.

이웃들이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왔을 때 난 오해하고 < 나에게서 뭘 바라고 도와주는 걸까?> 했는데 자본주의 제도에선 자발적인 봉사자들이 힘겨워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문화가 있다는 걸 후에야 알게 됐어.

북한에서 < 공산주의 미풍선구자대회>라는 거 했지? 부모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워 군대에 내보내서 당으로부터 감사받는 모습들이나 영예군인(군에서 부상당한 제대군인)과 결혼하여 TV,냉장고를 선물 받는 것처럼 남한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아. 북한처럼 조직적 결론에 의해서 실행되는 건 아니고 순수하게 그냥 도와 주는거야.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회적으로 거지는 아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어리둥절 할뿐이야. 내가 미처 모르는 문제를 하나하나 알려주는 도우미들이지.

여기 남한에 온지 10년이 넘은 탈북자들도 많은데 그분들의 정착체험을 들어 보면 사실 자본주의 사회가 그리 만만치는 않은 것 같애. 북한에선 일을 대충해도 되지만 자본주의는 도저히 허용이 않되. 자기가 잘 한 것만큼 자의 몫이 차례지는 것도 자본주의래.

지금 난 어느 자그마한 중소기업에서 전화기를 조립하는 일을 하는데 내가 열심히 한 것만큼 월급이 차례지니 일할 재미도 난다. 북한에선 1년 벌어야 될 돈을 남한에선 두 달이면 돼. 그 정도의 경제적 차이가 있어 보여.

주말과 저녁이면 컴퓨터 학원에 가서 교육받는데 누가 강요하는 건 전혀 없고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거야. 자유란 것이 정말 소중하고 책임적인 것인줄 자유세계에 와서 살아 보니 알 것 같애. 난생 처음 내손으로 내 이름으로 된 은행통장도 만들었고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화려한 백화점에 가서 내가 필요한 물품을 사오는 생활이 참 인민의 세상이란 바로 자본주의에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에 어디가나 <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란 구호가 있지.

그렇지만 인민은 된장, 간장도 없어서 굶고 있고. 너무 배고픈 인민들이 집밖으로 도망가고 있는데 그런 구호를 만든 사람들은 호화별장에서 산해진미를 가려먹으며 제 집안 유지에만 신경 쓰는 현실인데 어떻게 인민의 나라란 말을 하는지 이해도 안 된다.

북한은 < 수령의 나라>, < 수령을 위하여 사는 인민>이 정답일거야. 그 속엔 인민이 없다. 자본주의 나라엔 모두가 평등하진 않아. 그러나 인간의 권리는 누구나 평등해. 북한에선 자동차를 보면 보행자들이 뛰어 달아나지만 남한에선 자동차가 보행자를 피해줘야 하는 것만 봐도 사람살기에 합당한 제도는 자유세계란 걸 알게 된다.

요즘은 좀 괜찮아졌는데 처음 몇 달 동안은 너의 얼굴만 더 올라 많이 울었어. 혼자 이렇게 좋은 집에서 멋진 가재도구 차려놓고 좋은 음식 먹자니 동생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이렇게 까지 자유롭고 행복해도 괜찮은건지 어리둥절해질 때도 있다.

난 건강해. 너의 건강을 간절히 바란다. 하나뿐인 동생의 앞길DL 잘 되길 항상 기도할게. 안녕히.

2006년 7월20일. 남한에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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