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마약 확산에 ‘주민 강연·교화형’ 단속…“국가가 원인 제공” 반발

앵커: 북한 당국이 마약 범죄를 국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주민 강연과 교화형 처벌을 앞세운 단속에 나선 가운데, 일부 주민 사이에서 “마약 확산의 책임은 당국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내부소식, 김지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강연 통해 “무자비한 제거” 강조

북한 당국이 최근 공장 기업소와 인민반을 대상으로 진행중인 정기 강연회. 해당 강연회에서 상영된 마약 퇴치 영상을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입수했다. 동영상 속 남성은 마약 관련 범죄가 위험 천만한 반국가적, 반사회주의 행위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강연 내용: 마약 범죄는 단순한 우리의 사상, 우리의 제도, 우리의 일심 단결에 파열구를 내고 이 땅에서 사회주의 붉은기를 내리우려고 미쳐 날뛰는 원쑤들의 책동에 맞장구를 치고 그에 동조하며 침략의 주역을 놀아대는 극히 위험 천만한 반국가적 반사회주의적 행위라는 것,…

강연은 마약 범죄자는 신분과 관계없이 “자비를 베풀지 말고 단호하고 무자비하게 제거해야 한다”며, “마약 범죄자 김옥금의 썪어빠진 모습과 너절한 인생을 통해 심각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을 요구한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은 28일 RFA에 “당국이 마약 단속에 혈안이 돼 있다”며 “공장 기업소 종업원과 인민반 주민들에게 마약척결 강연 영상을 시청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마약 관련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사법당국이 ‘마약 소탕 작전’을 공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2021년 7월, 지정한 '마약범죄방지법' 마약 범죄를 일반 형법에 포함시켰으나 마약 남용이 늘어나자 별도의 법을 만들었다.
조선민주주의공화국 마약범죄방지법 북한이 2021년 7월, 지정한 '마약범죄방지법' 마약 범죄를 일반 형법에 포함시켰으나 마약 남용이 늘어나자 별도의 법을 만들었다. (NIS 국가정보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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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남구역 가정 파탄…“어린 아들 거리 떠돌아”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도 27일 RFA에 북한 당국이 “마약 관련 사건을 교화형으로 처벌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8월 초 라남구역에서 마약 유통 혐의로 남편과 아내가 교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어린 아들은 일시적으로 친척 집에 맡겨졌으나 그곳을 나와 거리를 떠돌고 있다는 겁니다.

이 소식통은 주민들이 마약(속칭 ‘얼음’)을 감기, 뇌혈전, 관절통, 설사 등에 만병통치약처럼 쓰고 있다며 “이 현상은 당국이 1990년대부터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재배하게 한 양귀비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양귀비에서 채취한 아편이 귀한 약품으로 인식되며 퍼졌고, 국제사회의 여론으로 아편 재배가 중단되자 당국이 화학 성분을 이용한 마약 제조에 나섰다는 겁니다.

이 소식통은 또 생계가 어려운 주민이 돈을 벌려고 마약 유통에 뛰어들었다가 순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흡입해 중독되고, 집과 재산을 팔아 가정이 무너지는 사례가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확을 앞둔 양귀비 재배지
수확을 앞둔 양귀비 재배지 수확을 앞둔 양귀비 재배지 (AFP)

권력층엔 ‘기호품’…군부대 아편 재배 주장도

평안북도의 또 다른 소식통은 28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마약중독”이라며 “먹을 식량이 없는 주민들은 마약을 유통할 돈이 없지만 돈 많은 권력층 간부들 사이에서 마약은 하나의 기호품처럼 쓰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탈북민 출신 북한개발연구소 김병욱 소장은 앞서 RFA에 북한 내 마약 확산을 막기 위해선 간부들의 마약 사용부터 단속해야 한다고 지적한바 있습니다.

김병욱 소장: 일반 주민의 마약 사용도 심각하지만 안전원, 보위원 등 간부들이 마약을 더 많이 합니다. 마약을 통제해야 할 사람들이 이러니 마약이 근절될 수 없지요. 북한이 마약을 근절하고 싶으면 애꿎은 주민이 아니라 위 간부들의 마약 사용부터 단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소식통은 강원도 일부 군부대에서 아편을 재배해 군인 치료에 쓰는 것으로 안다며, 지인의 아들이 전역하면서 아편씨를 가져온 것을 보고 알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은 소식통 개인의 증언으로, RFA가 독립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을 원한 또 다른 소식통은 “몇 명의 마약사범을 교화소에 보낸다고 이미 만연한 마약을 퇴치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단속과 처벌보다 마약이 아니어도 생활이 가능한 사회적 여건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속과 처벌이 가정을 파탄 내고 주민을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을 뿐이라며 생활 여건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는 겁니다.

에디터 박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