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특수 누린다더니…“외화는 당이 독점, 시장은 ‘물가 폭탄’”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등으로 북한에 외화가 유입되고 있지만,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의 물가와 환율이 오히려 치솟는 이유는 국가가 확보한 외화가 시장으로 흘러가지 않고 국내 통화량이 늘어났기 때문일 수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22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북한경제포럼’에서 한미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 시장의 환율과 물가 상승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외화는 국가에, 시장엔 달러 부족

이날 발제자로 나선 최지영 한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외화 수급 구조가 당·군·정부가 쥐고 있는 ‘공식 부문’과 일반 주민들이 거래하는 ‘비공식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국가의 외화 수입이 곧바로 시장에 유입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최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2021년 제8차 당대회 이후 화폐 유통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고, 이듬해 ‘국가유일무역제’를 도입해 대외 무역을 공식 부문 중심으로 재편한 점에 주목했다. 북러 협력으로 국가의 외화 수입은 늘었지만, 이 돈이 민간 시장으로는 흡수되지 않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10월 현재 북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1달러당 환율은 북한 돈으로 약 7만 원에 달한다. 올해 초 4만 원보다 무려 60% 가까이 올랐다. 중국 위안화도 북한 돈 1만 3천 원으로 올해 초 5천 원대에서 2배 이상 상승했다.

또 백미 가격은 1kg당 5만 2천 원으로 올해 1월보다 3배 가까이 올랐으며, 옥수수는 올해 초 1kg당 3천600원에서 10월 현재 1만 5천 원까지 치솟았다. 이런 가격 상승 곡선은 2024년 말부터 계속됐는데, ‘아시아프레스’는 김정은 정권이 2023년 말 국영 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10배 이상 인상했지만, 초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생활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최 연구위원은 탈북민 증언을 인용해, 북한 당국이 2023년 8월부터 개인의 외화 보유와 거래에 대한 통제를 크게 강화했으며, 그 결과 주민들 사이에서 외화 거래에 따른 위험 부담이 커졌고, 이것이 시장 환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최지영] 2023년부터 북러 협력이 강화돼 외화 수입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외화 수입이 시장 영역, 비공식 부분으로 흡수되지 않는 것 같고 이것이 시장의 물가, 환율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원인으로 보입니다.

북한 돈표 5만 원권과 5천 원권(왼쪽), 북한 화폐 5천 원권과 2천 원권(오른쪽)
북한 돈표 5만 원권과 5천 원권(왼쪽), 북한 화폐 5천 원권과 2천 원권(오른쪽) 북한 돈표 5만 원권과 5천 원권(왼쪽), 북한 화폐 5천 원권과 2천 원권(오른쪽) (RFA-김지은)

“북한 원화의 기형적 팽창... 통제 불능 인플레이션 촉발”

이날 토론자로 나선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부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수입과 사이버 범죄 수입이 북한의 일반 무역 규모를 크게 웃돌고 있으며, 이 자금의 흐름이 북한 환율을 움직이는 핵심 요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놀랜드 부소장은 북한 당국이 유입된 외화를 그대로 북한 원화로 바꿔주면서, 늘어난 통화량을 거둬들이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화 유입에 상응하는 실물 경제의 생산성 향상이나 시장 내 외화 유통 없이, 북한 정권이 원화 통화량만을 기형적으로 팽창시키면서 화폐의 실질 가치가 곤두박질쳤다는 것이다.

결국, 시장 상인들은 가치가 급락한 북한 원화 대신 외화를 선호하게 되고, 물건값을 부를 때 원화 표시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 잡으면서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이 촉발됐다고 놀랜드 부소장은 해석했다.

[마커스 놀랜드] 제 가설은 북한 당국이 이렇게 들어온 자본을 수동적으로 북한 원화로 바꿔준다는 겁니다. 북한 내부의 경제 활동에 비해 국내 통화량이 크게 늘면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암시장에서 북한 원화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또 놀랜드 부소장은 1990년대 이후 유지되던 북한 시장의 위안화·달러의 교차환율 균형이 코로나19를 거치며 무너진 이후 2026년인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북한 당국의 외화 단속이 실제 효과를 내고 있다는 간접 증거라고 덧붙였다.

헌법에 ‘세금 없는 나라’ 삭제... 무상 서비스 사라지나?

한편, 최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의 대응 정책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꼽았다.

북한은 2021년과 2022년 임시 화폐 성격의 중앙은행 ‘돈표’를 각각 5천 원권, 5만 원권으로 발행했는데, 북한이 2009년 화폐개혁의 실패를 의식해 정식 화폐 대신 임시 화폐 형태로 조심스럽게 시중에 돈을 늘린 것으로 최 연구위원은 평가했다.

이어 북한은 2024년 초 국가 배급 쌀값을 40원대에서 2천 원대로 약 50배 올리고, 노동자 국정 임금도 약 20배 인상했는데, 이에 대해 최 연구위원은 과거 2002년 7·1조치와 2012년 가격 인상 때도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며, 임금 인상 이후 돈표를 통해 추가로 통화를 발행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북한이 노동자의 임금을 10배 이상 인상했을 때만 해도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먹고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식량을 비롯해 연료와 기타 공산품의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임금 인상의 의미는 유명무실해졌고, 지금의 임금 수준으로는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편, 최 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면서 ‘무상 치료’, ‘세금이 없어진 나라’ 문구를 삭제한 점을 들어, 앞으로 국가 서비스에 요금이나 세금을 매길 가능성을 암시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런 시도가 단기간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에디터 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