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 북한에서 찍는다”…북러 교류, 극장에서 호랑이까지

북한과 러시아가 파병과 무기 거래 등 군사적 밀착을 넘어 문화와 환경 등 비군사 분야로 교류를 넓히고 있다. 양국 수도에서 영화 주간을 교차 개최한 데 이어 영화 공동제작을 논의하고 있으며, 접경지역의 멸종위기 야생동물 실태 파악을 위한 실무 접촉도 시작했다.

모스크바에 이어 평양에서도 ‘영화 주간’

평양에서는 이달 24일부터 28일까지 ‘러시아 영화 주간’이 열리고 있다. 북한 외무성에 따르면 평양 대동문영화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리성은 국가영화총국 총국장과 안드레이 포디옐리셰프 주북 러시아대사 등이 참석했다.

개막작으로는 러시아 영화 ‘북극’이 상영됐는데, 북한 외무성은 이 영화를 “나라의 안전리익과 평화를 수호해 나가는 로씨야인민의 조국애와 용감성을 담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행사는 러시아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국영 영화진흥기관 ‘로스키노’가 주최했는데, 앞서 이달 2일부터 5일까지는 모스크바에서 북러 수교 78주년을 기념하는 ‘조선 영화 주간’이 열렸으며, 이때 ‘72시간’ 등 북한 영화 7편이 상영됐다.

이런 가운데 양국은 단순 상영을 넘어 합작 영화 제작까지 타진하고 있다. 엘자 안토노바 로스키노 대표는 26일 러시아 타스통신에 양국 영화인의 상호 참여와 공동 프로젝트 추진, 북한 내 현지 촬영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쿠르스크주 전투에 참여한 북한군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수자(Sudzha): 전우들’ 제작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영화는 러시아 정부의 지원으로 제작되며, 내년 러시아에서 8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을 구출하는 북한군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을 구출하는 북한군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을 구출하는 북한군 (영화 '수자' 티져 영상 캡처)

“내부 균열을 감추기 위한 목적”

북러 간 영화 협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10년 전 첫 시도는 외교적 마찰로 끝났다.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의 2015년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는 북한 문화성이 공동 제작사로 참여했던 작품으로, 8살 북한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 입단을 준비하는 평양의 일상을 담았다.

당시 계약에 따라 각본과 출연자는 북한이 정했는데, 촬영 내내 감시원이 따라붙었고, 촬영분은 매일 당국의 검열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만스키 감독은 촬영 전후에도 카메라를 끄지 않았다. 북한 관리들이 장면을 연출하고 소녀의 표정까지 일일이 지시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고, 감독은 이 영상을 검열관 몰래 따로 보관해 출국한 뒤 영화에 담았다.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며 파장이 일자, 북한은 러시아 측에 필름을 폐기하고 감독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또 제작비 일부를 지원했던 러시아 문화부는 제작진 소개 자막(엔딩 크레딧)에서 부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만스키 감독은 이를 거부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북러가 다시 공동제작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현 미국 아시아태평양연구소(CAPS) 선임연구원은 27일 RFA에 이런 교류 확대가 양국 체제 내부의 균열을 보여주는 방증이며, 이를 감추려는 선동이라고 분석했다.

[박지현 선임연구원] 과거 냉전기 때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기 직전 80년대, 그때 표면적으로나마 사회주의 국가들이 문화와 학술 교류를 과시하면서 자기네 체제가 건전하다는 걸 과시했거든요. 딱 그때가 지금 돌아오는 것 같아요. 러시아와 북한이 내부 균열을 감추기 위해서 지금 이런 연대라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동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둘러보는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대표단.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둘러보는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대표단.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둘러보는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대표단.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북한에도 흔적 있다”…‘백두산 호랑이’ 공동 조사 거론

환경 분야에서도 양국 정부 간 접촉이 이어졌다.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측에 따르면,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대표단은 최근 러시아 연해주 하산군을 사흘간 방문해 극동표범의 핵심 서식지이자 북러 접경 지역에 맞닿은 ‘표범의 땅’ 국립공원과 ‘케드로바야 파디’ 자연보호구역을 둘러봤다.

북한 대표단이 이 국립공원을 찾은 것은 개원 14년 만에 처음으로, 이번 방문은 북러 정부 간 협력위원회 산하 환경보호분과위원회 제2차 회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협의에서 김광호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환경보호국 과장은 “북한에서도 대형 고양이과 동물의 흔적을 이미 확인했다”며 러시아 측 연구와 보호 경험에 관심을 보이고 협력을 확대∙발전시킬 뜻을 밝혔다. 극동표범과 아무르호랑이, 이른바 ‘백두산 호랑이’가 북한 땅에 서식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빅토르 바르듀크 ‘표범의 땅’ 국립공원 소장은 야생동물에게 국경은 없다며, 국경 인접 북한 산림에 표범과 호랑이가 얼마나 서식하는지 함께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한편, 북러 양국은 이달 들어 교육·재난 분야로도 교류를 넓혔다.

알렉산드르 쿠렌코프 러시아 비상사태부 장관은 방북 기간 북한 재난 당국과 앞으로 3년간의 공동 활동 계획에 서명하면서 북한 전문가들을 블라디보스토크의 비상사태부 산하 소방구조 아카데미에서 교육하고, 북한의 러시아산 소방·구조 장비 도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세르게이 크랍초프 러시아 교육부 장관은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평양을 찾아 리영철 교육상과 회담하고, 평양 제2사범대학에 러시아어 교육센터를 열었다.

이 밖에도 김철원 북한 최고 검찰소장이 러시아의 초청으로 지난 19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알렉스드르 구찬 러시아 검찰총장과 공식 회담을 진행하는 등 양국은 10월 한 달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장관과 실무진이 잇달아 오가며 협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에디터 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