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책 연구기관이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한국 고대사의 원류를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학자들의 반박과 시민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사회과학원이 동북 3성, 즉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과 연합해 지난 2002년 2월 동북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연구작업, 이른바 ‘동북공정’을 시작한지 4년이 넘은 현재 양국간의 역사왜곡 논란은 학술적 논쟁을 넘어 외교적 마찰로 비화될 가능성도 보이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에서는 동북공정 논쟁의 현황과 그 배경, 그리고 전망에 관해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2천년전 경상도, 전라도 제외한 한반도는 중국 영토”
오늘은 4339년 12월 27일.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의 국조인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평양에 고조선을 세운 날을 기준으로 하는 “단군기원”에 따르면 그렇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모든 공문서에 단군기원, 즉 ‘단기’로 햇수를 표시했습니다. 비록 13년 뒤 5.16 군사정변이후 폐기되고 그 대신 서력기원, 즉 ‘서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단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모든 한국사람들의 의식에는 한민족의 뿌리가 단군조선이라는 것이 각인돼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에서도 단군왕검은 조선민족의 시조입니다. 북한은 1993년 고조선의 수도였던 평양의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서 단군과 단군 왕비의 유골을 찾아냈다고 발표하고 그 이듬해 10월 대박산 기슭에 대규모의 단군릉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고등중학교 조선력사에서는 단군은 전설적, 신화적인 인물만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며, 고조선의 건국시조임이 밝혀졌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동북공정 연구 결과를 통해 한민족이 민족사의 원류로 삼고있는 있는 고조선, 그러니까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의 왕조가 중국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었다니 한민족 후예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중국 동북공정의 주장이 맞는다면 2002백 여년의 고조선 역사는 중국 것일 테니까, 한민족의 반 만년 역사는 그 절반이 뚝 떨어져 나간 2천년 정도밖에는 안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동북공정의 주장에 따르면 고구려도 중국 상나라 후예들로 이뤄진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권의 하나이므로 고구려역사는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논리에 따라 관련 중국학자들은 고구려가 차지했던 만주, 그러니까 지금의 동북 3성지역과 조선반도 북쪽, 즉 북한도 모두 중국의 땅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북한은 물론이고 고구려가 전성시기에 차지했던 현재 남한의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까지도 모두 중국 땅이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한민족의 조상들은 2천년전에 전라도 경상도 정도의 영토만 차지했었다는 것이죠.
중국 학자들은 오히려 지난 2천년동안 통일 신라, 고려, 이씨 조선 시대를 거슬러 올라오면서 한민족이 중국 지방민족 고구려가 차지했던 조선반도 이북지역을 야금야금 북진하면서 잠식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300년전에 3국통일을 이룬 신라가 평양에서 원산정도를 잇는 선까지 중국땅으로 전진했고, 6백여년전 고려 말기에는 청천강에서 함경남도 영흥지역을 잇는 경계까지 북진했고, 그리고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에 와서는 압록강과 두만강, 즉,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까지 중국 땅을 침범했다는 시각입니다. 물론 고구려가 중국 지방 민족이라는 중국측 주장에 따르면 말입니다.
고구려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망한 뒤, 30년 후 현재의 길림성, 산기슭에서 세워져 220년간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위용을 떨쳤던 발해 역시 중국 동북부에 있던 말갈족이 세운 당나라에 속한 지방정권이었다고 동북공정은 주장합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조선 역사의 왕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주장을 설명드렸는데요, 다시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민족이 지금까지 조선 역사의 뼈대로 여기로 있는 고구려와 그 뒤를 이은 발해, 그리고 한민족사의 원류인 고조선 모두가 한국 역사가 아닌 중국역사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2002년 2월 동북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연구작업, 즉 동북공정을 시작한 이래 한국에서는 한국고대사 학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과 시민단체들 그리고 언론은 중국이 한민족 역사의 근간인 고구려사를 왜곡한다면서 한 목소리로 강력히 비난해왔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단순한 역사 왜곡이 아니라 역사 침탈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고구려사 왜곡에 학술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지 2년만인 2004년 3월 고구려재단이란 연구기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해말, 한국의 교육인적자원부는 고구려재단 학자들에 의뢰해 “중국의 고구려사 귀속문제 대처방안“이란 연구 보고서를 책자로 펴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조선의 고대사, 즉 고조선, 고구려, 그리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건국과정과 영역 그리고 당시 중국과의 관계 등에 대한 중국 학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대처방안을 실었습니다.
중국 23억원들여 ‘동북공정’ 국책사업 시작
중국학계의 주장과 이를 반박하는 중국과 한국 역사학자들의 학문적인 논쟁은 나중에 고대국가별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 동북공정을 전후한 주요 사건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시작하기 훨씬 전인 20년 전부터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내 소수민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관심 배경에는 중국은 ‘통일적인 다민족 국가‘라는 국가관이 동력이 됐습니다.
그리고 1983년 중국 정부의 국책기관인 사회과학원 안에 국경지방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연구를 위해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란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바로 이 연구소가 나중에 한반도와 접경한 지역, 특히 현재의 동북 3성 지역에서 건국되고 조선반도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융성했던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특히 1989년 동구라파 공산권 국가들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은 동북지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뒤, 1994년에 들어서면서, 중국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가 중국 변방정권이므로 중국사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2년 전 일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동북공정 연구작업을 직접 착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북한이 2001년 1월 유네스코, 즉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 고구려 귀족과 왕족들의 무덤인 고분군에 대한 세계문화 유산등록을 신청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중국은 그 이듬해 2002년 2월, 동북지역의 역사, 특히 고구려, 발해 등에 대한 학술연구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5년간의 사업기간과 1,500만 위안, 한국돈으로 23억원의 예산으로 이른바 ‘동북공정’이란 중국정부의 국책사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2004년 한국과 중국의 고구려사에 대한 본격 공방 시작
중국도 북한이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록 신청한지 2년 뒤인 2003년 동북 요녕성 환인현과 길림성 집안시 주변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해 줄 것을 신청했습니다.
또 같은 해 6월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 광명일보는 고구려 역사에 대한 시론을 싣고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역 역사에 나온 변경민족 정권이라고 주장해 한국 언론과 학계가 동북공정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듬해인 2004년 3월 한국정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고구려연구재단을 세우고 재단 학자들로 하여금 조선 고대사 연구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착수한지 2년 뒤입니다.
이때부터 중국과 한국은 동북공정의 고구려사에 대해 정부차원의 공방이 시작됩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이 고구려연구재단을 설립한 다음 달인 4월 외교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고구려사 대목을 삭제합니다. 한국 외교부는 7월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고구려사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복원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8월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의 모든 한국 역사를 삭제해 버립니다.
같은 달 양국간의 외교적 교류는 숨가쁘게 돌아갑니다. 한국은 우선 동북공정 문제가 외교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즉각 박준우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을 중국으로 보냅니다. 보름 뒤 중국 외교부의 우다웨이 아시아 담당부부장이 서울을 답방해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해 5개 양해사항에 구두로 합의합니다. 그 내용은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가 양국간 중대 현안이 됐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양국은 이 문제가 정치문제화 하는 것을 방지하고 학술교류를 통해 해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8월 24일 양국이 구두 합의한 다음 달, 한국은 범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반을 만들고 중국과의 구두 양해 사항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체제를 시작합니다.
한편, 이보다 두 달 앞선 7월 1일에는 북한과 중국이 2001년과 2003년에 유네스코에 각각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세계 문화재로 동시에 지정합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해 8월, 한국 정부는 중국의 역사 왜곡문제 뿐만 아니라 일본의 돋고 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문제를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함께 다루기 위해 고구려연구재단을 해산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을 세웁니다. 그리고 한달 뒤인 9월 중국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연구기관인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은 인터넷 웹사이트에 고조선 일부와 발해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동북공정과 관련한 18개 부문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합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중국사회과학원의 고구려사 왜곡은 중국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연구기관의 연구를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2004년 8월 양국의 구두양해사항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외교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하지만 한국 학계는 한국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비판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하는 본격적인 학술토론회를 열면서 동북공정 문제는 또 다시 한국 언론과 일반 시민들의 열띤 관심을 받게 됩니다.
기획보도 동북공정, 다음 주부터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한민족 고대사에 대한 중국 학자들의 주장과 한국 학자들의 반론을 차례로 소개해 드리고 동북공정의 목적과 한.중 양국간의 역사왜곡 논란 해소 전망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워싱턴-전수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