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의 북한 풍향계] “미북, 협상재개 유인 크지 않아”

서울-김은지 kime@rfa.org
2020.07.16
moontrump.jpg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앵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주목받은 ‘연내 미북 정상 간 만남’. 그러나 미북 간 협상 재개를 위한 ‘기회의 창’은 미국의 대통령선거 이후에나 열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협상 재개를 위해 양측이 선제적이고 전향적 조치를 취할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인데요. 무엇보다 미북의 비핵화 개념과 협상전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협상국면의 촉발 요인에 대한 양측의 상이한 평가로 인해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이 같은 미북 간 현상유지, 즉 협상 교착국면의 지속은 북한에게 핵 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려되는데요. 북한 현안을 분석, 전망하는 ‘김은지의 북한 풍향계’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미 대통령선거 전 미북 정상회담 개최’ 제안.

장기 교착상태에 빠진 미북대화를 대신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비핵화 협상을 추동하겠다는 구상이 북한의 ‘6월 대남 파상공세’로 사실상 실패하자 다시금 꺼내든 ‘촉진자역’ 카드입니다.

북한발 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상황 관리 차원이자 이중 교착국면인 남북미 대화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미북 협상의 교착상태는 미 대선이 실시되는 11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국 외교가의 관측입니다. 협상 재개를 위해 양측이 선제적이고 전향적 조치를 취할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양측의 국내정치일정(대선과 당 창건75주년)과 코로나19, 신형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미중관계 악화는 올 해 비핵화 협상 재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북한의 경우 미 대선의 불확실성 속에서 코로나발 위기로 경제 취약성이 노출된 만큼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는 것은 불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 말 북한이 내건 국가생존전략인 정면돌파전 역시 미국과의 장기전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미국 내에서 ‘오는 10월에 미북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는 북한의 도발을 관리하기 위한 차원으로, 미북 간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최선희 제1부상도 이를 잘 아니까 미국에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이죠.

미국 역시 최소한 올 한해는 북핵 문제에 외교적 자원을 투입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전통적으로 미 대선에서 대외정책이 유권자의 투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김정은의 제재 해제 요구를 거절한 ‘하노이 노딜’이 초당적 지지를 받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굳이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섣불리 미북 정상회담을 하더니 결국 양보를 하고 말았다’는 미국 내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양보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북관계는 당분간 ‘상호자제에 의한 상황관리’ ‘긴장 속 현상유지’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양측이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대선 전까지 일종의 잠정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모색할 여지도 남아 있지만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지긴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개념과 협상 전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긴 쉽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과 미국의 ‘일괄타결 후 단계적 이행 전략’은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근본적인 전략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미북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데는 협상국면의 촉발 요인에 대한 양측의 상이한 평가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북 양측 각자가 비핵화 협상의 시작이 상대방에 대한 전략적 승리의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는 협상과정과 결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연계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최대 압박전략(제재)과 핵무력의 가치와 전략적 효용에 대한 미북 양측의 상이한 판단이 상호 강압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북한은 2018년 이후 한반도 정세의 극적인 변화를 자신이 주도해왔다고 선전해왔습니다. 고도화된 핵무력에 기반한 과감한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이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 개최 등 비핵화 협상국면으로의 전환을 끌어냈다는 겁니다.

북한은 그러나 지난해 2월 하노이회담이 결렬되자 사실상 외교협상을 중단하고 ‘전략무기 개발’ 노선을 택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11개월 만에 4종의 신형 전술미사일을 완성하고 실전 배치에 들어갔습니다. 5월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선 ‘핵전쟁 억제력’ 강화, ‘전략무력 격동상태 유지’ 방침도 밝혔습니다.

한미연합사령부 작전계획과장을 지낸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지난 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언급한 ‘핵 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핵 미사일을 언제든 곧바로 쏠 수 있게 조준 장전 상태로 가동하겠다는 의미로, 핵 도발 재개 위협의 수위를 한층 높인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전략적 셈법도 달라졌습니다. ‘적대시정책 철회 이전 비핵화 협상 불가’라는 대미 접근 원칙의 변화입니다. 하노이 회담 당시의 ‘제재 해제와 비핵화 동시 교환’ 입장에서 한층 높아진 문턱입니다.

‘하노이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계산 하에 사실상 미북관계, 북핵 협상의 ‘새판짜기’에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하노이회담 이후 북한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CVID)와 안전보장(CVIG)을 직접 교환하는 것을 향후 협상전략으로 확정했다며 이는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제재 해제에만 집중할 경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로 분석했습니다.

단기적인 교환방식이 아닌 핵확산, 핵군축까지 염두에 둔 근본적인 교환이자 협상의 장기화를 염두에 둔 조치란 설명입니다.

반면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 하에 북한의 비핵화 행동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한미연합훈련 재개와 전략자산 전개 가능성을 열어두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경고음도 높이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론 ‘선 비핵화 후 제재-보상’의 원칙이 강하게 작동 중입니다. 황지환 교수는 하노이회담을 통해 미국은 제재로 인한 북한 지도부의 대내적 고민을 파악하고 ‘기다리는 전략’이 북핵 협상에 유리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대북제재강화법’으로 불리는 미국의 대북제재는 2016년 2월 발효된 이래 2017년 강화됐고 올해는 ‘오토 웜비어법’도 통과됐습니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도 제재 대상에 포함하는 이른바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성격이 포함된 강력한 법안입니다.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계속 추적해오던 사안으로, 미 재무부가 이를 찾아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점에서 강도는 점차 세질 가능성이 높고, 물자에 초점을 맞춘 제재에서 금융에 초점을 맞춘 제재로 가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지지를 확대하는 데 긍정적일 뿐 아니라 대북 군사조치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는 점에서 위험과 비용을 감소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군사력 사용 가능성을 전제한 채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일 때마다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제재를 위반하면 2차 제재를 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나 국내 정치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미국은 향후 추가 제재와 군사조치의 명분을 쌓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모색하겠지만 북한의 근본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대결국면이 일정기간 지속되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전통적인 ‘강대국-약소국 협상게임’과 달리, 미북 양국은 상호강압의 구조 하에 상대의 기만에 대비한 ‘플랜 비’(최악 상황 대비계획)를 대안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정세 주도권에 대한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높은 요구로 표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 외교가는 대선 이후 내년 트럼프 2기 또는 차기 행정부의 진용이 갖춰진 뒤에야 미북 협상의 2라운드(후속협상) 재개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몸값’이 지금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김동엽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우려스러운 대목은 핵무력에 대한 질량적 증가가 현 시간에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 내년에 다시 북한과 협상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 즉 지금과는 다른 핵무기의 숫자와 미사일의 성능을 손에 쥔, 이른바 ‘몸값’이 다른 북한과의 협상을 2021년 여름에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악순환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스웨덴(스웨리예)의 국제안보 전문 연구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달 15일 북한이 지난해 우라늄 농축과 핵분열성 물질 생산 활동을 지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올해 핵탄두 30~40개를 생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무엇보다 미중 전략경쟁 속 코로나발 위기에 따른 미국의 제한된 운신의 폭은 북한에게 ‘새로운 길’을 위한 전략적 공간을 제공할 전망입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으로선 미국이 코로나 사태의 최대 피해국 중 하나가 돼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없는 현 상황이 핵·미사일 능력을 급속도로 고도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북한에게 핵전력은 사회주의 강국과 김정은 체제 통치기반의 장기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핵심수단이자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결정적 지렛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북한의 고도화된 핵전력은 약소국인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을 정상회담으로 견인한 결정적 지렛대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 계산표를 짜놓고 있다’는 최선희 담화 역시 이런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새 전략무기’는 미국을 압박하는 핵심 카드가 될 전망입니다. 이 경우 위험부담은 낮추되 효과는 극대화하는 방식의 도발을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미국의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지 않되 그 임계점을 넘나드는 ‘도발의 모호성’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나 핵물질 생산활동의 의도적 노출,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계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공개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톱다운 외교가 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결정적으로 방해하지 않으면서 한미의 강경 대응과 추가 제재를 막고, 신형 무기 개발과 양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설인효 한국 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 북한의 노림수는 협상의 틀 자체를 깨지 않으면서 미국이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단거리 수준의 도발을 이어가며 SLBM이나 중거리미사일, 혹은 아주 결정적 순간에 ICBM 도발할 수도 있지만 일단 북한은 낮은 수준의 도발을 지속하면서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증진시켜 미국과 새로운 수준에서 협상할 때 좀 더 유리한 상황에서 협상을 하지 않을까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북한으로선 ‘레드라인’을 넘지 않되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군사적 시위를 통해 내년 미북 협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시 북핵 문제 해결의 우선 순위를 높이고, 바이든 후보의 당선 시 핵능력 과시를 통해 전략적 인내 정책을 추진할 수 없도록 만들려 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국을 향한 전략도발이 여의치 않을 경우 대남 강경노선이라는 충격요법을 통해 대미 압박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흔들지않되 한반도의 긴장수위를 끌어올려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손쉬운 카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 되는 분기점에 다다른 만큼 북한이 약속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북핵 폐기의 전략적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미북 양측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정교한 ‘비핵평화프로세스 이행 로드맵’(이정표)을 만들어 관련국들과의 협의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전재성 교수는 한반도 문제의 최우선 당사국으로서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와 제재, 비핵화 협상과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총체적으로 기울여야 한다며 무엇보다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북핵 협상과 평화체제 전망이 달라질 가능성이 큰 만큼 내년에 새롭게 시작될 비핵화 협상을 목표로 정책수단의 축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긴밀한 전략 대화를 강화하고, 핵 협상에 대비한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실행안을 정교하게 보완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비핵화와 미북관계 개선, 평화체제에 대한 미북 양측의 개념 일치를 끌어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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