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1월 중국 산둥성 옌타이 항에서 탈북자들이 배를 이용해 남한과 일본으로 탈출하려다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되었던 어머니와 딸이 다시 북한을 탈출한 것으로 전해 졌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중국으로 다시 탈출해 남한 행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남한 인터넷 신문 데일리 NK 가 4일 보도했습니다. 이원희 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을 알아봅니다.
이 모녀는 2003년 당시 남한과 국제 민간단체들이 주도해 80여명의 탈북자들을 배를 이용, 탈출시키려다 실패해 북송당한 사람들 중에 포함되었던 탈북자들 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시 국내외 비정부기구 관계자들이 중국이 탈북자 탄압을 강화하자 이들이 숨을 곳이 없어 20톤급 보트 2척에 태워 남한과 일본으로 밀항 하려던 것이 중국 공안에 발각되어 40여명이 체포되었고 10여명은 연행과정에서 도망했고 20여명은 소재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체포된 40여 명 중에 포함된 어머니와 딸이 북송되었다 지난해 다시 탈출을 한 것입니다.
이 모녀는 지난 2003년에 어떻게 보트 피풀에 합류하게 되었는지요?
데일리 NK 신문이 전한 바에 따르면 두 모녀는 99년에 탈북자 6명과 함께 처음으로 탈북 해 중국에서 뿔뿔이 흩어진뒤 중국 왕칭 십리평 에서 중국 사람의 농사일을 도우며 숨어 지냈다고 합니다.
농사를 도와 번 돈으로 라디오를 사서 밤늦도록 듣다 남한으로 간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3년 어느 날 같이 탈북 했던 사람이 찾아와 남한가는 길이 있다고 해서 심양-대련 행 기차를 타고 대련 항에 도착했습니다. 대련 항에서 신분증 검사 없이 표를 팔아 산둥성 옌타이 항에 도착해 내리려는데 신분증을 검열에 걸려 옌타이 공안당국 구류소로 끌려갔습니다.
밀항 하려던 배를 타보지도 못하고 공안에 끌려갔네요?
그렇습니다. 그 구류소 에는 북한사람들이 이미 많이 잡혀와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배를 타고 남한으로 가려던 사람들 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20일 동안 엔타이 감옥에서 그리고 한 달 정도는 단둥감옥에 잡혀 있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는데 공안당국은 탈북자들을 항상 밤에만 호송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으로 끌려갈 당시 상황증언도 있습니까?
40여 명이 넘는 탈북자들과 함께 압록강 철교를 건너 신의주로 호송되어 중국과 북한 국경 철다리를 넘어서자 북한보위부에서 큰 차를 가지고나와 보위부 차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남 신의주에 있는 감옥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남자 칸 10개와 여자 칸 이 6개가 있었고 간수들은 안전원 복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조사하는 과정에 고문을 받았다고 하는지요?
남자들은 심하게 때렸지만 여자들은 잘 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한 행 시도를 부인하는 남자들은 취조실로 끌고 가서 비명소리가 나도록 두들겨 패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간수들은 감방 안 죄수들 끼리 서로 때리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여성간수가 들어와 임신한 사람이 없는가 물어보고 몸에 지난 물건과 돈을 다 내놓으라고 명령한 뒤 손을 머리에 올리고 앉았다 섰다하는 기압을 받았는데 이는 알몸 속에 감춘 금이나 돈을 찾아내기 위한 기압이라고 합니다.
이 모녀는 정치범 수용소로 가지는 않았는지요?
공안에 체포되자 어머니가 절대로 남한으로 가려하고 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해서 그 말을 안했더니 한 달 만에 온성군 감옥으로 호송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온성군 감옥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가는 사람들로 그 중 추흥국 이라는 사람은 주모자로 총살당했다고 탈북자는 전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다시 탈북을 했는지요? 온성감옥에서 징역 3년 판결을 받고 다시는 중국으로 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들이 감옥에서 파라티프스 에 걸려 병보석으로 풀려 난 것입니다.
집에가 보니 이들이 굶어죽을 줄 알고 아버지 직장에서 집을 회수해 다른 사람들 에게 배정해 농장창고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날부터 마을 보안원이 매일 찾아와 감시를 했고 병든 몸에 약도 없자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제 북에 가면 어차피 죽고 중국에서는 짐승취급을 받고 있어 죽더라고 남한으로 가서 죽고 싶다며 남한으로 구출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신문이 전했습니다.
당시 국내외 비정부기구 들이 가담해 기획과 준비를 했던 대규모의 보트 피플 탈출 이었는데 어느 단체들이 참여 했었는지요?
남한의 두리하나 선교회, 피난처, 프랑스의 국경없는 의사회 일본의 RENK 국제난민기금, 북조선 난민구호기금과 미국의 대북식량단체 TON A MONTH CLUB 그리고 EXODUS 21,단체와 독일인 의사출신으로 개인운동가 노베르트 폴러첸씨 등이 가담 했습니다
어떻게 공안에 잡히게 되었습니까?
이들은 보트가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대비책을 모두 마련한 상태였습니다. 목적지는 남한의 추자도와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로 원래는 60여명을 태우려고 하다 80명이 모였고 중국현지 안내인이 중국공안에 알려준 것이 아닌가 관련단체들은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 보트 피플에는 남한인들도 있었죠? 네, 프리렌서 사진기자인 석재현 씨가 취재차 동행하려다 체포되어 징역2년 형을 받고 형기1년 2개월 마치고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개인 활동가 최영훈씨는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아직 복역 중입니다. 형기 반을 살고 가석방을 신청한 상태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얼마 전 남편 최영훈씨 면회를 다녀온 부인 김봉순씨가 전했습니다.
이원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