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루트 현장을 가다]➁ 꿈∙자유 찾아 험난한 여정

동남아-노정민 nohj@rfa.org
2019.10.28
mekong2_defectors4_b.png 멍투성이인 다리, 낡고 해어진 신발이 험난했던 탈북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RFA Photo-노정민

앵커: 자유를 찾아 최근 동남아시아의 제3국에 밀입국한 탈북자 13명은 안전한 곳에 도착했음을 확인한 뒤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멍투성이인 다리, 낡고 해진 신발과 가방끈 등에서 이들의 여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들었는지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한편, 이들이 지니고 있던 통신 수단이 탈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탈북자 13명의 목숨을 건 여정과 이들을 돕기 위한 한국 인권단체의 구출 작전을 현지 밀착 취재로 생생하게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이들의 험난했던 탈북 과정과 북한을 떠난 이유 등을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안도와 기대…제3국에서의 첫날 밤

[현장음] 자유를 찾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제3국에 무사히 도착한 13명의 탈북자는 인권단체 나우(NAUH)의 도움으로 한 민박집에 도착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제3국에 무사히 도착해도 워낙 지역이 광범위하고 연락 수단이 여의치 않아 인권단체 관계자와 현장에서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게 지성호 나우 대표의 설명입니다.

당시 구출팀도 오직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만 의지한 채 차를 타고 수십 km를 돌아다닌 끝에 기적적으로 만났습니다.

[현장음] 어! 찾았다. 아~~ 다행이다. 안녕하세요. 고생 많았습니다. 고생 많았어…

늦은 밤에 도착한 민박집에서 간단히 몸을 씻고 짐을 정리한 탈북자들은 그때서야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현관에 벗어놓은 탈북자의 신발은 그간의 고된 여정을 말해주듯 다 낡고 해져 있습니다. 일부는 강을 건너자마자 신발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밤중에 7개의 산을 넘다 웅덩이에 빠지고 넘어지면서 다리와 무릎 등에 생긴 멍과 상처 등은 탈북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두 명의 탈북 여성은 잘 걷지도 못했습니다.

[현장음] 아~ 어떡해. 다리... 잘 못 걸으시겠죠?

7개의 산을 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다리. 두 달여 험난한 탈북 여정이 느껴지는 낡은 운동화와 거의 끊어진 가방끈.
7개의 산을 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다리. 두 달여 험난한 탈북 여정이 느껴지는 낡은 운동화와 거의 끊어진 가방끈.
/RFA Photo-노정민

두 살배기 아기는 이미 침대 위에서 곯아떨어졌습니다. 성인도 감당하기 힘든 탈북 과정을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겨냈을지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탈북자들의 얼굴은 매우 밝았습니다. 이제 안전한 곳에 도착했고, 곧 자유의 땅인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그간의 어려웠던 여정을 되돌아보며 뒤늦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서로 밥과 음식을 나누며 건강을 염려하는 모습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이들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장음] 생일이라 생일 케이크 샀어요. 생일축하 노래 알죠?

마침 두 명의 탈북자가 생일을 맞았습니다. 미리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따뜻한 대한민국의 마음으로 이들을 품었습니다.

[현장음]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000…생일 축하합니다.

[지성호 대표] 우리가 그들을 만났을 때 따뜻함으로 잘 준비해야죠. 왜냐하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대한민국 국민이죠.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이 따뜻한 나라인지, 아니면 차가운 나라인지를 피부로 느끼게 되겠죠. 그러니까 더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친 다리를 주물러주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격려가 오간 시간.

불안하고 긴박했던 탈북 과정이 안도와 기대의 마음으로 바뀌면서 제3국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제3국에서 맞이한 첫날 밤. 생일을 맞은 탈북자를 위한 생일파티가 열렸다.
제3국에서 맞이한 첫날 밤. 생일을 맞은 탈북자를 위한 생일파티가 열렸다.
/RFA Photo-노정민

탈북자들이 소지한 휴대전화

이번에 만난 탈북자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휴대전화였습니다.

민박집에 도착한 즉시 자신이 가진 휴대전화에 무선 인터넷 연결을 요청했습니다. 직행, 즉 북한에서 바로 이곳까지 온 탈북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는데, 문자와 동영상 전송을 통해 무사히 제3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먼저 한국에 정착해 있던 가족과 지인에게 곧바로 전합니다.

[현장음] 이곳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장음]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시작! (우리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탈북 과정에서도 휴대전화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실시간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자신의 위치를 구출팀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도 휴대전화를 가진 20대 여성의 기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현장음] 좌표 찍어준대요. 보냈다!

[현장음:전화 통화] 환하게 불빛이 비칩니까? 우리가 흰색 큰 차이고, 그럼 그쪽에 와서 깜빡깜빡하시오. (2분이면 나갑니다) 2분!

[현장음] 고생하셨습니다. 저랑 전화 통화한 사람 누구예요? 고생했습니다.

제3국의 안전한 민박집에 도착한 탈북자들이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문자전송·전화 통화 등으로 가족과 지인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이들이 지니고 있던 통신수단은 탈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3국의 안전한 민박집에 도착한 탈북자들이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문자전송·전화 통화 등으로 가족과 지인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이들이 지니고 있던 통신수단은 탈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RFA Photo-노정민

하지만 탈북 과정에서 통신수단은 위치추적의 대상이 됩니다.

위치가 발각되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휴대전화를 켜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최근에도 중국에서 탈북자 몇 명이 붙잡혔는데, 통신수단을 이용하다 적발됐을 가능성도 제기됐습니다.

탈북자 중 한 명인 박주영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도 위치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통신수단 사용을 최대한 자제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박주영 씨] 제가 어른들에게 버릇없게 통제를 많이 했습니다. 저를 나쁘게 보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 제가 극단적으로 나갈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전한 제3국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부터 켠 탈북자들.

밤늦도록 휴대전화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거리낌 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른 아침부터 지인과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은 탈북 과정에서 휴대전화가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난 이유…꿈과 자유


한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에서 바로 제3국까지 넘어 온 탈북자 3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이곳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 곧 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한 나머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김진혜 씨] 이곳에 오니까 지금도 내 정신이 아닌 것 같은…계속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박주영 씨]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쁘다 할지…표현하기 힘듭니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 이곳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탈북자들은 갈수록 강화하는 단속과 통제, 북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 등을 피해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토대(신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꿈이 좌절된 김진혜(신변 안전을 이유로 가명 사용) 씨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싶어 탈북 길에 나선 경우입니다.

[김진혜 씨] 저는 그저 내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제일 서글펐어요. 의대를 몹시 지망했는데 갈 수 없었거든요. 토대가 걸려서. 의사는 토대가 너무 세거든요. 머리가 아무리 좋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토대 때문에 못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김 씨는 북한 주민의 생각이 점점 달라지고 있는데 북한 내부의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고 주민을 억압하고 있다며 한국에 도착하면 미국을 비롯해 더 발전된 나라에도 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나타냈습니다.

50대 여성 이춘화 씨(신변안전을 이유로 가명 사용)는 부정부패를 견디다 못해 북한을 뛰쳐나왔습니다.

이미 무너져버린 경제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주민으로부터 돈을 계속 착취하고 있고, 북한 사회도 뇌물이 아니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한지 오래였다는 겁니다.

장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면 좋겠는데, 오히려 당국이 단속을 강화하고 이를 피하고자 뇌물을 바치는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차라리 탈북하자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이 씨는 설명했습니다.

[이춘화 씨]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김정은 동지가 밑의 실정을 모른단 말입니다. 내가 사무장을 하려 해도 돈을 들여야 그 자리에 가고, 한 개 동을 책임지는 통장을 하려 해도 돈을 써야 그 자리를 따고…한 마디로 부정부패. 위에서는 몰라도, 중간층에서는 부정부패가 활개 치게 되었단 말입니다. (인민들이 장사를 해도 고달프단 말이에요.) 불쌍한 것은 인민들이죠. 인민들이 불쌍하단 말입니다.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가 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던 이 씨는 앞으로 한국에 가면 아들과 함께 제주도부터 가볼 계획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한 탈북자 김진혜 씨(가명)와 박주영 (가명) 씨. 이들은 북한을 탈출한 이후 약 두 달에 걸쳐 제3국에 도착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한 탈북자 김진혜 씨(가명)와 박주영 (가명) 씨. 이들은 북한을 탈출한 이후 약 두 달에 걸쳐 제3국에 도착했다.
/RFA Photo-노정민

20대 남성 박주영 씨(신변 안전을 이유로 가명 사용)도 오늘날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착취하는 것과 다름없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확실한 탈북 기회를 엿볼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북한을 떠날 것이라는 게 박 씨의 설명입니다.

[박주영 씨]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가 많습니다. 군관들 자체도 자본주의가 좋다는 말까지는 못하지만, 오고 싶어 하는(탈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정확한 선이 없고, 가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결심하는 사람이 적을 뿐입니다.

[지성호 대표] 금방 직행으로 넘어 온 친구들은 북한의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죠. 예를 들어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주민의 생각이나 북한 당국의 지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등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탈북 길에 동행했던 다른 사람들도 세 사람이 말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속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 고달픈 삶을 끝낼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만 있다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탈북의 길을 떠나고 싶었다는 이들의 굳은 결심이 제3국의 낯선 땅에서 더 확실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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