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송금 수사에 탈북민 사회 혼란
2023.11.23
앵커: 그간 인도적 차원에서 묵인해 온 한국 내 탈북민의 대북 송금에 대해 이례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 탈북민 사회도 혼란에 빠졌습니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의 생계를 돕고 싶어도 사실상 합법적인 송금 수단이 없는 데다 북한 당국의 단속 강화로 송금 수수료까지 높아져 탈북민의 한숨이 깊어가는 때에 대북 송금에 대한 수사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요.
천소람 기자가 탈북민의 대북 송금 효과와 특수성, 법적인 문제를 비롯해 경찰 수사에 대한 탈북민의 우려를 취재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서에 와서 조사받아라”
[서재평] 북한에 돈을 평소처럼 보냈는데, 어느 날 경찰로부터 전화가 와서 경찰서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대요. (그 탈북민이) 일산, 파주 쪽에 살고 있는데 대구 경찰청에서 전화가 왔다고 해요. 신고가 그쪽으로 됐는지, 누가 그쪽으로 자료를 줬겠죠.
[기자] 그 시기가 언제인가요?
[서재평] 아마 9~10월 같아요. 저도 2018년에 경기 남부경찰서에서 조사받은 적이 있어요. 직접 조사는 아니었고, 내 통장 계좌를 뒤지더라고요. 계좌이체가 문제가 돼서 조사했더라고요. 그 계좌를 문제 삼으면 나도 문제가 될 수 있죠.
한국 탈북자동지회의 서재평 회장은 지난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최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조사받는 탈북민이 늘어나고 있다며 자신도 과거에 경찰 조사를 받은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서 회장은 탈북민의 대북 송금 문제로 전국에서 경찰 수사가 이뤄지면서 탈북민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운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서재평] 반응이 굉장히 격양돼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탈북민이 생기면서 발생한 문제인데, 이제 와서 조사한다는 그 자체가….
서 회장 말대로 탈북민의 대북 송금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돼 온 현상입니다.
한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와 북한시장조사 전문 리서치기관인 엔케이소셜리서치(NKSR)가 발표한 ‘2020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는 약 65.7%의 탈북민이 ‘북한으로 송금한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탈북민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돈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탈북민의 대북 송금에는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까.
현재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합법적으로 돈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소위 ‘브로커’를 통한 송금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탈북민이 한국 내 브로커의 계좌에 원화를 송금하면, 국내 브로커는 이 돈을 중국 내 브로커의 계좌로 보내게 됩니다. 이후 중국 내 브로커가 이를 위안화로 바꿔 수수료를 떼고 다시 북한 측 브로커에게 전달하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약속한 돈이 가게 됩니다.
이는 은행 대 은행 간 외화 송금이 아닌, 개인 사이에 이뤄지는 외화 반출이기 때문에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해당됩니다.
변호사이자 법인 ‘북한인권’의 김태훈 이사장은 과거 대북 송금을 알선한 ‘브로커’의 변론을 맡은 경험을 지난 2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공유했습니다.
[김태훈]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가 시작돼 법원까지 갔어요. 그때 법원에서 한 변론은 “북한 주민들의 식량권,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자구행위이기 때문에 정당행위”라고 했는데요. 그때 ‘외국환관리법’으로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형식적으로 법에 위반된다 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으니, 무죄다. 관대한 처벌을 해달라”고 변론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대법원까지 갔는데도 안 됐어요.
김 이사장에 따르면 당시 영리 목적이 아닌 인도적 목적의 특수한 사정임을 내세워 ‘무죄’를 주장했지만, 결국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이는 대북 송금을 한 탈북민에게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댔을 때,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하나의 예가 됐습니다.
[김태훈] 벌금형으로 한국 돈 몇백만 원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송금을 합쳐서 보내니까 송금액이 좀 컸습니다. 횟수도 많았고요. 직접 보낸 분들이라면 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브로커와 달리 탈북민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소액에 대해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묵인해 왔습니다.
설령 이것이 법률에 저촉된다 해도, 법에는 ‘정당행위’와 ‘자력구제’가 있고, 대북 송금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를 정당한 사유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처벌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주장입니다.
[김태훈] 탈북민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어려운 생활 때문에 돈을 보내는 거라면, 어떤 형식이든지 참작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입건해서 기소할 필요성이 있을까에 상당한 의심이 듭니다. 영리 목적이 아닌, 순전히 인도적 위기에 관한 건데, 그런 부분은 참작해야 하지 않나란 생각이 듭니다.
“한 번 송금으로 최소 일 년 식비 해결”

실제로 탈북민이 북한에 보내는 돈은 가족의 생계유지에 큰 도움이 됩니다.
탈북민 김지연(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는 보통 일 년에 한 두 번씩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데, 지난 추석에도 송금했다고 (20일) RFA에 말했습니다.
[김지연] 추석쯤에 송금한 적 있어요. 저는 (한국 돈으로) 200만 원 보냈어요.
[기자] 200만 원 보내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나요?
[김지연] 200만 원 정도면 도움이 많이 되죠. 예전에 북한에서 물가가 안 오를 때는 100만 원씩 보냈어요. 100만 원을 보내도 그 가치를 했는데, 요즘은 북한도 물가가 많이 오르고 있고, 수수료도 예전보다 많이 비싸졌거든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식비로만 사용하고 아껴 쓰면 거의 일 년도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은 일 년은 못 가는 거 같아요. 쌀만 사고, 식비만 쓰는 게 아니잖아요. 돈을 보내면 필요한 생필품도 사다 보니 일 년까지는 안 가더라고요.
김 씨가 한국 돈으로 200만 원(미화 약 1천530달러)을 보내면, 중간 브로커가 그중 40%의 수수료를 떼갑니다. 송금 수수료인 약 8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120만 원(약 920달러)이 가족에게 전달되는데, 식비로만 사용하면 일 년은 버틸 수 있는 제법 큰돈입니다.
서재평 회장도 2~3년에 한 번씩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는데, 보낼 때마다 200~300만 원씩 보낸다고 말했습니다.
약 50%의 수수료를 제외하면 북한에 있는 가족은 150만 원, 미화로 약 1천150달러를 받게 되는데, 이는 북한 돈으로 약 954만 원에 해당합니다.
일본의 언론매체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11월 17일 기준으로 1달러당 북한 원화의 환율은 8천300원, 백미 1kg당 가격은 북한 돈으로 5천 원인데, 한국 돈 150만 원을 받을 경우 약 1천900kg의 쌀을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기자] 보내주시는 돈으로 북한 가족이 큰 도움을 받고 있네요.
[서재평] 그렇죠. 식구 3~4명 기준으로 쌀만 사면 2~3년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어요.
브로커 단속 강화에 송금 수수료는 40~50%선

하지만 북한 당국도 송금에 대한 단속을 계속 강화했습니다. 그동안 브로커도 많이 적발되면서 탈북민의 대북 송금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실제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지난 16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브로커의 90%가 사라졌고, 송금 수수료는 여전히 50%를 웃돈다”며 대북 송금을 위한 환경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브로커들이 잡혀가고, 계속 잡으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때도 부모나 친척에게 돈을 부치거나 송금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많았을 거 아니에요. 그때 맞춰서 엄청난 단속을 했어요. 제법 잡혀갔다고 합니다. 우리도 매달 송금하는데, 매번 고생합니다. 코로나 상황이 괜찮아지고 있지만, 송금 문제는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송금을 담당하는 브로커의 수가 감소하고, 송금 수수료는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대북 송금에 대한 수사까지 겹치다 보니 탈북민 사회는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서재평] 지금 상황이 북한 쪽도 겨우 코로나가 잠잠해졌고, 여기도 코로나가 풀려서 (북한 가족에) 송금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경찰은 탈북민들을 조사하고 있으니까 그게 안타까워요.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돈이라도 보내 생계를 돕고 싶지만, 합법적으로 송금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우회적인 통로도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내 가족에게 보낸 소액은 크게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분위기지만, 대북 송금 수사에 대한 소식에 탈북민이 느끼는 심적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김지연] 저희도 합법적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큰데, 우리도 위험하게 안 하고 싶어요. 근데 그렇게 되겠어요.
[서재평] 탈북민들이 굉장히 괴로워하는 게, 나는 여기 와서 이렇게 먹고 사는 건 괜찮은데, 북한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심한 정신적 부담감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유일하게 위안을 얻는 게 북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그것까지 조사를 하면….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