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본 북한] ② 짐승처럼 지낸 감옥 생활-반복되는 '교정'에 사지는 마비되고…

난민 인정을 받아 최근 미국에 온 탈북자 서 모 씨는 중국에서 강제 북송을 두 번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재탈북에 성공해 지금은 미국에서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서 씨는 노예처럼 시키는 것만 하면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야 했던 북한 보위부 감옥에서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자유 아시아방송(RFA)은 서 씨의 북한 감옥 체험담 두 번째 순서로 '짐승처럼 지낸 순간들' 편입니다.

이진서 기자가 보도합니다.

혜산 보위부 감옥에서의 5개월은 뜨고 지는 해를 통해 시간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뿐 감옥 밖의 사람들처럼 시간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은 없었습니다. 마치 고장이 난 자동차에 타고 있는 승객처럼 서씨는 점점 무기력해졌습니다.

서 씨: 보위부 감옥 벽에 작은 창이 있는데 그 창을 통해서 날이 밝고 해가 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밥 들어 오면 점심 때구나 하죠. 너무 굶주려서인지 밥 준다는 소리는 다 알아듣습니다.

배가 고플수록 창자에선 음식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위가 말라붙었는지 정신마저 흐려져 멍청이가 돼갔습니다. 먹고, 자고 하는 일은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지만 북한 보위부 감옥에선 철저히 통제를 받았습니다. 키가 167cm로 작지 않은 체구라 감옥에서 주는 음식이 항상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서씨: 정치범 수용소에 갈 사람은 알루미늄으로 만든 군인이 사용하는 식기에 삶은 강냉이와 메주콩을 소금물에 삶은 것을 수평 되게 줍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 않을 사람은 통강냉이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으로 줍니다.

하루 열다섯 시간을 꼼짝 못하고 올방좌를 틀고 앉아 '교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고통은 서서히 사지를 마비시켰고 몸의 뼈마디와 관절은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위부 감옥에서는 같은 인간이지만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이 높은 존재인 간수가 있었고 또 감방 안에는 같은 수감자이지만 간수가 임명한 감방장이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마음이 어질거나 약한 사람은 감옥 생활을 견디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인간이길 포기하고 야수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북한 감옥입니다.

서 씨: 한 사람이 너무 견디기 힘드니까 옆에 있는 칸에서 벽에다 머릴 디리 박더라고요. 간수가 말하더라고요. 이놈의 새끼 대가리를 담벽에 박으면 어떻게 해 하면서 데려나가서 1시간 정도를 혁대로 패서 살점이 묻어나는지 쩍쩍 소리가 나는데 처참하더라고요.

죽자고 해도 죽을 자유마저도 없는 북한의 감옥. 서 씨는 경제적 이유로 탈북했고 두 번째 강제 북송 때 혜산 보위부 감옥에 갔습니다. 그곳은 수감자들로 넘쳐 났습니다. 서 씨가 감옥에 있을 때는 겨울이었지만 덮고 잘 이불은 없었습니다. 얇은 모포가 있어 이것을 한 장씩 연결해 뒤집어쓰면 좁은 공간에 꽉 들어찬 수감자들의 열기 때문에 밤에 난방이 없어도 추운 줄 모르고 잘 수 있었습니다. 서 씨는 우연히 그곳 보위부 감옥에서 동네 사람을 만납니다. 하지만 결코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서 씨는 그를 알아본 기억으로 평생 또 하나의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게 됐습니다.

서 씨: 내가 있던 칸에 내가 보기엔 보위부 간첩 같은데 그 사람을 다른 사람하고 붙여서 보위부 수용소에 들여보내더란 말입니다. 보위부 간첩은 한동네 살던 사람인데 나이가 60 정도 되는 노인이었습니다. 간수도 내가 그 보위부 간첩하고 한동네 살아서 그 사람 정체를 알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러더라 고요. 입 놀리면 정치범 수용소에 처넣겠다고요. 내가 그 죄수에게 같이 있는 다른 죄수가 보위부 사람이란 걸 말해주지 못한 것이 제일 죄스럽습니다.

서 씨가 알고 있는 혜산 보위부 감옥에는 수감자를 고문하는 별도의 방은 없습니다. 감옥 전체가 고문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수감자가 해당 예심원에게 예심을 받다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예심원이 판단을 하면 어김없이 보위부 간수에게 지시를 했고 구타가 뒤따랐습니다. 서 씨는 감옥에서의 생활을 잘 견뎠고 반 불구의 몸이 돼서 풀려났습니다.

서 씨: 탈북자는 보위부 감옥을 거친 다음 문제가 없으면 다시 노동단련대로 넘깁니다. 저는 두 번이나 탈북해서 보위부 감옥에서 신문을 했고 영양 실조에 걸려 당장 죽을 사람이니까 꼬빠크로 보내지 않아 집으로 갔습니다. 집까지 가는데 80여 리길을 이틀에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옥을 나와 집에 갈때 몸무게가 35kg밖에 안 됐다는 서 씨는 북한 보위부 감옥에서의 최고의 고통은 고문이나 구타가 아닌 교정이라고 말합니다. 돌부처처럼 꼼짝 못하게 하루종일 앉아 있게 하는 규정입니다. 그다음 육체적 고통은 배고픔입니다. 감옥에서 수감자들이 반항하거나 집단행동을 하는 일은 원천 봉쇄되고, 간간히 정치범과 경제범을 가려내려고 수감자와 함께 들어오는 밀정들 때문에 수감자는 영혼의 상처마저 입게 된다고 서 씨는 증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