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미얀마를 가다’ ] 3부: 한류에 푹 빠진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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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5월 16일은 한국과 버마, 그러니까 미얀마가 수교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를 계기로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미얀마가 201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개혁·개방 조치, 이로 인한 경제 발전, 그리고 미얀마에 불어 닥친 한류 열풍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오늘은 세 번째 마지막 순서로 한국과 미얀마를 한 층 더 가깝게 만들고 있는 한류의 현 주소를 점검해 봅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여사님께서는 오늘 신메뉴 품평회 어떠셨습니까?”

한국 TV 연속극의 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한국이 아니라 미얀마 양곤에서 방송 중입니다. 미얀마 현지 공중파 중 하나인 MRTV4 방송. TV화면 아래에 미얀마어 자막이 없다면 마치 한국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만든 영어 교육용 프로그램인 ‘고고기글스(Go! Go! Giggles)’도 방송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불어 닥친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원래부터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얀마에서는 일본이나 중국 드라마가 인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가 2002년 미얀마에서 방송되면서 한류 열풍이 시작됐다고 한인사회 소식지 ‘모닝 미얀마’의 권병탁 대표는 말합니다. 은서와 준서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가을동화’는 한국에서 2000년 9월 첫 방송된 16부작 연속극입니다.

권 대표는 “한국에서 40%가 넘는 시청률을 보인 ‘가을동화’를 필두로 미얀마에서는 수많은 한국 드라마가 방송됐다”면서 “한국 드라마가 미얀마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끈 이유는 복합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권병탁 대표: 제가 볼 때 결정적인 건 이 나라 사람들은 해 떨어지면 갈 곳이 없어요. 특히 여자들, 주부들은 갈 곳이 없어요. TV밖에 없는 거죠.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정서가 비슷하다는 말이 많죠. 한국 드라마가 내용도 알차지만, 도심 배경도 좋고, 특히 이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스키장, 눈 많은 배경도 나오고, 사랑 이야기가 잘 맞아 떨어진 거죠. 처음엔 그런 사랑 이야기가 들어오다가,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정점을 찍은 건 ‘대조영’이나 ‘주몽’, ‘이순신’ 같은 정치적인 사극 드라마였죠. 이 나라 군인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죠. 갑자기 어느 순간에 황금 시간대가 되면 거의 모든 채널이 한국 드라마로 쫙 깔리죠.

미얀마에서 15년째 살고 있고 권 대표는 TV 연속극 뿐 아니라 한국 노래도 미얀마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권병탁 대표: 티아라의 ‘낮과 밤’, 채연의 ‘한사람’, 이런 노래들이 완전 대박이죠. 전국민이 다 알죠. 자주 흥얼거리며 부릅니다. 젊은 친구들은 한국의 ‘EXO(엑소)’라든지, 저도 모르는 노래를 많이 좋아하죠.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의 한국어 통역을 맡을 정도로 현지어에 능통한 권병탁 대표는 “미얀마 라디오 방송에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한 시간 반 정도를 한국 노래만 틀어주고 가사 내용을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라며 한국 노래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를 설명합니다.

한국 노래의 인기도를 살펴보기 위해 양곤대 근처 번화가인 ‘정션 스퀘어’(Junction Square) 상가에 있는 음반가게를 찾았습니다. 음악과 비디오 알판을 함께 판매하는 이 매장은 한국의 노래, 예능, 연속극 등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류 상품을 찾는 미얀마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기자: 음악은 어떤 게 많이 팔려요?

점원: 엑소가 많이 팔려요.

미얀마 양곤대학 근방 대로변에 ‘한국어 학원' 광고문이 붙어 있다. 미얀마에는 한국으로 건너가 일하기 위해, 또는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 RFA PHOTO/ 박성우
미얀마 양곤대학 근방 대로변에 ‘한국어 학원’ 광고문이 붙어 있다. 미얀마에는 한국으로 건너가 일하기 위해, 또는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 RFA PHOTO/ 박성우

엑소는 2012년부터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10인조 남성 음악 그룹입니다. 점원은 요즘엔 엑소가 출연하는 인터넷 드라마 ‘엑소 넥스트 도어’(우리 옆집에 EXO가 산다)가 담긴 알판이 많이 팔린다고 말합니다. 가격은 1,300짯. 미화로 1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미얀마 청소년들은 한국 노래를 워낙 많이 듣다보니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한 두 곡은 있다고 합니다. ‘정션 스퀘어’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10대 소녀 진마우 양도 마찬가집니다.

‘한국 노래 아는 게 있으면 한 번 해 보라’는 기자의 짓궂은 요청에 진마우 양은 몸을 배배 꼬면서도 한국 가수 ‘티아라’의 ‘우리 사랑했잖아’의 앞부분을 부릅니다.

한국 사람이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한류 열풍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나라, 미얀마. 이제 사람들은 말합니다. 한국과 미얀마가 지난 1975년 5월 16일 수교한 이래 지금처럼 문화적 교류가 많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테인 세인 대통령의 개혁·개방 정책과 맞물리면서 두 나라의 경제적 교류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수교 당시 교역 규모가 미화로 1천만 달러에 불과했던 두 나라는 지난해의 경우 126배 증가한 13억8천만 달러의 교역량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현재 미얀마에 6번째로 큰 해외 투자국이고 7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입니다.

한국과의 경제적 교류가 많아지다 보니 한국어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양곤대학 근방 대로변에는 ‘한국어 학원’ 광고문이 붙어 있는 걸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건너가 일하기 위해, 또는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미얀마 사람이 많다고 현지 교민들은 설명합니다.

수교 40주년을 맞아 한국과 미얀마는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걸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한류가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는 앞으로도 미얀마 정권의 개혁과 개방 정책 속에서 점점 더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성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