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본 북한] ① 보위부 감옥의 참상-무차별 퍼붓는 주먹과 발길질에…

난민 인정을 받아 최근 미국에 온 탈북자 서 모 씨는 중국에서 강제 북송을 두 번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재탈북에 성공해 지금은 미국에서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서 씨는 노예처럼 시키는 것만 하면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야 했던 북한 보위부 감옥에서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자유 아시아방송(RFA)은 서 씨가 목격하고 경험한 북한 감옥에서의 경험을 두 차례에 걸쳐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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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첫 번째 순서로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북한 감옥' 편입니다.

이진서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 씨가 말하는 북한 감옥입니다.

서 씨:

조선의 감옥 살이라는 것이 무슨 말도 못하고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대소변 보는 것도 간수에게 보고를 해야 합니다. 당장 설사가 나와도 간수가 못한다 하면 쌀 수가 없습니다.

서 씨가 처음 탈북했던 때는 1998년 8월입니다. 그 뒤 중국에서 4년반 정도 살다 2002년 7월, 중국 공안에 붙잡혀 1차 강제북송을 당했습니다. 그때는 워낙 탈북자가 많아서 북송되는 사람도 많을 때였습니다. 서 씨는중국 화룡으로 해서 함경북도 무산을 거쳐 청진 집결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혜산 집결소에서 해당 구역 안전부로 가 조사를 받았고, 안전원에게 중국에서 번 돈 4천500원을 뇌물로 주고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어진 탈북과 2004년, 두 번째 강제 북송을 당했을 땐 상황이 처음과는 달랐습니다.

서 씨:

2차는 중국에서 온성 보위부 감옥에서 끌려 갔습니다. 첫 날 특사를 달고 있는 보위부 감옥의 간수가 오늘 들어온 죄수 일어나라고 하더니 ‘넌 어디까지 갔었나’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중국 목단강에서 잡혔다고 하니까 목단강까지 몇리나 되나 하고 되물어서 한 500리 될 겁니다 라고 하니까 눈을 부라리면서 손을 창살 밖으로 내밀라도 했습니다. 1,000리도 넘는데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손을 내밀었더니 간수의 구두에 못같은 게 박혀 있었는데 그가 내 두 손을 짓밟았습니다. 손 가죽이 벗겨져 피가 흘러서 내가 위생지로 닦으니까 다시 내밀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짓밟는 겁니다.

서 씨는 온성 보위부에서 한 달 있다가 강제 노동 단련대인 꼬빠크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혜산 보위부 집결소에서 5개월 동안 조사를 받습니다. 남한 사람을 만났는가, 교회 사람들과 연결이 됐는가 하는 내용의 조사를 매일 받았습니다. 보위부 감옥에선 간수들을 선생님으로 깍듯이 불러야 했고 그들이 만족할만한 답변을 못했을 땐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매질을 당했습니다.

서 씨:

감방 밖에 복도가 있는데 복도에서 장작으로 패는 소릴 들었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처참하게 들렸는지 그사람 마지막에는 신음 소리도 못 냈습니다. 계속 팼습니다. 간수가 아마 때리다 화가 수그러들었는지 그만 두더라고요. 말하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렇게했습니다.

서 씨는 보위부 감옥에서 생긴 상처에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고름이 흐르는 상처 부위를 혀로 핥아 내며 더 이상 덧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야생 동물이 그러듯 생존을 위한 본능만이 꿈틀대고 있는 곳이 북한 보위부 감옥이었습니다. 간수에게 짓밟혔던 손은 곪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지 손톱이 다 흐물거리다 빠져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서 씨는 죽어 나가는 자보다는 나았습니다.

서 씨:

온성 보위부에 있을 때 옆에 죽어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볼 수는 없었지만 옆방에 있어서 아는데 간수가 그저‘몇 번’ 하고 호출을 몇번 하더니 대답이 없으니까 죽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했습니다.

북한 보위부 감옥은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알 필요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궁금한 일이 있어도 안 되고, 무엇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되는 곳입니다. 보위부 감옥에서의 하루 일과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10시에 취침할때까지 수감자들이 하는 것은 ‘교정’입니다. 소위 당해본 사람들이 피가 마른다고 말하는 교정은 한마디로 움직이지 못하게, 오줌도 누기 힘들게 딱 틀 잡고 앉아 있게 하는 고문입니다.

서 씨:

하루 종일 앉아서 옆사람과 말도 못 합니다. 감옥 간수가 왔다갔다 하면서 감시를 하는데 올방좌 틀고 무릎 위에 두 손을 가볍게 올려놓고 머리는 들어야합니다. 머릴 숙여서도 안 됩니다. 그 상태로 낮 시간을 계속 보내야 합니다. 오전, 오후에 30분씩 휴식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이가 많았는데 이잡이 하겠다고 선생들(간수)에게 말하면 간수 마 음대로입니다. 소변을 보겠다고 해도 대체로 보게 하지 않습니다.

딱히 할 일이 없는데도 불어터진 메밀콩이나 통강냉이 한 접시를 먹고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합니다. 전기 사정이 나쁜 북한의 감옥은 바깥 세상보다 더 어둡고 침울합니다. 밤에는 대체로 사람 얼굴을 분간할 정도로 전구불이 켜집니다. 호실 두 개씩 건너 간수가 있는 곳에는 전등이 달려 있어 감옥의 복도를 비춥니다. 수감자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다가 깜빡 정신을 놓고 졸기라도 하면 이번엔 간수 선생님이 아닌 감방 동료의 매질이 시작됩니다.

서 씨:

보위부 간수가 보기에 살살 때리는 것 같으면 보위부 간수가 때린 사람을 다시 때립니다. 그래서 보기에도 험상하게 때려야 가만있지 약하게 때리지 않습니다. 감옥 규정이 그렇습니다. 또 때리는 사람은 그렇게 때리면서 운동을 하니까 대단히 좋아하죠. 미워도 그 사람한데 뭐라고 못합니다. 감옥 한 개 칸에서 반장과 같기 때문에 미운 표현을 못 합니다.

무차별 퍼붓는 주먹과 발길질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수감자의 숨소리가 잦아들면 다시 북한 보위부 감옥에는 쥐죽은 듯 정적이 흐른다고 서 씨는 증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