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개방 23년, 베트남을 가다] ⑥ 초라한 북한식당 – 하노이서 ‘국제 고아’ 북의 현실 체감

하노이하면 떠오르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잠을 깨우는 소리. 바로 건설 현장의 공사 소립니다. 새벽 5시 30분 동이 틀 무릅이면, 뚝닥 뚝닥 웽 웽 시끄러워집니다.
베트남-정아름 junga@rfa.org
2009.08.27
hanoi_street-305.jpg 도이모이 개방으로 대거 유입된 해외 투자는 하노이 거리에서 자주 보는 외국 회사 의 간판들에서 느낄 수 있다. 외국 상점 앞에서 베트남 전통의 모자 ‘논’을 쓴 청소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RFA PHOTO/정아름

미국, 한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대거 유입되고 있는 외국인 투자는 최근 베트남의 건설 경기에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도로가 확충되고, 현대식 고층 건물이 세워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시가지는 베트남 개혁 개방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차소리>

마지막 날. 항상 가보고 싶었던 북한 식당에 평생 처음으로 가는 날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지만 문제가 터지고 맙니다. 기자가 가진 북한 식당에 대한 정보는 단 하나. 이름이 ‘평양 식당’인데, 하노이 내 한인 동네(한인 타운)에 있다는 정도. 그리고 베트남 어로 발음하면 ‘삥양 restaurant(식당)’ 정도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전화 번호, 주소까지 베트남 곳곳을 모두 알아낼 수 있었던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북한 식당에 관한 정보는 나오질 않습니다. 30분째 씨름을 하다 결국 포기한 채, 하노이 체류 기간 내내 훌륭한 영어 수준과 친절함을 보였던 호텔 도우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Yes, Ms. Jung. How can I help you?>


하지만 무슨 문제든 재빨리 해결해주던 호텔도 1시간 동안 감감 무소식. 결국 도저히 못찾겠다며 죄송하다는 전화를 해옵니다. 결국 이곳 저곳 전화를 돌리고 수소문 끝에 2시간 만에 북한 식당을 찾아냅니다. 왜 굳이 북한 식당을 가려고 하느냐는 투의 반응들이 기자의 상기됐던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북한 식당>

어렵게 알아낸 북한 식당을 하노이 시내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찾아 갑니다. 한국을 매우 좋아하는 이 베트남 친구는 왜 불고기 요리가 맛있는 한국 식당이 아닌 북한 식당이냐며 볼멘 소리를 합니다.

인터넷에서 관광객들이 올려놓은 북한 식당에서 종원원들이 공연을 하는 소립니다. 내심 이 공연을 기대했지만, 저녁 7시 40분쯤 도착한 기자에게 하루에 딱 한번 저녁 7시부터 30분동안만 한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북한 식당 종업원: (기자: 공연 이제는 안해요?) 끝났습네다. 7시 부터 한번만 합니다. 낮에는 공연 안한단 말입니다. 왜 저녁에는 시간이 없습니까?

아무리 공연이 끝났다지만 저녁 7시 반밖에 안됐는데 손님이라고는 기자와 친구 외에는 다른 한 일행 뿐입니다. 손님도 많지 않은 썰렁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너무나 앳띤 얼굴의 종원업 아가씨를 보니, 외화 벌이로 고생하는구나 싶어 안쓰런 마음이 듭니다.

북한 식당 종업원: 20살입네다. 저는 평양에서 왔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평양 식당의 음식. (개고기를 뜻하는) 단고기, 평양 랭면, 그리고 해물 지짐.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이것 저것 많이 시켜봅니다. 평양에서 왔다는 이 종원업 아가씨는 음식을 많이 시킨 기자에게 먹는 내내 옆에서 도울 게 없나 서비스를 해줍니다.

북한 식당 종업원: 이게 전골입니다. 단고기... (기자: 매워요?) 맵지 않습니다. (깨가루를) 조금 뿌려서 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맛있습니다.

식당 종업원은 공연 때문에 미안했던지, 다음엔 꼭 저녁 7시에 오라며 공연에서는 베트남 전통 노래도 부르고 평양 노래도 부른다고 자랑합니다. 기자가 남한 노래는 부르지 않냐고 불쑥 묻자 종업원은 다소 상기된 얼굴에 작은 소리로 “아니다.”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차소리>

공연과 아름다운 아가씨로 북적거릴거란 기자의 기대와는 달리, 썰렁한 느낌의 북한 식당을 나오며 “베트남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이제 관심이 없다.” 는 베트남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호치민과 하노이에 북한 식당이 세 개나 있었는데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노이 시내를 안내해줬던 쭝 씹니다.

: 베트남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특별히 느끼는 게 없어요. 경제가 매우 열악하다는 건 알죠. 베트남과는 달라요. 우리는 시장 경제를 받아들였잖아요.

쭝 씨는 은근히 북한과 베트남이 같은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한 베트남은 발빠른 성장을 이룩해 북한과는 다른 사회가 됐다고 자랑합니다. 베트남은 이제 이념보다 경제 발전에 중점을 둔다는 말입니다.

쭝: 베트남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론이나 체제가 아니라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이론과 체제입니다.

쭝 씨가 아닌 다른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 물어봐도 그리 다르지 않은 답변이 돌아옵니다. 마흔이 넘은 호치민 출신 호앙 씨도 베트남 사람들이 핵과 미사일 등으로 ‘국제적 고아’가 된 북한에 대해 ‘친구’ 또는 ‘동맹’ 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잘라 말합니다.

호앙: 북한이 국제적으로 너무 고립돼 있다고 베트남 사람들은 느끼고 있어요.

하노이에서 20년 이상 회사원으로 근무했던 짜오 씨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이 베트남에 너무 강하게 자리잡아, 베트남 사람들이 북한을 더 가깝게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짜오: 베트남 사람들이 북한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가깝게 느낀다고도 절대 말 못하죠. 한국의 영향이 베트남 사회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노래, 음식, 드라마 등을 좋아하고, 경제적으로도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하고 한국 기업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있죠.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북한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베트남이 1986년 이후 도이모이 경제 개혁 개방 정책을 도입한 후 이룬 경제 성장 또한 베트남 인의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한 만큼 공부한 만큼 벌고 생활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이제 공산주의의 선전과 선동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짜오 씨는 말합니다.

짜오: 도이모이 개혁으로 자본주의가 베트남에 들어오기 전에야, 사회주의 아래서 사람들이 시간과 여유가 많았지요. 할당된 일만 하면 되고, 정해진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으니까요. 한가하니까 집에 돌아 오면 사회주의 베트남이 선전하는 공산주의 선전 선동을 라디오, 뉴스와 같은 국영 언론을 통해 듣는 거죠.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 자기 공부, 일 하면서 자기 계발하기에 바쁜데 그런 이데올로기(사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죠.

청운대학교 이윤범 베트남 학과장도 북한과 베트남을 같은 사회주의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묶는 것은 곤란하다고 분석합니다. 베트남인 특유의 실리주의의 영향이라는 설명입니다.

청운대학교 베트남 학과 학장: 베트남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서 두 가지 태도를 보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베트남의 정치인들이 북한을 방문해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정치적인 유대와 경제적인 실리를 분명히 구분하려 합니다.

하노이 북한 식당에 들러 정갈한 평양냉면을 맛보려 한껏 부풀었던 기대는,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평양식당의 밋밋한 냉면 맛에 이내 사그러들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속의 북한은 초라했던 식당처럼 너무나 작아 보입니다.

베트남에서 RFA 자유아시아 방송 정아름 입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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