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가발산업, 북한경제 발전 쏘시개 될까?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4.12.27
[경제와 우리 생활] 가발산업, 북한경제 발전 쏘시개 될까? 중국에서 판매하는 가발
/연합뉴스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간프 로그램 경제와 우리 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입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주목받는 가발산업에 대해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알아보겠습니다.

 

기자:안녕하세요?

정은이 연구위원: 네 안녕하세요.

 

기자: 북중 무역통계에서 보면 북한에서 가발 수출 임가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가발산업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최근들어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꽤 높습니다. 이미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이는 각 가정과 전국 단위로 확산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북한의 가계와 국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산업이 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복장 수출 임가공업이 대북제재로 인해서 어려워지면서 2017년 이후로 더욱더 가발 수출 임가공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기자: 그런데 이 가발 산업은 의류 수출 임가공업에 비해 어떤 장점들이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가발과 같은 경우는 노동 고용의 효과가 더 큰 거 같아요. 왜냐하면 의류 임가공은 공장에서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가발은 집에서도 가공이 가능하잖아요. 간혹 동남아 등의 국가들을 다큐멘터리 등에서 보면 가발 생산을 집에서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간 일을 할 수 없었던 집에서 노는 노인 등 유휴 노동력에게 중요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가져왔지요. 물론 워낙 인건비가 북한의 경우 싸다 보니 가계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되겠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집에서 노인을 포함해서 2~3명만 일을 해도 하루 식량이나 반찬 정도 사먹을 돈은 벌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북한에서는 어려운 가정의 입장에서는 생계에 많은 도움이 되지요. ,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인력들이 고용되는 효과지요.

 

기자: 북한에서 가발산업 규모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기존에 집에서만 가발들을 가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에서 설비와 원자재들을 들여와 북한의 가공업자들이 아예 북한 내에 공장을 차리는 경우가 생겨났다고 해요. 즉 일정 공간과 설비를 갖추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본격적으로 가발만을 가공하는 것이지요

 

기자: 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한인들의 손재간이 상당히 좋아서 수공으로 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상당히 발달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용, 바느질, 재봉질 등에선 인기가 높은데요. 중국에서도 가발이 잘 팔린다고 하니까, 북한 업체들도 가발산업 규모를 늘리면서 그렇게 되면 북한 내부에서는 가족, 친척들에게 일을 나눠주거든요. 그리고 완성되면 그것을 모아서 중국에 수출하고, 그래서 가발 수출 규모가 늘어나고 다시 중국으로부터 설비들을 들여다가 공장을 차리고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에서 가발 산업 규모가 커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정은이 연구위원: . 기자님 그런데 이거 알고 계시나요? 대한민국도 한때 이 가발 수출 임가공업이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이요.

 

기자: 한국에서도 한때 가발산업이 주요 산업이 되었다는 기사를 북한에서도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북한에서도 보셨어요?(웃음) 1960년대, 70년대 대한민국은 노동력도 싸고 인모 자원도 풍부했지요. 북한 주민들 인터뷰를 해보면 머리카락을 팔았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하십니다. 그래서 쌀을 사거나 어디 가는데 교통비를 마련하는 등 삶에 요긴하게 썼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남한도 한때 여성 같은 경우, 머리를 기르고 머리카락을 팔아서 생계에 어머니나 누나들이 보탰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드라마나 영화에도 보면 이런 슬픈 장면들이 등장을 했구요. 그래서 가발생산이 활성화되고 특히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가발 공장이 밀집하며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지요. 70년대에는 가발 수출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무려 1억 달러를 수출하여 한국 경제성장에 기여를 했지요.

 

기자: , 가발만 팔아서 1억 달러를 달성했다는 것은 굉장히 큰 규모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저는 북한에 있을 때 1990년대 북한 이발소에서도 여성의 머리칼 뿐 아니라 남자들의 짧은 머리칼도 중국으로 수출했는데, 그 머리칼이 어디에 씌었을까하고 궁금해 했는데, 그런데 아마 가발에 많이 이용되었을거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구로공단에 아직도 가발 설비들이 그대로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구로공단은 한국 경제 발전의 상징이자, 동시에 노동운동의 현장, 그리고 변화하는 산업 구조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한국 산업화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지요. 1960년대에는 한국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주로 구로공단 에는 섬유, 의류, 전자 등 경공업 중심의 산업단지 있지요. 1970년대에는 한국 수출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구로 공단으로 몰려들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주변 지역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이 되었지요. 뿐만아니라 가발 산업은 패션 산업에 기여한 측면도 있습니다. 혹시 기자님, 한국산 가발이 과거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기자: 네 알고 있습니다. 뉴욕에 있는 한국 사업가가 가발장사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한국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여 가발사업을 시작하고 유통망을 구축하며 미국 가발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현재 미국 가발 산업에서 한인들의 역할이 한때 압도적으로 높았구요. 가발산업은 많은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한인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기도 했지요.

 

기자: 한인들이 당시 미국에서 가발 산업에서 특별히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들이 있었나요?

 

정은이 연구위원: 우선 한국산 가발은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품질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큰 매력을 제공했구요. 무엇보다 한인 이민자들의 끈기와 노력, 열정이 미국 가발 시장에서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한인 사회의 끈끈한 유대감과 네트워킹은 사업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지요. 다만, 80년대 이후 저임금 국가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가발산업은 쇠퇴기를 맞이하였지요. 그리고 소비자들의 니즈 변화와 더불어 기술에 대한 적응이 필요했기 때문에 80년대에는 한국에서 쇠퇴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기자: 네 그렇군요. 일각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만든 가발이 미국 시장에 많이 들어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왜냐면 미국과 중국은 자유무역체제에서 거래하기 때문에 중국의 수출품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바꿔말하면 북한에서 수출된 가발이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올 수 있다는 말로도 되거든요.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 나누고 다음시간에 또다른 새로운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수고 하셨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고맙습니다.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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