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혁명소조운동과 기술혁명(3) - 전국3대혁명소조로봇전시회

김주원∙ 탈북자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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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3월 중국과학원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전시장에 있는 인공지능(AI)로봇 '지아지아'(왼쪽사진)를 바라보는 모습.
사진은 지난 3월 중국과학원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전시장에 있는 인공지능(AI)로봇 '지아지아'(왼쪽사진)를 바라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동포 여러분! 지구상에 존재하던 구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볼 수 없었던 수령 후계세습은 김정일에 의해 1960년대 말 당시 부수상이었던 박금철 등 국내파숙청을 시작으로 점차 자리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정일은 여기에 박차를 가해 지방당과 북한 전체 주민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3대혁명소조운동을 고안해냈습니다.

3대혁명소조는 철두철미 김정일의 후계세습을 위한 돌격대였고 공개적인 현대판 암행어사였습니다. 김정일은 자기 자신을 ‘당중앙’이라고 부르도록 하였고 중앙당과 중앙기관은 물론 지방당조직도 자기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였습니다. 1973년 2월에 3대혁명소조운동이 시작되고 다음해인 1974년에는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 김정일에 의해 발표되었습니다.

김정일의 후계세습을 위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10대원칙과 3대혁명소조원들에 의한 사상개조, 사상투쟁은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오면서 김정일의 후계자로서의 입지는 확고히 다져졌습니다. 결국 1980년대 중반이후로는 사상혁명과 함께 기술혁명이 3대혁명소조운동에서 주도적인 활동방향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사상혁명을 내세워 ‘당중앙’이라는 명칭으로 자신을 절대적인 권좌에 올려놓았던 김정일은 기술혁명을 통해 경제발전에 관심이 있는 지도자임을 부각시키려 하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전국 각지에 파견된 2~30대의 청년대학생 3대혁명소조원들이 노동당에 입당하려면 새기술 도입과 발명, 생산공정의 기계화 등 기술혁명수행에서 성과를 내야 했습니다.

1988년 김정일은 이런 3대혁명소조원들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목적으로 전국3대혁명소조로봇전시회를 열데 대한 지시를 중앙당 3대혁명소조사업부에 하달하였습니다. 중앙당 3대혁명소조사업부 부장이었던 장성택은 김정일의 지시를 관철하기 위하여 도·시·군 3대혁명소조사업부에 로봇을 제작한 소조원들을 우선적으로 노동당에 입당시킬데 대한 지시를 내려보냈습니다.

전국3대혁명소조로봇전시회는 김정일의 생일 48돌이 되는 1990년 2월 16일을 맞으며 진행된다는 구체적인 지시가 하달되었습니다. 2년이라는 기간에 로봇을 제작하여 전시회에 내놓아야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는 기회가 차례지게 된 셈이었습니다. 자강도 희천공작기계공장, 검덕광산연합기업소, 원산조선소, 2.8비날론연합기업소를 비롯한 특급기업소로부터 농촌 협동농장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이 로봇전시회에 내놓을 로봇제작에 달라붙었습니다.

로봇의 기계조작부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피스톤제작의 정밀도 보장이 로봇제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피스톤은 공기압이나 유압으로 보장하여야 하는데 제작의 정밀도가 낮으면 공기나 기름이 새기 때문에 로봇이 제대로 된 작업동작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높은 정밀도 보장은 군수품공장들이나 평양과 지방의 특급 기계공장들에서 가능하였습니다. 그리고 기계부품들도 불수강소재를 사용하여야 하였는데 이것도 군수품관련 물자공급기관이나 군수공장들에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1987년에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하고 강원도 김화군 수태협동농장에 3대혁명소조로 파견되었던 저도 로봇을 만들지 않으면 입당을 할 수 없었습니다. 생물학전문가에서 기계기술자로 변신해야 하는 어려운 일에 부닥치게 된 셈입니다.

당시 강원도 김화군당 3대혁명소조사업부장이었던 박무길은 월사업총화에서 입당폰트는 로봇을 제작하는 소조원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3대혁명소조 월사업총화는 군안에 파견되어 나온 모든 3대혁명소조원들이 매달마다 군당회의실에 모여서 지난 달 사업총화를 짓고 다음 달 사업계획을 토의하는 회의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될 수 있는 것을 입당을 하려고 3대혁명소조를 고집했던 저로서는 로봇제작이 선택사항이 아닌, 아무리 힘들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과제로 되었습니다.

김책공업대학 선박학부를 졸업하였던 외삼촌에게 부탁하여 소개편지를 가지고 평양시 선교구역에 있는 동평양기계공장 주상량 기사장을 찾아갔습니다. 동평양기계공장은 일제시기에 평양기계제작소라고 불리던 평양에서도 유명한 기계제작공장이었는데 해방 후 북한당국이 개건확장공사를 거쳐 이름을 동평양기계공장이라고 개칭한 공장입니다. 외삼촌과 대학동창인 주상량 기사장은 나를 데리고 인민대학습당에 가서 외국기계기술자료들에서 러시아에서 만든 공기압축식 자유도가 4인 로봇을 추천하면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을 약속해주었습니다. 주상량 기사장은 40여 건의 발명을 하여 전국과학자대회에서 김일성에게 꽃다발을 주기도 하였던 1호접견자입니다. 동평양기계공장에는 구소련과 체스코슬로벤스코(체스코슬로바키아), 독일 등에서 수입한 대형정밀선반들과 볼반들이 수십대가 있었고 노동자들의 기술수준도 대단히 높았습니다.

주상량 기사장은 저에게 로봇제작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노동자들이 노동행정시간(근무시간)외에 추가로 일하도록 하면 되는데 필요한 소재들은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로봇에 드는 불수강 소재들은 군수품공장들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자강도 강계시가 고향인 대학 학급동창의 도움으로 돈을 주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소재가공을 위해 노동자들에게는 술과 고급담배를 제공하기로 약속하였고 북중국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에서 중국산 여과담배(필터가 달린 담배)를, 술은 김화군 식료공장에서 사서 보장하였습니다.

당시 강원도 김화군 식료공장 술작업반에서는 주정이 25도인 구기자술과 진달래술이 생산되었습니다. 로봇을 제작하면서 노동자들에게 500여 병의 술을 제공하여 다 만들어진 로봇을 ‘술로봇’이라고 하여 웃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기계조작부분은 동평양기계공장에서 제작되었고 자동조종장치부분은 김일성고등물리전문학교(북한 유일의 물리학전문대학) 출신인 고향동창친구의 도움으로 제작하였습니다.

1989년 10월에 전국3대혁명소조로봇전시회 일정이 공개되었습니다. 장소는 평양체육관이고 1989년 12월까지 제작이 완료된 로봇에 한해서만 출품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이 전시회에 직접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제작된 로봇을 전시회가 열리는 평양체육관에서 4km정도 떨어져 있는 서평양기관차대 공무직장에서 최종조립과 시험운전을 하였습니다.

1990년 1월초부터 전시회에 출품될 모든 로봇들이 평양체육관에 집합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2천여 대의 로봇이 체육관의 기본 홀과 내부 복도에 분야별, 수준별로 나뉘어 전시되었습니다. 김정일이 직접 전시회에 나온다고 하여 50여 명의 로봇에 대한 설명을 담당할 해설사를 모집하였는데 저도 강원도에서 출품한 로봇에 대한 설명을 김정일 앞에서 하는 해설사로 선정되어 거의 2주 동안을 열심히 연습하였습니다.

해설은 한 사람이 20여 대의 로봇에 대해 설명하도록 되어 있었고 해설방식은 실례를 든다면, “이 로봇은 강원도 통천군 수산사업소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이 기술자들과 합심하여 만든 배선체 녹털기 로봇입니다. 자유도가 4인 이 로봇은 유압전동식으로 작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지난시기에는 사람이 선체벽에 붙어서 수동적으로 벗기던 녹을 이 로봇으로 대신하는데 작업능률은 30명의 노동자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3개의 문장으로 요약해서 해설하도록 하였습니다.

갑자기 김정일은 전시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가보위부에서 전시된 로봇의 시험 운전이 돌발적인 사고로 김정일의 신변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비록 1호접견이라는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로봇을 제작하였다는 것으로 26살에 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김정은은 김정일이 3대혁명소조원들을 통해 기술혁명을 추진하려 했던 것을 그대로 흉내 내어 전국3대혁명소조기술혁신전시회를 해마다 개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전시회에 대해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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