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창단된 은하수관현악단

김주원· 탈북자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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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평양 인민극장에서 열린 은하수 관현악단 개관 공연.
지난 2012년 평양 인민극장에서 열린 은하수 관현악단 개관 공연.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에서 김일성은 ‘태양’, 김정일은 ‘백두광명성’로 지칭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김일성이 태양빛을 뿌리면 그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별을 의미하는 광명성이 김정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에 들어서면서 ‘김대장’으로 등장한 김정은을 은하수에 빗대기 시작하였고 같은 해에 은하수관현악단이 생겨났습니다. 오늘은 김정은 후계자 등장과 함께 창단되었던 은하수관현악단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2008년 9월 9일 공화국창건(북한정권 수립일) 60돌 기념행사에 김정일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참가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병으로 쓰러진 사실이 비밀로 붙여졌지만 외국소식통들에서는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의사인 프랑수아 자비에 루 박사가 2008년 8월에 북한당국의 초청으로 평양에 가서 김정일을 치료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정일 와병설은 사실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프랑수아 자비에 루 박사의 치료로 보름 만에 의식은 회복되었지만 뇌졸중 이후 재발과 사망가능성은 김정일이라고 피할 수 없었습니다. 루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의식을 회복한 김정일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 매우 걱정하였고 얼마 후부터는 김정은을 병상으로 불러 뭔가 얘기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고 합니다.

2009년 1월 23일 북한을 방문한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일과 만나는 장면이 언론이 공개되었고 김정은을 군대 내에서는 김대장으로 부르며 후계자라는 암시가 노골화되었고 같은 1월에 은하수관현악단도 새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1월 26일 설명절 경축음악회에 공훈국가합창단, 국립교향악단, 만수대예술단과 함께 은하수관현악단이 처음으로 등장하여 합동공연에 참가하면서 은하수관현악단은 처음으로 알려졌던 것입니다.

노동신문 기사에는 “은하수관현악단에 대해 ‘우리나라의 민족음악에 현대적 화성과 리듬, 빠른 속도를 조화롭게 배합하여 새 세기 인간들의 요구와 취미에 맞는 이상적인 음악’을 창조해내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북한주민들의 현대적인 지향과 발전추세에 완전히 부합되면서도 주체적인 문화적 기초, 자기의 민족적 바탕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다른 관현악단에서 현악부에 여성들이 많았던 것과는 달리 남성들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은하수관현악단 단장으로는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장조일, 지휘자들로는 인민예술가 윤범주, 공훈예술가 리명일, 김충일, 전민철 등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바이올린 연주가들로는 인민배우 문경진, 공훈배우 김수명, 정선영, 백현희, 배은주, 김송희, 최성일, 김문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악기구성을 보면 바이올린, 첼로, 소해금, 가야금, 하프, 피아노, 기타, 플루트, 클라리넷, 색스폰, 트럼펫, 새납, 호른 등입니다. 은하수관현악단 연주가들의 국제콩쿠르수상자들이 15명이었는데 그들의 나이가 모두 20대여서 청춘악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는 해외에서 유학을 한 배우들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잘 알려진 리승기 박사의 손자인 은하수관현악단 지휘자 리명일은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오지리(오스트리아) 윈음악예술종합대학에서 유학을 하였고, 바이올린 연주가 문경진은 러시아 차이코프스키명칭 모스크바국립음악대학을, 성악배우 황은미는 이딸리아(이태리) 로마 산타체칠리아음악대학을 나왔습니다. 북한당국은 “성악배우 황은미는 2006년에 이딸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성악콩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며 그해 5월 21일 노동신문에 ‘제13차 쥬세뻬 디 스떼파노 국제성악콩쿠르에서 황은미 학생이 거둔 성과는 우리나라에서 주체예술의 후배들이 믿음직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으로서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높은 령마루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 나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는 내용으로 그의 성과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은하수관현악단의 배우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조기 예술수재양성 전문학교인 금성제1중학교와 예술전문학교를 거쳐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등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경력이 있는 젊은 연주자들입니다. 호른 연주가인 김영범, 클라리넷 연주가 전영수, 플루트 연주가 리정희, 소해금 연주가 남은하, 가야금 연주가 조옥주 등 이 악단 소속의 연주가들은 2.16예술상 개인 경연 1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이름난 배우들이었습니다.

은하수관현악단의 여성 기악4중주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가들인 정선영, 백현희, 배은주, 김송희 연주가들로 구성된 현악4중주입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이전에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날라리 황색바람을 조장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악기라며 비판하던 색소폰을 은하수관현악단에서 남성 색소폰6중주로 무대에 등장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색소폰6중주의 연주가들인 리철훈, 송용국, 김형일, 황승철, 리웅, 김성국이 연주한 곡 중에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와 ‘김치깍뚜기노래’는 북한주민들에게 인기있는 종목이었습니다.

은하수관현악단 성악은 여성독창과 남성독창, 여성 6중창 등입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2009년 1월 창단 이후에 1월 25일에는 설명절 경축음악회를, 9월 8일에는 러시아 21세기관현악단과 합동공연을, 10월 14일에는 당창건 64돌 경축음악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창단 다음해인 2010년에는 1월 1일에 신년경축음악회를, 2월 16일에는 설명절 음악회를, 4월 15일에는 태양절 음악회를, 9월 10일에는 공화국창건 62돌 은하수음악회를 진행하였습니다.

2010년 10월에 진행된 노동당 창건 64돌 경축음악회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은 1달 동안에 무려 40여 차례 공연을 진행하였는데 김정일은 후계자로 선포된 김정은을 대동하여 참석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김정은은 후계자로 추대된 이후에 김정일과 함께 자주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당시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는 이 은하수관현악단에서 성악배우로 활동하였습니다.

김정일이 본처인 김영숙과 살면서 주체음악을 위한 현지지도를 한다며 만수대예술단에 자주 나가다보니 당시 무용배우였던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를 만나게 되어 동거를 하는 과정에 서자인 김정은을 보게 된 것이나 김정은이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자주 보면서 리설주를 알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나 이것은 미모가 유다른 배우들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가족 내력, 한 마디로 유전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1년 2월 신년경축음악회에 김정일은 북한주재 중국대사관 외교관들을 초청하여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을 보여주었는데 당시 리설주는 노래 ‘병사의 발자국’을 불렀습니다. 평범한 배우였던 리설주가 갑자기 김정은의 눈에 들어 부인이 되자 배우들 속에서 뒷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2013년 7월 27일 전승절(휴전협정체결일) 공연을 끝으로 은하수관현악단은 더 이상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013년 6월에 은하수관현악단 배우들의 불법녹화물 영상이 노출되어 김정은이 은하수관현악단의 녹화물을 회수처리하여 사회에 나돌지 못하도록 할 데 대한 지시를 내렸고 109연합지휘부가 조사에 나섰습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언론들에 공개되던 2009년 1월에 창단되었던 은하수관현악단은 5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을 끝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은하수관현악단의 존재로 리설주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음악정치, 주체음악 아래 김씨일가의 이성적인 행위는 세대에 세대를 이어오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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