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북한 사람들이 기뻐서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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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에 접한 광복지구상업중심(대형마트) 근로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에 접한 광복지구상업중심(대형마트) 근로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청취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일단 다들 놀라셨을 것이고 다음엔 참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했을 듯합니다. 문성휘 씨, 김태산 씨처럼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은 더 합니다.

“젊은 사람들부터 아주머니들까지 다 모여서 술 한 잔 했는데 초기엔 흥분돼서 축하주도 들고 했는데 근데 나중에 그런 말이 나왔어요. 사람의 생이란 참 허무하다...“

내 가족과 친지를 두고 고향을 떠나게 만든 김정일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이제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안도감과 기쁨. 마지막에 허망함까지...

37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북한을 통치한 김정일 위원장,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에서 그의 죽음을 얘기해봅니다.

진행자 : 19일 정오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어디서 들으셨어요?

김태산 : 저는 뭐 거의 오후 3시나 돼서 알았어요. 몸이 안 좋아서 오전에 목욕탕을 갔댔는데 전화기도 집에 놓고 가고 점심시간이 넘어서 집에 왔어요. 와보니까 평소엔 두 세통이나 들어오던 전화인데 수 십 통이 들어와 있는 거예요. 보니까 제일 급한 게 우리 집사람한테 온 전화예요. 이 사람, 나랑 한 달을 떨어져있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물어보는 성격이 아닌데 부인이 몇 번이나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자기가 속이 너무 떨려서 전화했다는 거예요. 놀라서 무슨 사고 났냐 물으니까 김정일이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사람이 다 죽는 거지, 잘 됐구나... 그러고 말았는데 아마 북쪽에 계시는 청취자분들은 이 말을 들으면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우리로써는 원한이 있다면 있지 않습니까?

진행자 : 잘 됐구나...하고 마셨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소식 들으셨을 때 그래도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을 것 같은데요.

김태산 : 인터넷을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기쁘다, 탈북자들은 기쁘겠다, 이런 얘기를 올린 사람도 있던데 물론, 백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은 들어요. 사람 죽을 걸, 아무리 적장이라도 이렇게 표현하면 도덕적으로 안 되겠지만... 근데 동시에 한쪽에서는 좀 슬프더라고요. 문 선생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야... 70 살도 못 살 것을, 그 동안에 북한 주민을 좀 잘 살게 해주고 자유를 주고 사람 좀 잡아 죽이지 않았으면 내가 왜, 이 땅에서 이렇게 타향살이를 하고 있겠는가 생각하니까 서글퍼지더라고요.

진행자 : 문 선생은 소식, 어디서 들으셨어요?

문성휘 : 어제 인터넷에서 12시부터 북한 티비에서 특별방송을 한다고 굉장히 많이 나오지 않았어요? 중대 방송은 그동안 여러 번 있었지만 특별방송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처음이라고 해서 좀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딱 시작했는데 이춘희 방송원이 상복을 입고 앉았더라고요. 딱 직감이 들더라고요.

진행자 : 그래도 놀라셨죠?

문성휘 : 그렇죠. 그리고 굉장히 씁쓸하더라고요.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자기를 돌아볼 시간도 있고 뭔가 고쳐갈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김정일 위원장... 이 사람은 과연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있었나? 무언가 국가를 책임진 수장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고 바꿔보려고 시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 돌이켜 보니까 그런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앞으로 10년 정도 더 살았다면 그런 기회가 있을까요? 없었을 것 같아요...

김태산 : 확고합니다. 변화는 없었을 겁니다.

진행자 : 참, 사람이 죽으면 슬퍼야하는데요.

김태산 : 인생을 잘 못 산 사람이죠. 사람들한테 죽어서도 욕먹지 않습니까. 지금도 김정일의 일가친척이나 간부 몇몇이나 그렇지 아마 대부분의 인민들은 겉으로는 울지만 속 내막은 어떨지 모르는 것이죠. 아마 진정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1%도 될 것 같지 않아요.

문성휘 : 슬프기 보다는 정말 안 된 일이죠. 어제 사망 소식이 나갔는데 재밌는 건 남한 사람들이 먼저 알았고 남한 사람들보다 중국, 일본 사람들이 먼저 알았고 제일 마지막에 안 것이 북한 주민들입니다. 저도 12시 넘어서 북한 주민과 통화를 한다는 탈북 브로커가 있어서 그쪽과 통화를 했는데 12시 15분 정도 전화를 해서 방송 봤냐고 물었더니 전기가 오지 않아 못 봤데요. 그래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사망했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굉장히 많이 알려줬어요. 한국 조선일보에 북한 주민과 19일날 통화한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어요? 오후 2시에 통화를 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김태산 : 아니, 그때까지도 몰랐데요?

문성휘 : 네, 전기가 안 와서 방송을 못 봤답니다.

김태산 : 하긴 전기가 안 오면 어쩔 수 없지...

문성휘 : 그리고 중앙 티비는 12시에 특별 방송을 했는데 중앙 방송(조선중앙방송 ; 라디오 방송)으로는 1시에 내보냈데요.

김태산 : 아, 김정일 살았으면 모가지 몇 개 날라 갔겠네...

진행자 : 3방송도 전기가 들어와야 나왔을 테니까 진짜 늦게 아셨겠네요.

문성휘 : 북한 주민들과 통화를 해봤더니 상황은 이랬답니다. 대개 9시까지 장마당이 문을 여는데 사람들은 10시까지 나오잖아요? 그래, 사람이 모였는데 특별방송이 있다니까 소문이 돌았데요. 사람들이 긴장하면서 혹시 전쟁 나는 것 아닌가 했고 10시 조금 지나서 어제 인민위원장과 도당비서가 평양에 급히 올라갔다는 소문이 도니까 다들 직감을 했데요. 이런 소문 때문에 보안원들이 펄펄 날고 했는데 12시 쯤 보안원들이 나와서 알려주더랍니다. 장군님이 서거하셨다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장마당에서 다 조용히 빠져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김태산 : 그렇지, 지난 기한에도 장사 못하게 했잖아요.

문성휘 : 그리고 본격적인 애도는 2시 30분부터 4시 사이에 있었는데, 전쟁 노병들, 사회주의 공로자 협회 같은 사람들 모아놓으니까 통곡 소리가 제법 커졌데요. 그러니까 뒤에 온 사람들이 눈물 나더라 하더라고요. 근데 양강도 같은 데는 날씨가 추우니까 그저 그 분위기가 오래 못 갔답니다.

김태산 : 김일성 주석 사망했을 때, 그 해는 왜 그렇게 또 덥고 비도 많이 왔는지... 더워서 혼났어요, 정말.

진행자 : 더운 것도 그렇지만 추운 것도 고생이잖습니까?

김태산 : 그러게요. 너무 추울 때 사망해서 북쪽 사람들 하루 이틀도 아니도 10일장 한다는데 고생, 고생하게 생겼어요. 먹을 게 있길 하나 신발이 두꺼운 것이 있나... 행사 따라다녀야지 동상 경비, 그림판 경비 서야지...

진행자 : 그때는 쪄 죽었는데 이번에 얼어 죽게 생겼네요.

김태산 : 그러니까요. 추울 때 술이라도 좀 마시면 몸이라도 좀 덥히겠는데 술도 못 마시게 할 텐데 참 이래저래 두 분이 다 저 세상 가서도 인민들 고생 시킵니다.

문성휘 : 김 주석 사망 때도 그랬는데 한국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잖습니까? 집단 광기... 지나친 표현인지는 몰라도 그 말이 맞는다고 봐야 해요. 저는 기억도 생생한데요. 김 주석 이 사망했을 당시 저는 대학교 졸업반이었어요. 낮 12시에 다들 모이래요. 다 줄을 서서 나갔는데 우리는 그때, 전쟁 나는 줄 알았어요.

진행자 : 북한은 모이라고 소집하면 다 전쟁 났다고 걱정하시는 군요.

문성휘 :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위대한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러는 거예요. 사실 당시와 이번에 김 위원장 사망은 좀 달랐어요. 이번엔 12시 방송 시작하면서 바로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때는 이런 구호가 나오고 김일성 장군 노래가 나오고 부고가 나왔거든요. 그 소리를 듣고 학장, 초급당 비서가 까무러지는 흉내를 내더라고요. 근데 이때 북한 사람들이 슬퍼서 울었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요. 당시에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직발생(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바로 진학한 학생)들은 막 떠들고 웃고 그랬어요. 근데 다 같이 동상에 내려가니까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옆에서 다들 우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장례식 장에 가서도 가족이 울면 눈시울이 붉어지잖아요? 그런 이치인 것이죠.

김태산 : 분위기에 따라 가는 거지요. 우리도 당시에 사무실에 있는데 12시에 중대 발표가 있으니까 어디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죠. 만수대 동상 가니까 정말 발디딜 틈도 없더라고요. 저녁에는 집에 와서 어쩔까 하다가 가족들 데리고 또 갔어요. 솔직히 진심으로 말하면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물어봐도 그래, 가족들끼리 갔다 왔다는 게 필요하겠더라고요. 근데 저만해도 50년을 그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남한 사람들같이 우상화가 없이 산 것이 아니라 우상화 교육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진짜 주인이 돌아간 것처럼 그렇게 느낀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 되요...

세계적인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이후 눈물을 흘리는 북한 주민들을 담은 2분이 조금 넘는 짧은 동영상이 올랐습니다. 영상에는 직장 앞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통곡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20일 현재 조회수 190만건, 약 190만 명이 이 동영상을 봤다는 얘깁니다. 동영상에 대한 짧은 소감도 남길 수 있는데 3만개의 글이 달렸습니다.

대부분 놀랍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라고 얘기합니다. 대단하다는 경외 섞인 감탄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반응입니다. 그 중에서 “나는 한 번도 북한 사람들이 기뻐서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는 댓글이 눈이 뜨입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다음 주에도 이 얘기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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