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치범 수용소에 오빠 구출해 주세요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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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구금시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꼭 살아서 나갈 것이다’라는 의지와 희망을 담을 글을 벽에 새겨 넣은 그림 앞에 이한별 씨가 서 있다.
북한구금시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꼭 살아서 나갈 것이다’라는 의지와 희망을 담을 글을 벽에 새겨 넣은 그림 앞에 이한별 씨가 서 있다.
사진제공: 이한별 씨

한국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수감자들의 석방 운동을 펼치는 북한인권증진센터 이한별 소장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방한을 계기로 남북인권대화를 개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소장은 자신의 오빠도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며 수감자 가족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인권증진센터 이한별 소장과 오빠를 그리는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먼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오빠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 제가 하는 이 말이 오빠에게 꼭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빠, 그동안 정말 오빠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그 동안, 하루도 마음 편히 살았던 적이 없고, 오빠를 위해서 정말 간절히 기도하면서 정치범 수용소 해체 촉구를 위해서 이렇게 운동하고 있고 국제사회에 알리고,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데 꼭 건강하게 살아서 오빠가 석방되기를, 오빠와 같이 갇혀 있는 정치범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내가 더욱더 노력할 테니까 꼭 살아서 우리 다시 만나자………

지난달 26일 내 오빠를 살려주세요. 주제로 북한정치범수용소 해체촉구 기자회견 하셨는데요.

: 정치범수용소해체촉구에 대한 취지를 말씀드리고 나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현황과 실태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리고 저의 오빠 이세일이 강제북송 되었고, 강제북송 된 후 강제 실종에 관한 유엔 청원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한이 ‘북한을 정치적으로 음해할 목적으로 묻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답변할 수 없다’고 거절 의사를 보내왔습니다. 그 후에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자 회견을 하게 됐습니다.

오빠 이세일 씨의 사진으로 만든 작품으로 북한의 답변 내용이 담긴 서류를 콜라주로 만들었다.
오빠 이세일 씨의 사진으로 만든 작품으로 북한의 답변 내용이 담긴 서류를 콜라주로 만들었다. 사진제공: 이한별
북한정치범수용소 해체 촉구 기자회견 하신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까?

: 지금도 북한땅에서는 정치범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특별히 남한사람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정치범으로 끌려가고, 정치범으로 끌려가면 정말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등 가족들에게 정치범의 생사나 신변 안전에 대해서 전혀 알려주지 않고 있고 또 가족면회도 일절 할 수 없는 그런 끔직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북한의 끔직한 인권실태가 하루 속히 중지되기를 바라며, 이번 기자회견에서 특별히 문재인 대통령께도 올해 들어서 남북정상회담이 3차례나 진행되었었는데 사실 남북교류와 발전에 관한 문제들에는 몰두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인권문제가 도외시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좀 더 북한에 갇혀 있는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또 북한 내 갇혀 있는 우리 자국민들에 대한 석방과 북한인권대화를 해 주실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습니다.

오빠가 지금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수감됐는지

: 저희 오빠가 2009년 1월 18일 사실 가족의 도움을 받으려고 압록강을 넘었다가 당일 중국에 있는 한 민가로 들어가서 전화를 빌려서 친척들에게 전화하다가 그 민가에서 공안에 신고하게 되면서 중국에 있는 변방 군인들이 와서 저희 오빠를 체포했고, 오빠가 체포된 후에,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면 남한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기 때문에 끌려가면 죽임을 당한다고 북송시키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 군인들이 그런 오빠의 하소연까지 진술서를 작성해서 북한에 보냈고, 그 당시가 2009년 1월에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군 보위부를 다 장악할 시기여서 냠한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북한의 평양에 있는 보위사령부에서 내려와서 오빠를 취조했고, 그리고 정치범으로 분류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국가가 강제 이혼을 시키고 정치범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이후 저희는 오빠의 생사를 전혀 모르고 있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유엔에 2017년 7월 20일에 오빠의 생사확인을 청원했지만, 2018년 8월에 유엔으로부터 북한이 거절하는 답변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오빠를 생각하면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주제로 한 그림도 그려 자카르 대회 동안 전시하신다고요.

: 사실 오빠를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됐는데 저의 오빠뿐만 아니라 아직도 많은 북한사람들이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하게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분들이 많기 때문에 오빠 사연의 그림을 통해서 하루속히 정치범 수용소가 해체되기를 바라고, 정치범들이 속히 석방되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또한 유엔 통해 북한이 보내온 문서로 작품 만들었어요. 북한에서는 정치범이면 그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잡혀가기 전까지 그 사람의 일생의 사진을 다 압수해 갑니다. 그래서 저희에게는 오빠의 사진이 한 장도 없었는데 저희가 어렵게 친척들 도움으로, 오빠 사진 한 장을 얻게 되었는데 그 사진과 함께 콜라주(사진의 기법)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빠가 감옥에 갇혀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해체와 수감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남북인권대화를 개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 지금 인터뷰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북한의 구금 시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박해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22살의 젊은 대학생이었던 오토 웜비오도 북한에서 고문당해 혼수상태로 돌아와 사망했던 것처럼 북한 내 동포들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당하며 오늘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 북한인권대화가 남북정상회담이 있을 시에 반드시 다뤄줘야 하는, 시급하게 다뤄줘야 하는 인권문제라고 생각하고…

세계인권선언 70 주년을 맞아서 탈북 인의 한 사람으로 한마디 해 주세요.

: 올해로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한 지 70주년이 됐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반 인도범죄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반 인도범죄로 규정하였습니다. 또 세계종교자유보고서에서 무려 10년 동안 종교박해 지수가 1위인 나라가 바로 북한이라고 발표했는데요. 북한의 그만큼 전 사회를 51개 계층으로 분류하고 인민을 감시하며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된 지 70주년이 되는 이때에 저희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가 반드시 해체되기를 촉구하는 마음에서요.

북한에서 나서 어린 시절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거기서 느낀 거 하고 지금의 북한의 실정하고 또 남한에 오셔서 학교 다니시면서 어떤 변화를 보셨는지

: 사실 저도 북한에서는 인권이라는 말도 모르고 살다가 대한민국에 와서야 인권이 무엇인지 또 인간다운 삶의 대해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고 대한민국에 와서 지금까지 제가 북한에서 살았던 실상들을 더욱더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살 때는 그것이 저희가 거주 이전의 자유라든가 종교의 자유라든가 사상의 자유가 없었던 것을 북한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그냥 받아들이면서 살아왔지만, 정말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와서 전 세계가 얼마나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북한에 있는 주민이 얼마나 박해받고 있고 끔찍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지 더욱 더 절실히 알게 됐습니다. 특별히 북한에 갇혀 있는 정치범들에 대해서 저희 오빠와 같은 가족의 경험을 통해서 비로서 갇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지 절실히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인권증진센터 이한별 소장과 회견이었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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